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 기자 leo@busan.com | 2024-11-28 07:40:00
25년마다 돌아오는 가톨릭 최대 순례 행사인 희년(禧年·Jubilee)을 맞아 2025년 이탈리아 로마 방문객이 지난해의 3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내년에 로마를 여행하는 게 가능한 것인지, 합리적인 것인지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내년 로마 방문객 3500만 명
이탈리아관광연구소(ISNART)의 최근 전망에 따르면 내년 로마 방문객은 3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300만 명의 3배 가까운 수치다. 1000만 명 안팎의 방문객만으로도 로마는 미어터진다는데 그 수가 3000만 명을 넘어서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희년을 맞아 로마 여행 비용 역시 이전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숙박비가 크게 오르는 것은 물론 식사비 등 물가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부터 로마 방문객은 숙박 시설 유형에 따라 하루에 5~12유로의 여행세를 내야 한다.
가격은 둘째 치더라도 숙박 시설 예약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특급호텔까지 로마의 숙박 시설 총 객실 수는 40만 개인데, 1년 동안 3500만 명을 수용하기에는 어려움이 클 것이라는 게 ISNART의 분석이다. 일부 순례자는 숙박 시설에 묵지 못하고 로마 외곽의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지내야 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탈리아정부와 로마시청은 희년에 물밀듯 몰려들 것으로 보이는 방문객 수용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수개월째 각종 시설 정비 등 준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 트레비분수는 물론 나보나광장의 4대강 분수 등 여러 관광 명소도 재정비되고 있다. 성 베드로 무덤이 있다고 알려진 성베드로대성당 지하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는 아예 문을 닫았다. 모든 시설은 정비를 거친 뒤 희년이 시작하면 일제히 재개방될 예정이다.
여행 전문가들은 “가톨릭 신도가 아니라면 2025년 로마 여행 계획을 재고하라”고 충고한다. 돈만 많이 쓰고 인파에 파묻혀 고생만 할 게 뻔하니 여행을 미루라는 것이다. 콜로세움은 물론 성베드로대성당에 입장하려면 자칫 하루 종일 줄을 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특히 부활절 기간인 4월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로마가 붐빌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굳이 로마를 방문하고 싶다면 그나마 겨울이 최적의 방문 시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로마의 여행작가인 티파니 팍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1~2월에 로마를 찾는 게 낫다. 겨울 로마도 꽤 볼 만하기 때문에 이때 방문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5년마다 돌아오는 ‘성스러운 해’
‘성스러운 해’를 의미하는 희년이 처음 도입된 것은 1300년이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신도들의 신심을 자극해 로마 순례자 수를 늘리려고 도입한 제도였다. 로마를 방문해 4대 메이저 대성당인 성베드로대성당, 라테라노대성당, 성밖의성바오로대성당, 산타마리아마조레대성당을 순례해서 진심으로 회개하면 평생 지은 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황청은 나중에는 100년 주기를 50년 그리고 25년 주기로 바꾸었다. 100년을 주기로 하면 아예 성년을 맞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신도가 생겨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2025년 희년은 공식적으로 올해 성탄절 전날, 즉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동방 박사들이 아기예수를 만나러 베들레헴을 찾은 것을 기리는 축일인 2026년 1월 6일 공현대축일에 끝난다.
희년은 교황이 성스러운 문, 즉 ‘성문(聖門)’을 여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성베드로대성당에는 제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출입문이 다섯 개 있는데 맨 오른쪽이 ‘대사면의 문’으로도 불리는 성문이다. 성문은 성베드로대성당 외에도 로마의 4대 메이저 대성당에도 하나씩 있다. 각 성당은 평소에는 모르타르나 시멘트를 발라 성문을 안쪽으로 잠가 놓았다가 희년에만 개방한다. 순례자는 이 문을 통과해야 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
교황이 성탄절 전날 은으로 만든 망치로 성문을 똑똑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 이때부터 누구나 지나갈 수 있다. 성경에 ‘나는 문이니 누구든 나를 통해 들어오면 안전하리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문을 통해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의 자비를 통해 안전을 구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