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분노를 되짚어보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2025-11-29 09:00:00

광주가 최근 분노에 휩싸이면서 이재명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의 텃밭으로 분류돼 온 광주의 분위기 급변에 민주당 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실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분노의 시작

광주의 분노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세운 ‘광주 국가 AI 컴퓨팅센터 확충’ 공약이 시발점이다. 이 대통령이 4차산업 시대를 맞아 AI를 정책의 축으로 삼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기에 광주는 AI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광주는 삼성SDS 컨소시엄이 추진하는 2조 5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지가 될 것으로 보고 기대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삼성SDS 측은 지난달 해당 사업의 최종 입지로 전남도 해남·영암 일대 기업도시 ‘솔라시도’를 선택했다.

하늘에서 본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 전경. 해남군 제공 하늘에서 본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 전경. 해남군 제공

광주는 민주당 정부가 대선 과정에서 표만 챙기고 결국은 광주를 버린 것이 아니냐며 분노에 휩싸였다. 대통령 공약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했다며 광주시에도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고 있다. 예상보다 격앙된 광주의 분위기에 민주당과 광주시장은 당혹해하며 다른 AI 관련 시설을 광주에 유치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나서는 등 부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벌써부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이라는 예측도 만만찮게 나온다.


■분노의 이면

광주의 분노는 표면적으로는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의 변질 측면에서 정치적인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또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이번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지 선정은 대통령실의 실용주의 노선과 기업의 수익성 논리가 결합된 결과라는 평가가 있다. 공공과 민간 지분 비율이 3대 7이 된 사업에서 결정권은 민간에 있을 수밖에 없고 민간 기업은 경제성 논리에 충실했다는 것이 평가의 근거다.

산업용지 단가 측면에서 광주는 평당 200만 원인 반면 솔라시도는 평당 40만~50만 원으로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막대한 열을 방출하는 데이터센터의 특성상 냉각수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수적인데 해안과 가까운 솔라시도는 하루 1만 4000t의 산업용수 공급이 가능해 광주보다 비교 우위를 가진다. 현재 솔라시도에 가동중인 98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도 전력 소모가 많은 데이터센터와 찰떡 궁합을 이룬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인 계산으로 입지를 저울질하던 국책 사업이 정권의 실용주의 노선이 작동하면서 비용 경쟁력과 경제성에 따라 자리를 찾아갔다는 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분노의 확장

잠시 시간을 2023년 3월로 되돌려 보면 또다른 분노를 마주할 수 있다. 그 시점 윤석열 정권은 대뜸 경기도 용인에 대규모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덜컥 발표했다. 이미 SK가 용인에 반도체 산단을 조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발표는 삼성으로 하여금 용인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발표가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전기와 물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모습. 부산일보DB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모습. 부산일보DB

SK가 조성하려는 반도체 산업단지에 공급할 전기와 물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반도체 산단 조성을 또 하려 나니 당장 필요해진 것은 원전 10기의 전력 생산량인 10GW 이상의 전력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급히 LNG발전소 6기를 용인에 건설하고 서남해안과 강원도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형 송전탑으로 끌어오는 대책을 발표했다. 물도 강원도 양구에 댐을 건설해 끌어오는 방안을 모색하다 해당 지역 주민 반발이 거세자 팔당에서 물을 끌어온다는 식으로 갈팡질팡했다. 발표부터 해 놓고 뒤늦게 대책 마련에 허둥대는 꼴이었다.

이렇게 졸속으로 마련된 계획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26일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계획을 승인했다. 4년 이상 걸리던 산단 승인 절차를 절반 이하로 단축했다는 자랑과 함께. 수도권으로 전력과 물을 끊임없이 공급해야 하는 지역의 입장에선 분노가 절로 일 수밖에 없는 행태다.



■분노의 종점

다시 현재 광주의 분노로 넘어오자. 광주의 분노는 대선 공약 파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표방한 실용주의가 작동한 사례로 꼽힌다. 광주 내부에서조차 용지 조성 가격과 전기, 물 공급 측면에서 솔라시도가 비교 우위를 가진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용인에만 올인한 반도체 단지는 어떻게 봐야 할까. 냉정하게 용지 조성 가격과 전기, 물 공급 측면만 따져 본다면 반도체 공장은 전력을 생산하는 비수도권 해안가 같은 곳에 배치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가치를 내세운다면 더욱 그래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부산 기장군의 한 마을에서 바라본 고리원전 2호기(오른쪽 두번째)와 영구 정지 8년 만인 지난 6월 해체가 결정된 고리원전 1호기(맨 오른쪽) 모습. 전력과 물 공급이 원활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라면 수도권 밖에 널려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기장군의 한 마을에서 바라본 고리원전 2호기(오른쪽 두번째)와 영구 정지 8년 만인 지난 6월 해체가 결정된 고리원전 1호기(맨 오른쪽) 모습. 전력과 물 공급이 원활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라면 수도권 밖에 널려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가진 부작용은 명약관화하다. 동남권 신공항 사업이라는 중차대한 국책사업조차 온갖 부작용을 내세우며 숱하게 뒤집고 원점화하곤 하던 게 최근 정권들의 역사다. 동남권 주민들은 역대 정권들이 동남권 신공항 사업에만 유달리 그런 술수를 부렸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산업단지 같은 사업도 얼마든지 방향을 틀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민심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번 정부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전면 재검토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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