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한 말차 생산 농가. 차광 재배를 위해 녹차 나무에 초록색 차광막이 설치돼 있다. 하동차&바이오진흥원 제공
음료·디저트 시장을 중심으로 ‘말차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 경남 하동군이 글로벌 외식·식품업계의 뜨거운 러브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말차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하동군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2일 하동군에 따르면 1일 하동군과 하동차&바이오진흥원, 차지 코리아가 하동 말차 및 관련 차 제품의 안정적 공급과 홍보·마케팅 협력을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차지’는 중국과 미국 등 전 세계 7000개 매장을 보유한 글로벌 프리미엄 티 브랜드다. 올해 국내에 처음 진출해 8개 매장을 개장했고 향후 하동 말차를 소비자에 선보일 예정이다.
김좌현 차지 코리아 대표는 “차지 코리아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산 차 원료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는 뜻깊은 출발점”이라며 “하동 말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하동 말차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차지에 앞서 글로벌 프랜차이즈 ‘스타벅스’ 납품을 통해 품질을 인정받았고 전국 유명 베이커리에 원료가 공급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국내 대형 식음료 기업에서 말차 소주와 푸딩을 개발하기 위해 하동군에 말차 원료를 요청한 상태다.
김현수 하동군수는 “최근 말차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하동 말차가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고급 원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의 러브콜이 쏟아지지만 하동군의 속내는 마냥 편하지 않다. 말차의 높은 확장성을 발판 삼아 ‘하동 차’ 브랜드 파워를 단숨에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를 맞았음에도 정작 이를 뒷받침할 원료 생산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하동의 연간 말차 완제품 생산량은 100t 안팎이다. 업계 수요를 소화하려면 200t 이상으로 늘려야 하지만 당장 공급을 맞출 길이 없어 각종 신제품 개발에 들어갈 원료조차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3인 1조로 말차를 수확하는 모습. 지리산 비탈진 야생차밭은 수작업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커 말차 생산을 꺼려하고 있는 상태다. 하동차&바이오진흥원 제공
문제는 지역 내 전통 녹차 재배 농가들이 말차 생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하동 녹차 농민들에게 덖음 잎차는 단순한 식음료가 아니라 지켜내야 할 ‘전통과 문화 그 자체’로 여겨진다. 반면 말차는 유행에 따라 소비되는 ‘가공용 원료’로 치부되고 있다.
여기에 말차는 수확 전 햇빛을 가리는 ‘차광 재배’가 필수적인데, 지리산 비탈진 야생차밭 특성상 차광막 설치가 어렵고 수작업에 따른 인건비 부담도 크다. 더욱이 고급 수제 잎차의 판매 단가가 대량 납품용 말차보다 훨씬 높아 농가로선 굳이 방식을 바꿀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하동군으로선 글로벌 트렌드가 말차로 급격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전통 잎차 시장에만 머물러 있다가는 지역 차 산업이 경쟁 도시인 제주나 보성 등에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결국 ‘벼 재배 농가’를 말차 생산자로 전환하는 대책을 꺼내 들었다. 쌀값 하락으로 고민하는 논 농가를 설득해 평지 차밭으로 조성하겠다는 복안이다. 평지는 기계화 작업이 용이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벼농사 대비 단위 면적당 이윤도 훨씬 높다. 현재 군은 후보지 10여 곳을 대상으로 심사를 벌이며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묘목을 심고 상업적 수확이 가능한 성목으로 자라기까지는 최소 5년의 세월이 걸리는데, 본격적인 수확이 시작됐을 때도 지금의 말차 열풍이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김종철 하동차&바이오진흥원장은 “하동 말차를 찾는 수요가 폭증해 지자체가 오히려 공급량을 조절해야 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농민들을 다각도로 설득해 생산 참여를 유도하고, 장기적인 공급 기반을 닦아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하동 차의 백 년 먹거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