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어묵 DNA 감식

입력 : 2015-12-06 19:01:10 수정 : 2015-12-08 12: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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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의 별칭은 많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서 '가마보코(생선묵)'가 부산에 들어왔다. 가마보코는 '부들 열매'를 닮았다고 생긴 이름이다. 당시 부평시장에서 팔았던 이것이 어묵이다. '오뎅'은 오늘날과 다르다. 가마보코에 두부 곤약 등을 넣어 삼삼하게 끓인 냄비 요리, 즉 오뎅탕을 일컫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오뎅집이 있었는데 오뎅탕을 파는, 여급 딸린 선술집이었다. 여기서 남녀가 눈이 맞아 '풍속 사건'도 많이 일어났다. 부산에는 오뎅집 대신 가마보코를 소비하는 요정이 많았다.

그런데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어묵의 주소가 달라진다. 저들의 가마보코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어묵이 차차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생선의 내장 머리 몸통 구분하지 않고 막 갈았다. 먹을 게 없었던 헐벗었던 그 시절, 몸통을 넣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부산 원도심의 시장에서 '막갈이'로 만든 재료를 밀가루 반죽을 해서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 전갱이·정어리 기름이나 고개 기름을 넣고 튀겨냈다. 그렇게 튀겨낸 어묵을 '덴푸라'라고 불렀다. 덴푸라는 '튀김'이란 뜻인데 알 수 없는 재료를 젖혀 놓고 튀겨냈다는 방식만 앞에 내세운 이름이다. 부산어묵이 굶주린 시대를 힘겹게 껴안고 태어나던 순간이었다. 부산에서 한때 어묵을 '간또'라고 했다. 동네 점방의 어묵 꼬치가 간또였다. 간또는 일본 간토(關東) 지방 특유의 '어묵 조림(간토다키)' 이름이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가마보코와 오뎅을 우리말로 순화하자며 한때 '꼬치'란 이름도 나왔다. 하지만 꼬챙이에 꽂은 음식이 어디 어묵만 있나.

부산어묵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이후 간식 포장마차의 성행과 떡볶이와의 결합 등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부산어묵은 서민들의 촐촐한 배를 채우는 한국적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던 거다. 1990년대 들어와 부산어묵이 정착하게 된 것은 광복 직후 '덴푸라'의 강렬하고 고소한 기억, 거기에 얽힌 근현대사의 녹록찮은 두께 때문이다.

어묵에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를 식별하는 어묵 성분 DNA 감식법이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개발됐다고 한다. 어묵에 뭐가 들어갔을까 하는 밑바닥 의심까지 없애면서 뭔가 특별한 부산어묵을 투명하게 증명할 좋은 기회다. 전쟁기 부산서 먹었던 어묵의 추억을 독보적 맛으로 승화시킨 부산어묵 앞으로 더 나아가라. 최학림 논설위원 th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