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
형제복지원 수용 피해자에 대한 국가 책임을 1975년 내무부 훈령 발령 이전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내무부 훈령으로 부랑아 강제수용이 공식화되기 전 형제복지원에 구금된 피해자들에게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3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김 모 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가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씨 등이 국가 불법 행위로 피해를 당한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 인용액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날 “국가가 1975년 훈령 발령 전 있었던 원고들에 대한 단속과 강제수용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가는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부랑아 단속과 수용 조치를 해왔고, 이런 기조는 훈령 발령으로 이어졌다”며 “국가는 관행적으로 실시한 부랑아 단속과 수용 조치를 훈령 제정을 통해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훈령 발령 이전에 서울과 부산 등에서 단속이 이뤄진 점을 근거로 들었다. 1970년 단속된 부랑인이 5200명에 이르고, 귀가 조치된 2956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보호시설에 수용된 점 등이 반영됐다.
대법원은 “부산시는 1974년까지 여러 차례 부랑인 단속을 시행했고, 1973년 8월에는 관련 지침을 구청 등에 하달했다”며 “원고들이 1975년 이전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건 국가의 부랑아 정책과 그 집행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그동안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은 인정했지만, 1975년 이전 수용 기간에 대해서는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이번 소송도 2심에선 1975년 이전 단속과 강제수용은 국가가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수용 기간으로 참작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강제수용을 인정하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피해자들 배상액도 커질 전망이다. 다른 강제수용 시설 피해자도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경찰을 포함한 공권력은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했다. 형제복지원에서는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 행위 등으로 65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