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 2025-02-27 10:57:33
“일단 유명해져라.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쳐줄 것이다.” 팝 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이 말했다고 알려진 이른바 ‘똥 명언’이다. 실제로 워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도 한다. 누가 말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인기와 명성의 본질에 대해 이처럼 신랄하고 촌철살인하는 비유는 없을 테다. 문제는, 아무리 (박수 받고 싶어) 똥을 싸지르려 해도, 일단 유명해지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일단 유명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200만 부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은 그의 신작 <페이머스: 왜 그들만 유명할까>를 통해 배변 활동에 앞서 어떻게 유명해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깊이 탐구한다. 책은 비즈니스와 정치, 음악, 문학,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의 시대의 아이콘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사람은 유명해지고 어떤 사람은 유명해지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힌다.
책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선 △멱법칙 분포 △평판 폭포 △네트워크 효과 등 명성과 관련한 최신 연구를 파헤친다. 이런 연구가 있다는 것부터 먼저 놀랍다. ‘멱법칙 분포’(power law distribution)란 잘 팔리는 작품(노래, 소설 등)과 그렇지 못한 작품의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지는 일종의 양극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평판 폭포’란 사람들이 어떤 작품이나 사람을 평가할 때 앞선 기존의 평가를 부인하지 못하고 그 의견에 따라가는 경향을 일컫는다. ‘네트워크 효과’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작품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일수록 과거 그 작품에 중립적 태도를 유지한 사람들마저도 관계 네트워크에 합류하기 위해 작품에 호감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이런 연구들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명성을 쌓는 것에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 끈기, 창의성보다 수많은 다양한 요인들, 즉 시대, 재산, 성별, 인종, 후원자 같은 우연한 요소들이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낸다.
책은 이어 13인의 유명 인사들이 명성을 얻기까지 지내온 과정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작가 윌리엄 블레이크와 제인 오스틴, 존 키츠, 에인 랜드, 영화제작자 조지 루카스, 스탠 리, 마술사 해리 후디니와 심령술사 미나 크랜든, 가수 밥 딜런, 비틀스 맴버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에 대한 구체적인 일화를 통해 각 분야의 시대별 아이콘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기회를 만들고 명성을 쌓았는지 그 흥미로운 여정을 들여다본다.
물론 같은 재능을 가지고도 시대정신이 그들 편에 서 있지 않았거나, 올라타야 할 기회의 파도가 찾아오지 않았거나, 적절한 경쟁자나 후원자를 만나지 못했거나, 네트워크나 평판의 도움을 받지 못해 무명에 머무른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이는 무명에 머무른 그 누군가에게도 천재일우의 기회가 갑자기 찾아오거나 서쪽에서 귀인을 만나는 등 또 다른 가능성의 순간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와 다름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관심 받지 못한) 또 다른 ‘비틀스’ ‘셰익스피어’ ‘아인슈타인’ 같은 존재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을 기대하게 만드는 책. 책을 덮은 후에도 저자가 인용한 구약의 한 구절이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돈다. “빠르다고 경주에서 이기는 게 아니며, 강하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며, 똑똑하다고 빵을 얻는 게 아니며, 지식이 있다고 부유한 게 아니며, 기술이 있다고 은총을 받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 모두에게 시간과 기회가 임함이니라.” 캐스 선스타인 지음/박세연 옮김/한국경제신문/328쪽/2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