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원시(遠視) / 오세영(1942~ )

입력 : 2024-04-16 18: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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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시집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중에서

애틋함은 멀어지기에 발생하는 감정이다. 애틋함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생의 성숙을 맛보게 된다. 아련함도 마찬가지다.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먼 것들은 아득하고 그윽하여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리하여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게 된다.

한때 내 것이었던 것이 내 것이 아닌 것이 되었을 때 느끼는 난감함과 당혹감은 아련함의 다른 이름이다. 늙어가는 것이 그런 경우다.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가 이를 말해주는 것일 텐데, 그것은 의욕과 과시의 삶의 방식에서 체념과 겸허의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사랑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설령 죽을 정도로 사랑하였던 사람일지라도 이제는 ‘멀리 보내고’, ‘머얼리서 바라다보’며 살아가야 함을 깨우쳐야 한다. 그것이 생의 본질임을 터득해야 한다. 성숙은 자신에게 주어진 슬픈 운명을 처연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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