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조감도. 부산일보DB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 전략 자산이 될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연내 마침표를 찍을 전망이다. 수의계약이냐, 경쟁입찰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며 하세월 한 지 2년여 만이다. 애초 ‘관행적인 수의계약’으로 기우는 듯했지만,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군사기밀 이슈 기업의 방산 프로젝트 수주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군사기밀 유출 전력이 있는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에 대신 경쟁입찰·공동개발 등 보다 개방적인 방식에 힘 실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18일 방위산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를 열어 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을 결정한다. 앞서 지난 4일 열린 방위사업기획·관리분과위원회(이하 분과위)에서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개발 방안을 놓고 논의를 진행한 끝에 방추위에서 최종 결론을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방추위의 경우 민간위원은 분과위와 동일하지만 관계기관은 부기관장에서 기관장으로 바뀐다. 만장일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논의를 거쳐 어느 정도 동의가 이뤄지면 장관이 최종 의결할 예정이라는 게 방사청 설명이다.
KDDX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초의 국산 이지스구축함이다. 선체부터 이지스 체계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완성한다. 방사청은 2030년까지 7조 8000억 원을 투입해 6000t급 KDDX 6척을 건조할 계획이다.
통상 함정 건조는 1단계 개념설계, 2단계 기본설계, 3단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4단계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하는 데, 남은 건 3~4단계다. 개념설계는 거제시의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기본설계는 울산시의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2023년 12월 기본설계가 완료돼 지난해 3단계에 착수할 예정이었지만, 지금까지 답보 상태다.
한화오션 방산기술력이 집약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등 최첨단 수상함 함정모형들. 부산일보DB
관건은 사업자 선정 방식이다. 현재 KDDX 건조 능력을 갖춘 조선소가 거제시의 한화오션과 울산시의 HD현대중공업 뿐인 상황이어서 유불리가 극명하게 갈린다. 원칙은 경쟁입찰이지만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는 예외적으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잡한 무기 체계와 전투 체계가 집약되는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는 연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중공업도 관행대로 기본설계 수행사와 수의계약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전력을 근거로 경쟁입찰을 주장한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해군본부와 방위사업청을 방문해 기밀 자료를 몰래 촬영한 뒤 이를 미인가 서버에 보관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방사청은 보안사고 감점 규정을 근거로 HD현대중공업에 무기 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을 감점하기로 했다. 소수점 단위로 승패가 갈리는 수주전에서 이는 치명적인 페널티다.
양사의 사활건 수주전에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면서 해군력 증강 전략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나온 대안이 ‘공동개발’이다. 이는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함께 진행하고 나머지 5척도 적절한 비율로 나눠 갖는 방식이다. 양사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 건조 역량을 극대화해 개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늦어진 전력화 일정도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참석자들의 발언권 요청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방사청은 빠른 납기를 이유로 수의계약 안을 강행했다. 3, 4, 8, 9월 그리고 지난달 열린 분과위에 수의계약 안건을 올리고 통과시키려 했으나 민간위원과 정치권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이재명 대통령의 뼈 있는 공개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한 참석자가 방산·군수 비리를 근절해달라고 요청하자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을 향해 “군사기밀을 빼돌려서 처벌받은 데다가 뭔 수의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러던데, 그런 것 잘 체크하라”고 짚었다. 구체적인 대상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업계에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맞붙은 KDDX 수주전을 지목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경고한 상황에 방사청이 수의계약을 밀어붙이긴 쉽지 않다”면서 “건조 과정에 기술 영역을 명확히 나누기 어렵고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 등이 불분명해질 수 있는 공동개발보다, 경쟁입찰을 우선 검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