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1년 3000억 생선 담는 그릇, 수산인 ‘밥그릇’ 도 담았다 [피시랩소디]

입력 : 2024-04-30 18: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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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상자

연 15만t 수산물 상자 단위 거래
크기·쌓는 방식 등 따라 가치 달라
출하 물량 변화 밥상머리 물가 들썩

위생 등 논란 목상자 역사 뒤안길
현대화 바람 속 플라스틱 교체 중

나무 어상자는 ‘X’ 자로 쌓아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지난 2월 1일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위판이 끝난 뒤 작업자들이 나무 어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이정 PD luce@ 나무 어상자는 ‘X’ 자로 쌓아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지난 2월 1일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위판이 끝난 뒤 작업자들이 나무 어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이정 PD luce@

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에서 어(魚)상자는 ‘생선을 담는 그릇’ 이상의 의미다. 1년 위판 금액 3000억 원, 물량 15만t에 달하는 수산물 대다수가 어시장 바닥에 배열된 어상자를 단위로 이뤄지는 ‘입상 경매’ 방식으로 거래된다. 어종과 크기, 수량별로 세밀한 거래가 가능해 ‘제값’을 받고 팔려는 선사와 어선 단위의 대량 구매가 부담스러운 중도매인 모두 선호하는 방식이다. 입상 경매는 다른 위판장에서도 이뤄지지만, 이곳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은 성수기 하루 10만 상자 이상으로 전국 최대 규모다. 어시장이 생선과 사람, 돈이 모이는 국내 최대 산지 수산물 위판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바탕에 어상자가 있는 셈이다.

어상자 크기, 재질, 쌓는 방식에 따라 어시장 내 작업 물량과 거래되는 상품의 가치가 달라진다. 어시장 사람들 모두가 어상자의 변화에 민감하다. 어상자가 제때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물량을 출하하지 못해 선사가 손해를 본다. 상자 하나에 수산인의 ‘밥그릇’이 달렸고, 전국의 밥상머리 물가도 들썩인다. 최근 나무(작은 사진)에서 플라스틱 재질로 교체되고 있는 어상자는 올해 말 현대화 사업 개시를 앞둔 어시장의 변화도 알리고 있다.

■어시장 60년 함께 한 나무 어상자

어시장에는 현재 나무 재질의 어상자(이하 목상자)와 플라스틱 어상자가 공급된다. 목상자는 60년 넘게 어시장에서 자리를 지켰다. 한때 하루 최대 15만 개 가까이 공급되며 어시장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당시 저렴했던 가격과 생선의 선도를 유지하는 효과가 인기 요인이었다. 목상자 공급을 관리하는 한국수산물용기협회 강진희 부장은 “생선에서 목재로 흡수되는 염분이 부패를 늦춰주기 때문에 지금까지 목상자가 사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2단으로 쌓을 수 있어 공간 활용에 유리한 점도 오랫동안 목상자가 사용된 이유다. 상자를 2단으로 쌓으면 바닥에 놓인 생선이 상자에 눌리면서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하지만 면적이 한정된 어시장에서 많은 물량을 하루에 소화하려면 불가피한 때가 있다. 플라스틱은 표면이 미끄러워 2단으로 쌓기 어렵다.

목상자는 한때 일곱 가지 크기로 유통됐다. 1990년대 들어 현재의 규격(가로 57cm, 세로 36cm, 높이 9cm)으로 정착됐다. 상자에 생선을 가득 채우면 20kg가량 담긴다. 규격이 통일되면서 상자에 담기는 양이 30%가량 줄어 중도매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공급 불안·위생 논란에 교체

목상자는 소나무로 만든다. 과거엔 국산 원목을 사용했는데 재선충병 유행 이후 수급이 불안정해졌다. 근래엔 북미 지역에서 자라는 품종인 ‘미송’을 주로 쓴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가격이 급등하면서 새 어상자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위생 논란도 목상자 퇴장의 명분이 됐다. 목상자는 세척 없이 재사용되기 때문에 비위생적이라는 지적을 오랫동안 받았다. 플라스틱 어상자를 공급하고 관리하는 한국컨테이너풀 김현욱 팀장은 “목상자는 구조상 세척이 어렵고 자체에 곰팡이가 생기기 쉬워 위생에 취약했다”고 말했다. 현재 하루 목상자 공급량은 4만 개로 전성기 물량의 25% 수준이다. 과거에 비해 어시장의 위판 규모가 축소된 여파다. 한일어업협정 표류 등의 영향으로 어획량이 줄었고, 선별 작업을 담당하는 야간부녀반의 인력난으로 하루에 처리 가능한 물량도 한계가 있다.

■나무와 플라스틱 공존하는 어시장

현대화의 바람 속에 2022년부터 목상자가 플라스틱 어상자로 교체되고 있다. 현재 플라스틱 어상자 3만여 개가 사용된다. 매달 조업이 없는 시기엔 기계로 세척이 이뤄진다. 무게도 목상자의 절반 수준인 약 1.2kg으로 가벼워 선별 작업자들이 다루기 쉽고 비교적 튼튼하다. 선사와 중도매인 등 어상자와 관련된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디자인도 8차례 바뀌었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지만 현장에서는 목상자의 퇴장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양배반 작업자 이대희 씨는 “10년 넘게 사용해 익숙하고 '요구(갈고리 모양의 도구)'로 찍어 쉽게 들 수 있는 목상자가 아직 더 편하다”고 말했다. 목상자를 수리하고 정리하는 인력도 20여 명 남아있다. 이들은 오전 2시께 출근해 오전 6시 경매 전까지 2인 1조로 파손된 목상자를 수리한다. 하루에 파손되는 상자는 3000여 개에 달한다. 경매가 끝나면 위판장 곳곳에 흩어진 목상자를 수거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쌓아두는 일도 이들의 몫이다. 목상자 관리 업체 태현상회 이재영 대표는 “목상자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어시장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어시장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어상자 교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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