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6-05-24 09:00:00
계엄군 총탄에 뚫린 유리창.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돼 있다. 살림터 제공
양동시장 주먹밥 조형물. 당시 시민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위대를 응원했다. 살림터 제공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윤상원 열사 생가 모습. 살림터 제공
오월, 소년의 기억을 걷다/이돈삼
“아이고! 내 살아생전 이런 꼴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절대 안 된다.” 2024년 12월 3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밤이었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서울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여의도 국회를 향해 달려갔다. 밤새 국회 담을 에워싸고 군인들의 차량을 막았던 시민들은 이후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1980년 당시 외롭게 싸워야 했던 광주의 영령에 대한 미안함이 늘 있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2024년 뜬금없는 계엄 때문에 온 국민이 공포에 떨었던 것처럼 1980년 5월 역시 그랬다고 한다. 5월 17일 밤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했고 시위도 없었다. 그럼에도 전두환 신군부는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에 비상계엄 확대 조치를 내렸고,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국회는 탱크를 앞세운 군인에 의해 통제됐다. 계엄 상황에서도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수 없는데 막무가내였다.
정치인과 학생 2700여 명이 이유도 모른 채 잡혀갔고, 전국 주요 기관과 대학에 공수부대가 배치됐다. 18년 집권한 박정희 독재 정권이 무너지며 국민은 민주화를 기대했다. 느닷없는 계엄령의 공포에도 국민은 일어났고,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광주는 죽음을 무릅쓴 민주주의 항쟁이 펼쳐졌다.
<오월, 소년의 기억을 걷다>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따라가며 글을 통해 당시 현장을 생생히 불러낸다. 남도 토박이이자 5·18 역사해설사로서 기존의 정보 외에도 오랜 기간 현장을 누비며 몸으로 체득한 역사를 풀어낸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속 주인공 동호가 걸었던 길과 실제 장소들을 연결해 한강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 소름 돋는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는 세계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문학 답사의 형태로 광주를 찾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역사 속 한 페이지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삶이라는 뜻이다.
광주에는 전남대학교 정문, 옛 전남도청과 민주광장, 상무대 옛터 등 30곳이 5·18 사적지로 지정돼 있으며 그곳에서 스러져간 시민들의 이야기가 책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시민 각각의 이름과 죽음을 당한 상황, 장소, 이후 이야기까지 자세히 소개하는데, 내 가족 혹은 친구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듣는 것 같이 책을 읽는 내내 울컥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는다.
5·18민주화운동은 부당한 국가권력과 신군부의 집권 음모에 맞선 시민들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인정받았지만, 46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이도 있고, 서러운 처지조차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지점을 가진 스타벅스는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마케팅을 펼쳐 역사인식 부족을 드러내며 비판받았다. 2024년 내란 주범들은 현재까지 적절한 처벌조차 받지 않았고,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가 되려 시민의 대표자가 되겠다며 6·3 선거 후보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 그날의 현장도 역사가 되고, 박제화되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진다’고 했다. 열사들이 목숨과 맞바꿔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5·18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덧붙여 “오월길을 거닐며 5·18을 생각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용기를 대하는 것이다. 지금은 일상 공간이 된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엿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은 죽음보다 더 버거웠던 살아남은 자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국에 붙잡힌 이들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라는 죄목으로 수감됐다. 교도소 안에서도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40여 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하다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난 이도 있고, 헌병대 철창에서 감옥으로, 다시 정신병원 철장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이들도 있다. 이돈삼 지음/살림터/312쪽/1만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