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우리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부실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국가 기후 정책의 위헌성에 대해 법적 판단을 내린 아시아 최초 사례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영유아·청소년·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과 관련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아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과소보호금지원칙이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정부의 부실한 기후변화 대응으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이 침해됐다는 취지다.
이번 소송은 아시아 첫 기후소송으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다. 2020년 청소년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을 시작으로 영유아 등이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4년 5개월 만에 헌재가 미래세대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법적 공방의 핵심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적정한지 여부였다. 헌재는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에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기후변화 대응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기본권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고 법령으로 수치화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다만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 부분은 기각했다.
세계적으로 각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실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사법부 판단이 있어 왔다는 점에서 우리 헌재 결정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정부는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20%에서 25%로 확대하라’는 이른바 우르헨다 소송 판결로 기후소송의 역사를 썼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2021년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미래에 떠넘기는 현행 법령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의 온실가스 정책이 충분하지 않아 2000명이 넘는 여성 노인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8만 유로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각국 사법부의 기후소송 판결이 갈수록 엄격하고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이제 글로벌 노멀이 됐다. 올여름 전 국민이 겪고 있는 기록적 폭염과 해수온 상승에 따른 어장 파괴도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헌재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사법부가 각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강화를 주문하고 있는 것도 더 이상 인간이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데 대한 경고다. 우리 정부도 헌재 결정을 계기로 기후 대응 정책들을 점검하고 강화해야 한다. 당장 헌재 결정에 따라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은 2026년 2월 28일까지만 효력이 인정된다. 정부와 국회가 개정 시한까지 헌재 취지를 반영해 보다 강화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미적거리다가는 기후 재앙을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