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의 친구들] 지옥 같은 번식장, 1400마리에게 새 견생 선물하다

입력 : 2023-09-13 17:44:09 수정 : 2023-09-14 09: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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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의 친구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최근 학대 번식장 대규모 구조
수천만 원 빚에도 책임지기 위해
입양 못 간 55마리 돌보고 있어
정부 차원 학대 동물 지원 절실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 아쉬워

부산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심인섭 대표가 최근 경기도 화성시의 한 번식장에서 구조한 강아지를 안고 있다. ‘라이프’가 구조한 개들은 스타트업 ‘수퍼빈’에서 내준 임시보호 공간 ‘두부아이놀이터’에서 지내고 있다. 심인섭 대표 부산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심인섭 대표가 최근 경기도 화성시의 한 번식장에서 구조한 강아지를 안고 있다. ‘라이프’가 구조한 개들은 스타트업 ‘수퍼빈’에서 내준 임시보호 공간 ‘두부아이놀이터’에서 지내고 있다. 심인섭 대표

최근 경기도 화성시의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무려 1400여 마리의 개가 구조돼 화제다. 이 번식장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허가를 받은 곳이었지만, 관리·감독이 부실해 동물학대가 자행되고 있었다. 학대를 멈추게 한 것은 번식장으로 모여든 20여 동물보호단체였다. 부산 소재 단체 ‘라이프’가 핵심 역할을 했다. ‘라이프’ 심인섭(51) 대표를 지난 7일 화상으로 만났다.

심 대표에 따르면 문제의 번식장은 제보 덕분에 적발할 수 있었다. 55쪽에 달하는 고발 보고서가 ‘라이프’를 포함한 동물단체 4곳과 언론사 7곳에 이메일로 뿌려졌다. 임신한 개의 배를 칼로 가르거나 사체를 신문지로 싸 냉동고에 보관하는 등 학대 정황이 담겨 있었다.

제보를 접한 심 대표는 다른 동물단체와 연락했고, 이 중 ‘KK9’의 주도로 10개 단체가 모여 번식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당초 제보상으로는 800여 마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1400마리가 넘었다. 원활한 구조를 위해 10여 개 단체가 추가로 합류했다.

심 대표는 “보통 번식장에는 케이지 사이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는 있는데, 이곳은 바닥에 가득한 울타리 때문에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공간이 협소했다. 당연히 위생도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구조 당시 번식장 모습. 라이프 제공 구조 당시 번식장 모습. 라이프 제공

번식장 단속 후 ‘라이프’에겐 큰 고민이 생겼다. 심 대표와 활동가 2명으로 구성된 작은 단체인 ‘라이프’는 자체 동물 보호 공간이 없다. 그동안 구조한 동물들은 다른 보호 시설에 위탁해 왔는데, 입양을 보내지 못한 개체가 수십 마리에 달해 매달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동물을 떠안게 되면 단체가 파산할 수도 있지만 심 대표는 55마리의 개를 더 책임지기로 했다.

심 대표의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만약 저희가 처음 제보를 받지 않았다면 ‘보호 시설이 없어 구조는 불가하다’고 못 박았을 것이다. 그런데 제보를 받고 다른 동물단체들에 내용을 공유한 것이 ‘라이프’였다. 쉽게 말해 저희 때문에 단체들이 모이게 된 것이고 그들도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를 하는데 ‘라이프’만 발을 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속칭 ‘가오’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맡게 된 것이다.”

심 대표의 결단은 한 기업의 도움으로 해피 엔딩을 맞았다. ‘라이프’의 사정을 알게 된 자원순환 스타트업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가 공장에 보호 공간을 내줬다. 자원봉사자들도 이곳을 찾아 구조견을 돌보는 것을 도왔다. 구조된 개들은 대부분 이빨 상태가 나빴고, 이 가운데 12마리는 병원에 보낸 상태다.

심 대표는 동물복지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해 온 전문가다. 공로를 인정받아 부산시장 표창도 두 번이나 받았다. 한 동물보호단체 소속 활동가로 7년 정도 일하기도 했는데, 2019년 7월 구포 개시장 철폐를 끝으로 활동가로서의 삶도 잠시 중단했다. 그러나 처참한 동물복지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같은 해 12월 ‘라이프’를 설립한 뒤 2021년 비영리 법인 등록에 성공했다. 지난해까지 ‘라이프’를 거쳐 입양된 동물이 130여 마리에 달한다.

동물보호단체를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예산 문제다. ‘라이프’의 고정 후원자가 800명을 넘지만, 위탁보호 비용과 인건비 등 고정 지출이 워낙 크다. 활동을 많이 할수록 후원이 많아지지만, 그만큼 경비도 많아져 적자를 면치 못한다. 지금도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심 대표는 “다른 단체들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화성 번식장도 그렇고, 구조 이후 왜 모든 비용을 민간단체에서 책임지게 하는지 의문이다. 지자체의 관리·감독 부실로 동물학대가 일어났으면, 학대 동물을 보호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힘들게 동물학대를 고발하고 동물을 구조했는데,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을 때 가장 화가 난다”며 “수사기관은 엄벌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재판에만 가면 솜방망이 처벌이 나온다. 동물학대 법정최고형이 징역 3년인데, 여태껏 ‘포항 고양이 학대 사건’이 유일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심 대표는 그러면서도 “동물권과 관련한 문제를 이슈화해 관련 법과 제도의 개선을 이끌어낼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라이프’도 광역시별로 사무소를 두고 같은 이슈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단체로 성장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밝혔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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