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22개월 된 딸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는 인터뷰 내내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냈다. 아버지 김종석(가명) 씨는 “아이를 사지로 내몬 건 오롯이 어른들의 책임”이라며 “수십만 원짜리 장비 하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던 참사였다.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일을 계기로 입법화가 꼭 추진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른다. 그날 김 씨의 딸이 그랬다. 5초 남짓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보호자가 유치원 통학버스에 5살짜리 아들을 태우려고 인솔교사에게 아이 손을 맡기고 인사하던 순간 김 씨의 딸은 통학버스 앞에 서 있었다.
차량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고
감지 센서만 있었어도 예방 가능
안전장치 부착 의무화 꼭 필요
관계 기관·정치권 입법화 나서야
일주일 만에 또 유아 사고에 울분
수사·처벌보다 제도적 보완해야
평소라면 누구라도 나서서 ‘안으로 들어오라’며 소리를 쳤을 테다. 그러나 인솔교사와 학부모, 아파트 경비원, 출근을 재촉하는 직장인까지 어른 수십 명이 그 장소에 있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아무도 아이를 보지 못했다. 통학버스 운전사는 그대로 출발했고, 아이는 39인승 통학버스에 치여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김 씨 부부는 맞벌이로 살림을 꾸려내며 아이 둘을 키우고자 했다. 딸의 육아를 위해 아내가 잠깐 휴직을 했으나, 빠듯한 사정에 보탬이 되고자 한 달 전 다시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의 할머니가 보호자로 나서 두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지게 됐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비극이 벌어졌다.
김 씨는 “대출금이라도 갚기 위해서는 어린 자녀를 둔 부부도 맞벌이를 해야 하고, 육아 공백을 보완하려면 ‘조부모 보호자’가 등하원을 도와줄 수밖에 없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게 버는 돈이 뭐라고…”라며 가슴을 내리쳤다. 전문가들은 아이와 보호자의 관계, 보호자의 나이 등과 무관하게 아이들의 이 같은 돌발 행동은 언제든 일어난다며 사고 책임을 보호자로 돌리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60대 통학버스 운전사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를 진행 중이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전방주시 의무를 다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운전사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버스 앞을 지나가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버스 운전석에서는 22개월짜리 아이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김 씨는 “CCTV 영상을 보면 아이가 운전석으로부터 2~3m는 떨어져 있었고, 주변에는 볼록거울 형태의 도로반사경도 있었다”며 “정확한 경찰 조사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운전사가 왜 아이를 보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만큼이나 다시는 어린 생명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운전석에서 앉아 전후좌우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어라운드 뷰’나 충돌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급정거하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이 갖춰졌더라면 이런 사고는 앞으로도 절대 일어날 이유가 없다”며 “하다못해 요즘은 누구나 손쉽게 구해서 달 수 있는 차량충돌 감지 센서만 있었어도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며 발생하는 이런 황망한 사고는 피할 수 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딸의 장례를 치른 김 씨는 며칠 뒤 뉴스를 보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겨우 일주일 만에 부산에서 또 다른 아이가 통학버스에 치여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어린이 통학버스가 원생을 어린이집 앞에 내려주고 출발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차량에는 교사가 함께 타고 있었으나, 아이는 차량에 끼여 상당한 거리를 끌려갔고 중상을 입었다.
김 씨는 “이런 사고는 명백한 후진국형 사고”라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순간 실수를 했다고는 하지만, 제도나 시스템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미래세대를 위해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어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안전을 책임지는 관계당국과 지역 정치권 등이 좀 나서서 통학버스에 기술적 안전 장치 부착을 의무화하도록 도와 달라”고 덧붙였다.
안타까운 사고에 대해 지역 학부모 단체도 목소리를 냈다. 부산학부모연대 강진희 공동대표는 “어린이들에게 아무리 안전하게 다니라고 교육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결국 책임은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어른들이 져야 한다”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학부모나 어린이를 탓할 게 아니라 사회가 나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