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성어기 하루 10만 상자도 분류 "우리 손에 돈 달렸다" [피시랩소디]

입력 : 2024-04-16 20:35:00 수정 : 2024-04-17 13: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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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크기 따라 7등급 선별
잘못 분류하면 선사에 큰 손해
눈 가늠 까다로워 고난도 작업
베테랑 아가미 만져보고 판단
일 고된 데다 임금 적어 인력난
현대화 후에도 이들 역할 중요

야간부녀반 베테랑 작업자들은 고등어의 아가미 부분을 손으로 쥐었을 때 손아귀에 차는 정도로 크기를 판단한다. 지난 2월 15일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야간부녀반 작업자들이 고등어를 선별해 어상자에 담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 야간부녀반 베테랑 작업자들은 고등어의 아가미 부분을 손으로 쥐었을 때 손아귀에 차는 정도로 크기를 판단한다. 지난 2월 15일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야간부녀반 작업자들이 고등어를 선별해 어상자에 담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
부산일보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피시랩소디 야간부녀반편 썸네일. 부산일보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피시랩소디 야간부녀반편 썸네일.

부산시는 2023년 부산미래유산에 '수산도시 부산'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부산공동어시장을 선정했다. 1963년 부산항 1부두에 ‘부산종합어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어시장은 현재 국내 연근해 수산물 중 30%, 특히 고등어는 80%가 이곳 어시장을 거쳐 전국에 유통된다. 모두들 그 가치는 알고 있지만 지난 2014년 발간한 ‘50년 사’ 책을 제외하고는 어시장에 대한 별도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부산일보〉는 현대화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어시장 사람들을 기록함으로써 유·무형의 가치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피시랩소디는 지면뿐만 아니라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로도 만날 수 있다.

현대화 이후 부산공동어시장의 풍경은 크게 바뀔 전망이다. 낡은 건물을 허문 자리에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기계가 도입되면 지금까지 사람에 의존해 일하는 방식도 바뀐다. 지난 60년 동안 고등어 등 수산물을 밤새 일일이 분류하던 야간부녀반의 손길을 자동화 기계가 대체할 예정이다.

선별 과정은 경매 준비의 핵심 단계다. 고등어는 보통 크기별로 7등급으로 나눠 분류한다. 성수기 기준 1등급 고등어 한 상자는 2등급에 비해 20%가량 비싸게 거래된다. 야간부녀반 30년 차 박미경 반장은 “한 마리라도 더 정확하게 크기를 분류할수록 선사에게 이익”이라며 “흔히 ‘우리 여자 손에 돈이 달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아가미를 잡아 보면 척척

야간부녀반이 분류하는 등급의 수는 어종과 당일 어획량에 따라 선사가 결정한다. 선사는 잡아 온 수산물을 어시장에서 판매하는데, 보통 고등어의 경우 가장 큰 1등급부터 가장 작은 7등급까지 나눈다. 상품을 구입하는 중도매인이 거래처에 납품하는 용도에 따라 찾는 크기에 맞추기 위해서다. 300g 이상의 큰 고등어는 대형마트, 수산물 시장 등에 공급되고 250g가량의 고등어는 급식용으로 납품된다. 200g 이하의 작은 고등어는 상품 가치가 떨어져 수출용이나 사료용으로 팔린다. 대형선망수협 소속 선사 경해수산 성희경 전무는 “물량이 7만 상자를 넘어 평소대로 작업해서는 경매 전까지 마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네 등급 정도로 줄여서 분류한다”고 말했다.

선별 작업은 보통 오후 10시에 시작된다. 작업은 두 그룹으로 나눠서 이뤄진다. 앞줄의 작업자들이 고등어를 네 등급으로 분류하면 뒷줄의 베테랑들이 이를 일곱 등급으로 더 세밀하게 분류하는 식이다. 작업의 정확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뒷줄에서 이뤄지는 세밀한 작업을 현장에서는 ‘뒷일’이라고 부른다. 고등어 5000상자 분량을 선별할 때 뒷일 작업자 12명을 비롯해 45~50명이 투입된다. 뒷일 작업자는 대부분 경력이 10년 이상이지만, 솜씨가 좋고 꾸준히 출근하면 경력이 다소 부족해도 뒷일을 맡을 수 있다.

성수기 기준 1등급 고등어 40여 마리가 담기는 한 상자의 가격은 15만~20만 원 수준이다. 2등급 고등어는 이보다 2만~3만 원 저렴하게 거래된다. 성수기 위판되는 물량은 하루 7만 상자가 넘는데 야간부녀반이 큰 상품을 작은 상품으로 분류하면 선사는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선별은 손으로 이뤄진다. 1등급과 7등급 고등어는 눈으로도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크기 차이가 뚜렷하다. 하지만 1등급과 2등급처럼 연속된 등급을 구분하는 일이 관건이다. 베테랑의 노하우는 ‘아가미’다. 가장 큰 1등급 고등어의 아가미 부분을 손으로 쥐면 엄지와 중지 사이에 한 뼘가량 간격이 벌어져 겨우 잡힌다. 2등급 고등어는 그 간격이 줄어 엄지와 검지의 첫 마디를 손바닥 반대편의 고등어 몸체에 거치할 수 있다. 손가락 사이의 간격은 크기가 작아질수록 점점 가까워져 5등급 고등어를 잡을 땐 두 손가락이 거의 맞닿는다.

■기계로 대체 못 하는 역할

인력난은 야간부녀반의 오랜 고민이다. 일은 고되지만 임시 조합원 기준 8만 8600원 수준의 낮은 노임 탓에 하루 이틀 일하고 그만두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성어기 땐 하루에 물량이 10만 상자 이상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오전 6시 경매 전에 처리하려면 최소 1000명은 필요하다. 현재 야간부녀반은 조합원 70명, 임시조합원 400명 등 총 470명뿐이다. 이로 인해 성어기 땐 경매가 시작된 이후에도 선별이 이어지기도 한다. 때때로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분류하는 등급 수를 줄이는 것도 인력이 부족해서다. 박 반장은 “퇴직했거나 하루 쉬려는 사람들에게도 통사정을 해서 간신히 인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며 “성수기 때는 사람 모으는 일로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어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자동 선별 기계가 도입돼도 야간부녀반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위판되는 어종의 80%는 고등어이다. 하지만 삼치나 방어, 갈치, 전갱이 등 고등어 이외의 어종도 상당하다. 야간부녀반 20년 차 박지연 조장은 “기계가 크기는 잘 골라낼 수 있어도 어종을 구분할 수는 없다”며 “현대화 이후에도 야간부녀반의 역할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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