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2024-12-01 19:21:00
지난달 28일 오전 11시께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부산청년센터 ‘들락’ 개인 책상 공간에는 20대 청년 2명만이 공부 중이었다. 이 공간은 80여 평에 달한다. 바로 옆 공용 공간에서는 40대 남성 1명이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스터디룸 ‘이야기마루2’에는 60대 남성 2명의 모습이 보였다. 두 이들은 1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소리를 높인 채 영상을 시청하거나 한창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 20대 취업준비생은 “평소에도 어르신들이 한꺼번에 찾아와 회의를 하거나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부산 지자체들이 운영 중인 ‘청년 공간’이 청년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관리가 제대로 안된 탓에 일 이용자 수가 4~5명에 불과한 곳이 대부분이다. 청년들 발길이 끊기자 중장년층이 대신 자리를 채우며 공간 조성 취지가 퇴색돼 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전역에는 청년 공간을 표방한 시설이 모두 25곳 있으며 이들 공간은 강서구, 기장군을 제외하고 각 구·군에 1~3곳씩으로 흩어져 있다.
〈부산일보〉 취재 결과, 청년 공간의 상당수는 도시철도 역사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역세권에 위치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산 A청년센터는 공실이 수두룩한 상가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또 다른 청년 공간은 외진 곳에 있어 포털사이트 지도 찾기 도움을 받아도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일부는 포털사이트에서 위치 검색도 되지 않았다. 이런 낮은 접근성은 상당수 청년 공간의 공통된 특징이다.
청년들은 이들 시설을 외면하고 있다. 부산 서구에 있는 청년 공간 ‘무튼 304’도 부산도시철도 1호선 동대신역에서 불과 100m 떨어져 있지만 평일 방문객은 4~5명에 불과하다. 2013년 청년 인디 문화 지원을 위해 개관한 사상인디스테이션도 올해 대관은 10여 차례에 그쳤다. 이 시설은 부산시가 예산 20억 원을 투입해 지상 3층, 2개 동 규모로 조성됐다.
이들 시설은 중장년층이 주 이용자가 됐다. 부산 자갈치시장 내 부산청년센터의 경우 인근 시장 상인 등이 이용하는 모습이 일상화됐다. 이들은 예약제인 세미나룸은 물론, 취업준비생을 위한 공부 공간도 스스럼없이 이용하고 있어 청년들이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셈이다.
시설마다 운영 방침이 다른 점도 청년층 외면을 부추긴다. 사하구 청년공간 ‘청신호’는 오전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아 청년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다. 사하구에 사는 20대 박 모 씨는 “다른 청년 공간은 오전 일찍부터 문을 여는데, 이곳은 오후에 문을 여니 잘 찾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오창호 교수는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청년 공간이란 본연의 취지에 맞게 운영돼야 예산 낭비나 불필요한 행정력 소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