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피곤하거나 가벼운 활동에도 숨이 찬다면?

폐동맥고혈압

조기 병용요법·치료제 개발로
희귀 아닌 만성질환 인식 전환
조기 진단은 예후 바꾸는 핵심
과도한 운동 금물·약 복용 준수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2025-12-02 07:00:00

폐동맥고혈압은 처음 진단 시점에 얼마나 빨리, 충분하게 환자 상태를 개선해 주느냐가 장기 예후를 좌우한다. 부산대병원 최정현 순환기내과 교수는 “조기 진단은 예후를 바꾸는 핵심”이라며 “이전보다 쉽게 피곤하거나 가벼운 활동에서도 숨이 찬다면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병원 제공 폐동맥고혈압은 처음 진단 시점에 얼마나 빨리, 충분하게 환자 상태를 개선해 주느냐가 장기 예후를 좌우한다. 부산대병원 최정현 순환기내과 교수는 “조기 진단은 예후를 바꾸는 핵심”이라며 “이전보다 쉽게 피곤하거나 가벼운 활동에서도 숨이 찬다면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병원 제공

직장인 A(27) 씨는 최근 들어 피로감이 늘고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찼다. 업무 스트레스와 다이어트가 원인이라고 생각해 업무량을 줄이고 다이어트를 중단했지만 증세는 여전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 결과 폐동맥고혈압 진단을 받은 A 씨는 적극 치료에 나선 결과 반 년 남짓 만에 증세가 호전됐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A 씨가 겪은 폐동맥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는 폐소동맥 벽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고 협착되면서 압력이 상승, 심장에 부담을 주는 질환이다. 한때 진단 후 평균 생존기간이 2~3년에 불과했을 만큼 치명적인 희귀·난치 질환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치료 환경이 크게 달라지면서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부산대병원 최정현 순환기내과 교수와 함께 폐동맥고혈압 치료법에 대해 알아봤다.

 

■가능한 한 빨리 저위험군으로

희귀질환인 폐동맥고혈압이 만성질환 가능성을 연 것은 활발한 치료법 연구가 주효하다. 과거 폐동맥고혈압 치료는 한 가지 약물로 시작해 효과가 부족하면 단계적으로 추가하는 ‘계단식 치료’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진단 초기부터 여러 약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조기 병용요법’이 임상적으로 더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연구로 확인됐다.

특히 결체조직질환 연관 폐동맥고혈압이나 젊은 환자에서 치료 반응이 더 빠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한 20대 초반 결체조직질환 환자는 진단 직후 주사제를 포함한 3제 병용요법을 시작해 반 년 만에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게 됐으며, 1년 6개월 뒤엔 폐저항지수가 정상화되면서 경구 약제 병용요법이 적용됐다. 최 교수는 “처음부터 2~3가지 약물을 병합해 치료한 환자들은 임상적 악화 위험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고, 운동능력과 삶의 질도 크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조기 병용요법이 주목 받는 이유는 폐동맥고혈압이 첫 진단 시점에 얼마나 빨리, 충분하게 환자 상태를 개선해 주느냐가 장기 예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로를 동시에 차단해 질병의 진행을 빠르게 억누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글로벌 가이드라인도 조기 병용요법을 표준 치료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 유럽 가이드라인에서는 저위험~중간위험군부터 조기 병용요법이 권고되고, 고위험군에서는 프로스타사이클린 유사체까지 포함한 3제 병용요법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도 증상 완화에 한몫한다. 기존 ERA·PDE5 억제제·프로스타사이클린 유사체 등이 주로 혈관 확장을 통해 증상을 조절했다면, 새로운 계열의 약물은 혈관 손상과 재형성 과정에 관여하는 ‘특정 신호전달 경로’를 억제해 손상된 폐혈관 구조를 회복시키는 효과를 유도한다. 최 교수는 “증상 완화를 넘어 질병 진행을 늦추거나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환자 특성에 맞춘 맞춤형 병용 전략이 더 정교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단지연·보험한계 극복 필요

하지만 진단이 늦어지는 것은 여전히 큰 문제다. 폐동맥고혈압의 초기 증상은 피로, 가벼운 활동에서도 숨참, 실신 등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증상과 유사하다. 특히 젊은 여성의 경우 스트레스나 운동 부족으로 오해해 병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 교수는 “조기 진단은 예후를 바꾸는 핵심”이라며 “이전보다 쉽게 피곤하거나 가벼운 활동에서도 숨이 찬다면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체조직질환, 선천성 심장병, 간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라면 정기 검진은 필수적이다.

보험적용이 까다로운 것도 문제다. 현재 WHO 기능 등급 III-IV 환자만 조기 병용요법이 가능하고, 그 외 환자는 단일요법 후 악화가 있을 때만 추가 약제 처방이 허용된다. 최 교수는 “폐동맥고혈압의 치료 목표는 가능한 빨리 저위험군에 도달하는 것인데, 현행 보험 기준은 이 목표와 맞지 않는다”며 “초기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환자의 적극적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치료제가 발전했다고 해도 환자가 스스로 관리에 참여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증상이 애매하다고 병원을 옮겨 다니거나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약을 줄이거나 끊으면 질환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다. 과도한 운동은 위험하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중등도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감염 예방을 위해 독감·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하는 만큼 코로나19 예방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권장된다. 임신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 최 교수는 “폐동맥고혈압은 시기를 놓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에 맞는 최선의 치료 강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보험 급여가 확대되고 한국인 특성에 맞춘 맞춤치료 전략이 발전한다면 폐동맥고혈압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충분히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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