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린 게 뉴스인 세상이다. 반갑거나 도움이 되는 것만 있을 리가 없다. 때로는 지루하거나 귀찮고, 짜증과 화를 유발할 수도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올해 5~6월 20세 이상 3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의 뉴스 이용과 뉴스 회피’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뉴스 이용자 72.1%가 뉴스가 보기 싫어 회피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선택적 혹은 지속적으로 뉴스를 거부하는 현상은 저널리즘이 믿음과 쓸모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드러낸다.
회피 경험자는 뉴스에 야박한 감정이 있다. 뉴스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49.3%)거나 ‘화가 난다’(45.7%) 또는 ‘피곤하다’(42%)는 식으로 부정적 반응 일색이다. ‘정치 편향’(57.4%)이거나 ‘너무 많고, 반복적’(51.5%)인 탓이다. 이 때문에 ‘뉴스를 회피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7.9%에 불과했다. 독자가 뉴스를 기다리던 호시절은 끝났다.
이번 언론재단 조사 결과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20대, 즉 Z세대가 열심히 뉴스를 읽고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뉴스를 회피한다’는 응답은 30대 76.5%, 40대 76.7%, 50대 78.3%, 60대 77.5%, 70대 이상 72.6%로 전 연령대에서 70%대 후반이었는데 비해 유독 20대는 47.3%로 큰 격차를 보였다. 20대가 뉴스를 멀리할 것이라는 통념이 깨지는 결과다. 20대의 ‘회피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무려 52.7%로 다른 연령대의 배 이상이었다. 이른바 ‘디지털 원주민’으로 불리는 Z세대의 모순된 듯한 이 응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필요한 질문이 ‘뉴스 회피’의 개념 중 뉴스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다. 예컨대 Z세대의 미디어 이용 습관을 질문하면서 레거시 미디어와 검색 포털에서 유통되는 기사만 기준으로 잡는다면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Z세대가 기성의 뉴스 생태계 속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뉴스’는 SNS 친구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 해시태그를 비롯해 게임 대화방의 코멘트일 수 있다. 떠도는 정보와 저널리즘이 뒤섞여 경계가 모호해진 게 특징이다. 이들의 주 서식지인 SNS 생태계에서 ‘친구’들이 공유해 주는 소식은 정론 매체의 뉴스보다 신뢰도가 높다. 흥미와 관심 기반의 알고리즘이 더해지면 내게 도움이 되는 솔깃한 소식은 차고 넘친다. ‘친구’가 전해주는 소식은 대체로 즐겁고 도움이 되는데 굳이 회피할 까닭이 없다. 이런 이유로 ‘뉴스를 외면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는데 다른 연령대와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면 곤란하다.
실제 이번 조사에 응답한 20대는 인터뷰에서 “SNS나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대답했다. 파편화된 뉴스 소비 환경에서 뉴스를 편식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20대의 낮은 뉴스 회피율을 뒤집어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토끼 굴에 빠진 것처럼 만화경이 펼쳐지는 SNS 생태계를 기존 미디어 환경과 동일한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어쩌면 ‘디지털 원주민’ 세대는 기성의 공론장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다고 전제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이른바 기성 담론의 바깥에 존재하는 ‘뉴스 아웃사이더’다. 이들은 기성 뉴스와 접점이 없지만, 자기네 세상에서는 다른 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그것을 뉴스로 인식하고 있다. 공론장의 분절이다.
언론사 편집진의 견해가 담긴 뉴스를 소비하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는 것을 회피의 범주에 넣어 해결책을 찾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서로 다른 견해가 경쟁하는 공론장을 통해 세상에 대한 소식을 얻지 못하는 국민이 늘어나면 여론 형성에 장애가 생기고 숙의민주주의 체제가 형해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뉴스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20대와 어떻게 눈높이를 맞출 것인가의 과제가 추가된다. ‘뉴스 아웃사이더’가 실재하고, 또 점점 몸집이 커지고 있는 중이라면 이는 중대한 사회적 위협이다.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이야기에 벽을 치고 차단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딴 세상으로 떨어져 나가는 중이라면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선 언론이 자초한 책임이 크다. 기존 문법과 구독자에 안주해서 미래 세대의 문법, 즉 ‘친구’의 화법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에 게을렀다. 사회적인 의제로도 다뤄야 한다. 젊은 세대의 공론장 이탈은 공동체 소속감, 연대감의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딴 세상에 가 있는 이들을 공론장 안으로 유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 먼저 다가가야 할 책임이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