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11시, 부산 서구 동아대병원 6층 인공신장실. 빗발치듯 몰려드는 환자로 바쁜 병원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해 나가는 20대 청년이 눈에 띄었다. 계약직으로 의료진을 보조하고 환자들을 돕는 천 모(24) 씨다.
천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동아대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그는 종종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발작이나 간질 같은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비장애인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대학병원의 근무 환경이지만, 천 씨는 의료 현장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을 해 나간다.
의료진 보조하고 환자 돕는 업무
간호사 도움에 발작 위기도 넘겨
업무 익숙해져 직원들도 ‘엄지척’
업무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 천 씨는 이제 누가 설명하거나 도와주지 않아도 필요한 때 노련하게 업무를 처리할 정도로 일에 익숙해졌다. 간호사들을 도와 침상이나 비품을 정리하고 환자를 살피는 일이 그의 주 업무다. 오전에는 주로 병상 시트를 교체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이동을 돕는다. 그는 또 투석 치료가 끝나면 간호사들과 함께 소독 티슈로 침대를 닦고 의료기기들을 정리한다. 오후엔 물품보관실에 있는 투석 라인, 식염수, 수건 등 병원 비품 유효기간을 확인해 차곡차곡 정리한다.
천 씨가 이 병원에서 일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병원에 오기 전 다닌 회사들은 그의 조금은 더딘 소통이나 일처리를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천 씨는 동아대병원에 오기 전에는 생산·제조업체 등을 전전했다. 천 씨는 “관리자가 호통을 치거나 윽박지르는 경우도 많았고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가끔 간질 발작 증세가 나올 때면 손을 내미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동아대병원은 천 씨의 아홉 번째 직장이다. 올해 스물네 살인 점을 감안하며 이직이 너무 잦았다. 병원에는 천 씨처럼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 적지 않다. 동아대병원에는 천 씨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26명의 직원이 계약직으로 일한다. 동아대병원은 2017년부터 장애인고용공단 협조로 지속적으로 장애인 직원을 채용했다.
병원 생활 역시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천 씨는 최근에도 병원에서 일을 하다 발작 증세를 보인 적이 있었다. 이번엔 간호사들이 빠르게 도와줘 위기를 넘겼다. 그는 병원 업무가 익숙해졌고 몸이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천 씨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소통도 잘되고 병원 일도 재미있어 오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간호사들도 천 씨에 대해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라고 치켜세웠다. 동아대병원 인공신장실에서 천 씨와 함께 일 하는 한 간호사는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일을 센스있게 처리해 업무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며 ““병원 업무를 정말 잘해 주고 있어 고맙다”고 전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