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핵심 생산 시설을 무단으로 점거해 농성을 벌인 하청노조에 금전적 손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
명백한 불법 행위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 데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하청노조(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겁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3일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회사 경영진은 지난 19일 열린 이사회에서 하청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청구 금액은 500억 원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정식 부의안건은 아니고 계획을 설명하는 형태였다.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 이사회 때 안건에 부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하청노조 조합원 7명은 사내협력사 노동자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옥포조선소 1번 독에서 건조 중인 초대형원유운반선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이로 인해 1번 독 조업이 한 달 넘게 전면 중단되면서 파업 현장이 전 국민의 시선을 모았다.
대우조선해양은 애초 이로 인한 손실 규모가 8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납기 지연에 따른 지체보상금 271억 원과 매출 손실 6468억 원, 고정비 지출 1426억 원을 합친 금액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철저히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공언했다. 손해가 명백한데도 회복 노력을 하지 않을 때 경영진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하청노조의 지급 여력과 여론 등을 고려해 금액을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손해액 전체를 청구해 승소해도 이를 모두 받아낼 가능성이 낮은 데다, 정치권에서 노조에 대한 손배소 규제를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하청 현장 노동자 상당수가 2주간의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조업을 계속한 덕분에 지연된 공정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
소송 대상은 미정이다. 점거 농성을 주도한 조합원 또는 노조 간부로 국한할지, 하청지회 단체로 할지는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김형수 하청노조 지회장은 “안타깝다. 5000만 원도 없는 사람한테 갚을 수도 없는 5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이유가 뭔지 묻고 싶다”면서 “현장에 공포를 조성해 하청노동자들이 노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번 손배소와 별도로 무단 점거 농성을 주도한 하청노조 조합원 9명(하청노조 지회장, 부지회장 2명, 난간 농성 조합원 6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 고발한 상태다.
현행 노조법 42조 1항은 주요 업무 시설을 점거하는 행태의 쟁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앞서 하청노조는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지급 △노조 전임자 인정 △노조 사무실 지급 등을 요구하며 올 6월 2일 파업에 돌입했다.
하청노조에는 대우조선해양 사내 협력사 100여 곳 중 22곳 노동자 400여 명이 가입돼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같은 달 21일부터 노동자 7명이 1번 독에서 건조 중인 30만 t급 초대형원유운반선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이후 노사가 ‘강 대 강’으로 맞서고 정부가 공권력 행사를 경고하면서 자칫 물리적 충돌로 인한 불상사 우려도 커졌다.
그러다 파업 51일째인 지난달 22일, 마라톤협상 끝에 △임금 4.5% 인상 △설·추석 50만 원, 여름 휴가비 40만 원 지급 △폐업 사업장 조합원 일부 고용 승계에 노사가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막판 쟁점으로 떠오른 ‘부제소 합의(민형사상 소송 면책)’는 끝내 ‘미결’로 남겼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노란봉투법’ 제정에 기대를 건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다.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임종성,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각각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한편, 하청노조는 앞선 노사협상에서 합의한 고용 승계가 한 달이 넘도록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지난 18일부터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