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 재개발 정비사업장들이 시공사를 찾지 못해 입찰이 잇따라 유찰되고 있다. 지방 미분양 물량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데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사비마저 급등해 지방에서는 사업성을 내기 힘들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탓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지방에서 수주를 기피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아파트값은 물론이고 서울과 지방의 개발 격차가 한층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유찰에 또 유찰
27일 지역 정비업계에 따르면 부산 동래구 명장2구역 재개발 조합은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세 번째 입찰을 진행했으나 참여 업체가 없어 또 유찰됐다. 이 사업장은 2023년 10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지난해 7월 조합설립인가를 받는 등 빠른 사업 추진이 돋보였던 곳이다.
명장동 300-55번지 일대에 지하 3층~지상 34층 아파트 1137가구를 짓는 게 골자다. 3차 입찰이 유찰되면서 수의계약으로 전환해 시공사를 선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래도 SK에코플랜트가 이 사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어 다른 조합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하구 괴정8구역 재개발 조합은 이달 초 시공사 선정을 진행했으나, 참여 업체가 없어 자동 유찰됐다. 지난달 6일 열린 현장 설명회에는 두산건설과 KCC건설이 참여해 기대를 모았으나 입찰서는 내지 않았다. 이 사업은 괴정동 494-1번지 일대에 지하 4층~지상 24층의 아파트 923가구 등을 짓는다.
2000세대에 가까운 대단지 재개발 사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산진구 가야4구역 재개발 조합 역시 두 차례의 입찰에서 참여 업체를 찾지 못하자 이달 초 세 번째 입찰 공고를 냈다. 현장 설명회에는 롯데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 동원개발 등이 참여했지만 정작 입찰을 넣지는 않았다. 가야동 648번지 일대에 1998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1100가구가 넘는 규모의 연제구 연산10구역도 첫 번째 입찰로는 시공사를 찾지 못해 최근 두 번째 입찰 공고를 냈다. 소규모 정비사업은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금정구의 한 가로주택 정비사업(200가구 규모) 같은 경우 지난달 현장 설명회를 개최했지만 참석한 건설사가 한 곳도 없었다.
■지방 외면하는 건설사
핵심은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한 공사비 급등에 있다. 지방이라고 해서, 입지가 다소 좋지 않다고 해서 이미 치솟은 공사비가 적게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선별 수주’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건설은 지난해 매출 원가율이 100.6%를 기록했다. 매출 원가율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매출 원가의 비율로, 이 비율이 100%를 넘었다는 것은 회사가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한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지난해 주요 건설사 대다수가 매출 원가율이 90%를 넘겼을 정도다.
부산의 한 1군 건설사 관계자는 “업계 사정이 워낙 나빠지다 보니 서울 중에서도 강남권 아니면 선뜻 수주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며 “사업성을 철저하게 검토해 본 뒤 ‘애매하다’ 싶으면 건설사들끼리 되도록 경쟁을 벌이지 않도록 피한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방에 미분양이 쌓이고 부동산 침체가 길어지면서 일부 건설 대기업은 부산을 포함한 지방 신규 사업장에 뛰어들지 않기로 한 걸로 알고 있다”며 “부산에서 상급지라 손꼽히는 해운대구나 수영구도 입지나 사업성이 불투명하면 예외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전히 ‘하이엔드’ 아파트를 고집하는 지역의 일부 사업장들은 시공사를 선정해 놓고도 공사비 문제로 씨름하다 시공 계약을 해지하기도 한다. 분양할 때 브랜드값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당장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분양업계 한 관계자는 “하이엔드를 빌미로 당초 계약과 달리 터무니 없는 공사비를 들이미는 시공사도 문제가 있지만, 일부 조합은 시공사에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며 “시공 계약을 해지한 뒤 다른 건설사와 시공 계약을 맺더라도 착공을 눈앞에 두면 또다시 증액된 공사비를 요구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동아대 부동산학과 강정규 교수는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가 끝나고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서울과 지방은 물론 부산 내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개발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