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2024-12-01 18:24:35
박형준 부산시장의 최근 ‘1박 2일 국회 앞 천막 시위’가 지역 정가에 화제다. 연내 처리에 ‘빨간불’이 들어온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이하 글로벌특별법)의 활로를 뚫기 위한 이번 농성은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으로도, 박 시장의 기존 정치적 행보의 관점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박 시장 주변에선 ‘시장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전인 2004년 총선을 통해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박 시장은 우리 정치권의 대표적인 온건·합리주의자로 통한다. 이전까지 정치적 역정을 돌아보면 ‘통합’과 ‘설득’이 주특기이지, 지금 득세하는 정치인들처럼 ‘충돌’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과거 TV 토론 프로그램의 단골 패널로 오랜 기간 활동할 만큼 보수 진영 이론가이자 달변가이지만, 홍준표 대구시장 등 여타 광역단체장들처럼 중앙 정치의 논쟁성 이슈에 쉽게 발을 담그지도 않았다. 측근 그룹에서도 “저래서는 독하고 튀어야만 인정 받는 정치판에서 ‘저평가 우량주’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박 시장이 이번에 단단히 독기를 품은 듯하다. 폭설이 내린 지난달 27~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을 치고 이틀 동안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광역단체장이 입법 지연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 농성에 들어간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전례를 찾기 힘들다. ‘신사’ 박 시장이 국회 본청의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맨바닥에 앉아 특별법 처리를 호소했다.
28일 행사장에서 만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를 붙들고는 “산업은행법도 그렇고 민주당은 부산하고 정말 결별하려고 하는 거냐,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좀체 보기 어려웠던 강경 행보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보여주기 쇼’다. 실효성이 전혀 없다”며 ‘역효과’를 언급했지만, 박 시장은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다. 야당의 발목 잡기에 맞서 싸우겠다”고 더 강경한 목소리를 맞받았다.
박 시장의 독한 행보는 더 이상 국회만 바라보고, 여야 정쟁에 끌려 다녀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깔렸다. 박 시장은 “지역에서 균형발전을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는지에 대해 (중앙 정치권의)인식이 없다”고 격앙했다. 특히 160만 명 서명으로 특별법에 대한 시민 염원을 모았음에도 민주당이 일개 지역 법안으로 치부하며 꿈쩍도 하지 않는데 상당한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박 시장은 “330만 부산 시민의 요구가 그렇게 가볍느냐”며 “시민 자존심을 걸고 맞서 싸우겠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여기에 산업은행법에 이어 글로벌특별법마저 실기할 경우, 어렵게 찾아온 부산 도약의 호기를 놓칠 수 있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다.
박 시장의 상경 투쟁은 일단 답답했던 글로벌특별법 국회 논의 기류에 변화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당 차원에서 꼭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거듭 약속하면서 국회의 연말 중요 입법 의제임을 거듭 환기했다. 여기에 민주당 역시 이 문제를 바라보는 부산 민심의 심각성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이번 행보가 박 시장의 정치적 스타일 변화를 예고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박 시장은 최근 당정 갈등 국면에서 여권 중진 모임을 이끈 바 있고, 서울 일극주의의 심각성을 비판하기 위해 사회 지도층의 ‘강남 감각’이라는 민감한 화두를 내놓는 등 중앙 정치 무대에서 존재감을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박 시장 측 인사는 “엑스포 실패로 인해 박 시장의 가덕신공항 공기 단축, 투자 유치 등 시정 성과가 가려진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글로벌 특별법 처리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면서 “여기에 이번 시위를 통해 ‘싸울 때는 싸운다’는 강단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