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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해수부 옮기고 GTX 만들면 지역 소멸 멈출까
대한민국에서 대표적 희망 고문의 하나가 국가균형발전일 것이다. 역대 모든 정부가 국정 과제로 내세웠지만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꿈, 전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말이다. 모든 게 수도권에 쏠려 있고 인구수마저 역전당한 비수도권에서 소멸의 시계를 자력으로 멈춘다는 것은 이제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또다시 희망 고문의 계절이다. 21대 대통령 선거운동의 막이 올랐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때를 당겨 맞는 선거철이지만 대선은 대선이다.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비전을 보여줄 리더를 찾아야 하는데 선거운동 전초전을 장식했던 사법 리스크 논란과 단일화 막장 쇼에 눈이 가려진 유권자들로서는 막막함을 넘어 참담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 맞는 대선이어서 그 엄중함과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침, 본격 선거운동 시작과 함께 후보들이 경제를 앞장세워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1호 공약으로 인공지능(AI) 육성을 통해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1호 공약은 ‘일하는 정부’지만 2호로 해외 진출 국내 기업을 다시 한국으로 데려오는 리쇼어링을 내세웠다.
지역으로서는 국가균형발전 공약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핵심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에 따른 지역과 국가의 소멸 위기라는 점에서 수도권 집중은 단순히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유력 후보들의 10대 공약에 이 같은 문제 의식과 깊이 있는 고민이 담겨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재명 후보는 6호에 지역균형발전을 담았다. 세종 행정수도를 완성하고 5대 초광역권(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과 3대 특별자치도(제주·강원·전북)를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겠다는 복안이다. 부울경 공약으로 해양수산부 이전과 해사법원, 해운·물류 기업 유치로 부산을 글로벌 해양산업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울산은 미래차 전환 산업지, 경남은 우주·항공·스마트조선 산업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도 했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5극 3특’은 이명박 정부 ‘5+2 광역경제권’과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지 증명돼야 한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답하지 않으면서 해수부 이전을 내거는 데 대해서도 시민들은 의아해한다. 해사법원 부산 이전을 공언했는데 인천 분원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경남 우주항공국가산업단지 글로벌 우주항공 중심지’를 ‘K-우주산업 기반’으로 문구를 바꾸며 대전과 전남 눈치를 보는 게 기존 지역 갈등만 부추기는 균형발전 방식과 얼마나 다른지도 궁금하다.
김문수 후보는 4호에서 GTX 전국 확대를 내세웠다. 부울경 GTX의 경우 ‘가덕신공항-하단-북항-부전-오시리아’ ‘마산-창원-사상-부전-울산’ ‘울산-정관-김해공항-가덕신공항’을 연결하는 형태다. 국제공항과 관광지를 연계해 산업·물류·관광이 통합된 지역경제벨트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수도권 블랙홀의 상징 인프라인 GTX를 지역 공약 헤드라인으로 내세운 게 재원 조달 방안은 차치하고라도 균형발전 전략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차라리 이준석 후보의 법인세와 최저임금 결정권을 지자체에 부여하겠다는 공약이 참신하게 받아들여진다. 3호와 4호로 반복하며 지역을 강조한 것이나 지역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대목은 균형발전에 대한 고민과 진정성까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지방 이전 요인은 하나도 없다는 현실 인식이나 전국 전기요금이 똑같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반갑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관련해 부산의 비전 중 구체적이지 않은 담론은 의미 없다는 지적은 부산시도 한번 곱씹어 봐야 할 지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 올해 1.8%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040년대 0% 안팎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 진보 등을 반영한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저출생·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여러 진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수도권 집중에 따른 폐단이 국가 잠재성장률까지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대체적 견해다. 전국에 수도권 같은 성장축을 1~2곳 더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까지 나와 있다.
이번 대선이 수도권 집중에 따른 국가 위기와 구조 개혁의 시급성을 공유하고 실행 로드맵을 만드는 장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이번 기회가 지나면 더 이상 고문당할 희망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게 국책 연구기관들의 한결같은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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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클래식 공짜 티켓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처음 시행될 때 공연업계가 바짝 긴장했다. 그때만 해도 기업은 클래식, 오페라 등의 공연을 섭외하고 관람 수요까지 책임지는 일등 후원자였다. 기업이 공연 제작사나 기획사에 협찬금을 내면 그 대가로 초대권을 제공받았고, 이를 마케팅 및 영업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김영란법 대상자들(공무원, 사립학교 교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인 등)이 기업으로부터 일정 금액 이상의 초대권을 받으면 사실상 ‘뇌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서로가 조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기업들은 공연을 후원할 이유가 없어졌고, 공짜 표로 공연을 즐기는 수요가 줄었다.
긍정적인 효과도 없지 않았다. 초대권이 넘쳐날 땐 공연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공짜 티켓 고객들이 많았다. 이들이 공연장을 찾지 않으면 좋은 좌석이 빈 채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김영란법으로 ‘초대권 노쇼(No-Show)’가 원천 차단된 것이다.
요즘은 공연의 퀄리티만 보장되면 돈 아끼지 않고 지갑을 여는 열성 팬들이 크게 늘었다. 지명도 있는 아티스트의 공연은 티켓 예매 사이트를 오픈하면 수십 초 만에 매진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산콘서트홀’의 내달 개관 공연도 인기 절정이다. 특히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나오는 공연은 일반 예매 20초 만에 완판됐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예매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부산콘서트홀의 운영기관은 부산시 산하 사업소인 ‘클래식부산’이다. 운영기관의 최고 책임자도 공연을 보지 못할 처지가 된 것이다.
클래식부산 측은 클래식 공연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 기회를 높이고, 공정한 공연문화 정착을 위해 개관 이후 열리는 모든 공연에 대해 초대권을 배부하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서만 티켓 예약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콘서트홀 운영주체인 부산시장 조차 공연을 못 보게 되자 ‘너무 원칙만 내세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책임자인 부산시장이 현장에 와서 공연시설도 평가하고 시민들의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권 없는 공정한 공연 문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이제 누구라도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직접 예매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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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의 과기세] 양자역학 100년과 닐스 보어
올해는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이에 발맞추어 유엔은 올해를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정했다. 세계 곳곳에서 양자역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필자가 속한 한국과학사학회도 지난 4월 26일 개최된 춘계학술대회에서 양자역학 100년을 돌아보는 특별 세션을 마련했다.
양자역학은 1925년에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의 두 갈래로 세상에 태어났다. 1925년 7월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역학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했고, 그것은 1926년 3월 보른, 하이젠베르크, 요르단을 저자로 하는 소위 ‘3인 논문’으로 진화했다. 슈뢰딩거는 1925년 12월 양자 현상에 대한 파동방정식을 구상했으며, 1926년 1월 파동역학의 탄생을 알린 첫 논문을 발표했다. ‘양자역학’이란 용어는 보른이 처음 사용했고, 슈뢰딩거는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이 수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양자역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플랑크, 아인슈타인, 보어, 조머펠트 등을 만나게 된다. 플랑크는 흑체복사를 설명하기 위해 1900년 ‘플랑크 상수(h)’를 도입했고, 아인슈타인은 1905년 플랑크 상수를 활용해 ‘광전효과’를 멋지게 분석했다. 보어는 1912년 전자가 일정한 궤도를 따라 운동한다는 ‘궤도 모형’을 통해 수소의 선스펙트럼을 설명했으며, 그것은 1916년 ‘보어-조머펠트 원자모형’으로 거듭났다. 1900~1912년 양자가설, 1912~1925년 고전 양자론, 1925년 이후가 양자역학의 시대로 평가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가설에 불과했던 것이 학자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이론이 되었고 결국 수학적 표현을 갖춘 역학의 수준에 이르렀던 셈이다.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인물은 닐스 보어(1885~1962)이다. 보어는 당시 과학의 주변국이던 덴마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1년 코펜하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케임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 연구소로 갔다. 전자를 발견한 조지프 톰슨 밑에서 1년 정도 수학하다가 뉴질랜드 출신인 러더퍼드가 재직 중이던 맨체스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러더퍼드는 알파입자 산란실험을 바탕으로 1911년 원자핵이 중심에 있고 전자가 핵 주위를 회전한다는 ‘행성 모형’을 제안한 바 있었다. 보어는 행성 모형이 전자기학과 모순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궤도 모형을 개발했다. 보어는 1916년 30세의 나이로 코펜하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21년에는 덴마크 정부와 칼스버그 양조회사의 지원을 바탕으로 코펜하겐 대학에 이론물리학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보어는 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성심껏 운영했으며, 이에 따라 이론물리학 연구소는 ‘보어 연구소’로 회자되었다.
덴마크의 보어 연구소는 독일의 괴팅겐 대학, 영국의 캐번디시 연구소와 함께 현대물리학의 산실이 되었다. 사실상 양자역학의 성립과 발전에 공헌했던 거의 모든 이론가가 1920~1930년대에 보어 연구소를 거쳐 갔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 윌렌벡과 호우트스미트의 스핀 개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보어의 상보성 원리 등이 이 연구소에서 나왔다. 오늘날 양자역학에 대한 주류 해석으로는 ‘코펜하겐 해석’이 꼽히는데, 여기서 코펜하겐은 다름 아닌 보어 연구소를 지칭한다.
보어 연구소의 독특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코펜하겐 정신(Copenhagen spirit)’이 자주 사용된다. 그것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의미한다. 보어는 한참 아래의 젊은이들이 어떠한 의견을 내더라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산책하면서 젊은 과학자와 단둘이서 자유로운 대화를 즐겼던 사람도 보어였다. 이 때문에 보어 그룹은 ‘소요학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보어가 내건 거의 유일한 규칙은 “어느 누구도 모국어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어 연구소를 거쳐 간 인물 중에는 일본 현대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시나 요시오도 있다. 그는 1923~1928년 보어 연구소에서 공부한 후 일본으로 돌아가 코펜하겐 정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니시나는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겼고, 이화학연구소(리켄)에서 핵심적인 관리자로 활동했으며, 자유로운 토론과 적절한 격려로 후학을 양성했다.
조지프 톰슨의 아들로 193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조지 톰슨은 보어가 과학계에 미친 공헌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출판된 논문만을 가지고 보어가 과학계에 끼친 영향을 전부 평가할 수는 없다. 그는 갈릴레오와 뉴턴 이래 가장 근본적인 과학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보어의 뛰어난 업적에 무한한 찬사를 보냈으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애정을 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점이 그의 과학적 업적보다 더 중요하다.” 보어는 세대 간에 다리를 놓고 다음 세대를 키워낸 훌륭한 스승이자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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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나는 낯설다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고 말할 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가 좋아질 때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받침을 물끄러미 볼 때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할 때
소유를 자유로 바꾼 사람을 잊어버릴 때
슬픔을 이기려고 꽃 속에 얼굴을 묻을 때
목 놓은 바람 소리 나를 덮칠 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애절한 가사를 쓸 때
절망이 나를 키웠다고 고백할 때
먼 것이 있어서 살아있다고 중얼거릴 때
남의 고통 앞에 ‘우리’라는 말을 쓰고 후회할 때
흰 구름으로 시름을 덮으려고 궁리할 때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쓸 때
나는 낯설다
-시집 〈몇 차례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무사하였다〉 (2024) 중에서
존재의 불가피한 근원적 고독과 슬픔을 눈부신 서정의 언어로 승화시키는 순간들. 문득 앞만 보고 달려온 생을 뒤돌아보며 미처 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려주는 시인의 순간들을 통해 부족하기만 한 저를 하나씩 짚어보게 됩니다.
상실이며 절망이고 슬픔이며 울음인 삶. 그러나 삶이 준 상처가 저렇듯 진창에서 절창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시처럼 빛날 수 있는 것이라면 견딜 만한 것일까요.
시 쓰기가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이며,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며, 삶과 세상의 진실을 말하는 데 시보다 충분한 것은 없다던 노시인의 고백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60년 동안 써왔던 시가 살기 위해서였다는 시인의 말에 다시 숙연해집니다. 순간순간 낯선 자신을 안아주는 일. 노시인의 겸허한 문장들이 죽비처럼 어깨를 내려칩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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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눈] 특목고·특성화고 원거리 통학 ‘반값 교통비’ 지원을
특수목적고등학교와 특성화고등학교는 일반고와는 다른 교육 방향과 전문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들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교육을 받기 위해 이런 고등학교에 지원하는데, 대부분은 집과 거리가 멀어 도보로 통학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대중교통이나 사설 통학차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에 따른 교통비 부담이 상당하다.
법정 등교일수인 190일을 기준으로 하면, 학생들은 연간 약 380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셈이다. 하루에 왕복하는 두 번의 교통비 지출은 장기적으로 누적되면 한 가정의 교육비 지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특히 저소득 가정에 있어 고교 진로 선택에 따른 비용 부담 요인이 될 수 있고, 교육의 형평성과 접근성 측면에서도 우려를 낳는다.
현실적으로 당장 전면 무상 지원이 어렵다면, 특목고·특성화고 학생들의 교통비 절반이라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학생이 부담하는 금액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만으로도 체감하는 부담은 크게 완화될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이 교육의 기회를 경제적 이유로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되기도 한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진로를 위한 원거리 통학을 선택한 학생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반값 교통비 지원 제도를 신속히 검토해주길 바란다. 지자체나 학교 단위의 제한적 지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일관된 정책이 요구된다. 교통비는 단순한 이동 비용이 아니라 교육 접근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선택에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완전한 무상 지원이 아니더라도, 반값이라는 현실적인 지원만으로도 학생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박기훈·부산 동래구 낙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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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선후보들 지역 공약 총력전, 실천력 담보돼야
21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등 3당 후보들이 공식 선거 운동 첫날인 12일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각 후보의 10대 공약은 AI 산업 육성(이재명), 일자리 창출(김문수), 해외 이전 국내 기업 리쇼어링 촉진(이준석) 등 경제에 방점을 뒀다는 평가다. 각 후보가 꺼져가는 성장 엔진을 되살리고, 민생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특히 10대 공약 중 세종 행정수도와 ‘5극 3특’ 추진으로 국토 균형발전(이재명), GTX 전국 5대 광역권 확대 추진(김문수), 법인세 자치권 부여로 지방 경쟁력 강화(이준석) 등의 지역 공약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지역 공약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재명 후보는 임기 내 세종 집무실을 건립해 ‘세종 행정수도’ 이전의 기틀을 닦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5대 초광역권(수도·동남·대경·중부·호남권)별 특별지자체 구성, 권역별 광역급행철도 건설과 3대 특별자치도(제주·강원·전북)의 자치권한 강화를 위한 특별법 개정도 약속했다. 김문수 후보는 수도권 외에도 울산~양산~김해~창원을 잇는 부울경권 등 GTX를 전국 5대 광역권으로 확대한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지난 11일 부산을 방문한 이준석 후보는 가덕신공항 2본 활주로 설치, 북항재개발 야구장 건설 추진, 부산에 본점을 둔 금융기관에 세제 혜택 부여 등을 약속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부울경을 포함한 지역 공약을 의욕적으로 앞세우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공약들이 지역균형발전과 지역 주도 성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실천력이 담보돼야 한다. 이재명 후보의 세종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수도권의 대척점이자 또 다른 중심축인 동남권 광역경제권을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김문수 후보의 GTX 전국 5대 광역권 확대 추진 공약은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이준석 후보의 가덕신공항 2본 활주로 설치, 북항재개발 야구장 건설 추진 등은 지역에는 실용적인 공약이지만, 실행력 확보가 중요하다.
그동안 정권마다 국가균형발전을 국정 과제로 내세웠지만, 수도권 일극체제는 더 강화됐다. 대선 후보들의 10대 공약에 들어 있지만, 신산업 집중 육성이 안 되고 저출생 위기가 심화하는 것도 결국 수도권 쏠림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망국적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제2의 혁신 성장 동력의 새로운 축을 만드는 것이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혁신 성장 동력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남부권 핵심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국책 사업인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은 지금도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후보들은 공약의 세부적 실천 계획과 효과 검증을 통해 실질적 균형발전을 끌어내야 한다. 구태한 지역 갈라붙이기식 공약으로는 전임 정부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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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 라이즈 사업 본격화 혁신 성과로 이어져야
지역 역량을 스스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자체와 대학이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균형 발전을 이루도록 하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구축(라이즈)’ 사업이 부산에서도 돛을 달았다. 기존 대학별 나눠먹기식 예산 배정 방식에서 탈피해 지자체와 대학이 지역 문제 해결 방안까지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라이즈 사업에 부산지역에선 올해 1341억 원 규모의 예산이 배정될 예정이다. 이 예산은 지난달 21개 대학별 122개 과제를 검토한 끝에 대학별로 배정 규모가 결정됐으며 12일 개최된 제5회 부산광역시 라이즈 위원회에서 대학별 추진 전략 발표와 공유 등을 시작으로 본격 집행될 전망이다.
부산은 지난해 교육부에 제출한 라이즈 5개년 계획에서 지·산·학·연 협력 생태계 구축을 통한 미래성장동력 발굴을 주요 목표로 선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지역 산업계의 수요에 맞춘 인재양성을 통해 지역 정주 취업률을 15% 끌어올리겠다는 내용 등이 최우선 과제로 포함됐다. 지역 산업에 맞춘 인재를 지역 스스로 양성하고 취업으로 연결해 지역에 자리를 잡도록 함으로써 기술과 인재의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 부산이 안고 있는 지역 인재유출 문제 등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부산시는 선제적인 지·산·학·연 혁신 생태계 구축을 위해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BISTEP) 산하 부설기관으로 출범한 부산라이즈센터의 이름을 최근 부산라이즈혁신원으로 바꾸고 차별화를 시도중이다.
이 같은 혁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라이즈 사업의 출범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일말의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초 교육부가 실시한 지역별 라이즈 사업 5개년 계획 평가에서 부산이 전국 최하위를 기록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평가를 통해 교육부가 약속한 1500억 원의 성과급 가운데 부산은 불과 35억 원밖에 받지 못했다. 1위에 오른 광주와 충북, 충남이 173억여 원을 받은 것에 비하면 20% 수준에 해당한다. 부산이 이처럼 낮은 평가를 받은 이유로 교육부는 사업 실행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꼽은 것으로 알려진다. 부산시의 분발이 더 필요하다는 예방주사로 여겨야 마땅할 것이다.
오는 2029년까지 5개년을 목표로 진행되는 라이즈 사업은 지자체외 대학의 ‘2인 3각’ 체제로 지역 혁신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기존 하향식 예산 집행이 아니라 지자체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공동기획 방식이 핵심이다. 부산시가 정책 방향을 설정하면 대학이 핵심 모델을 만드는 방식으로 상향식 접근이 가능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도 기업과 일차원적인 협력 관계에서 탈피해 대학 집단과 기업 클러스터 간의 입체적인 협력 방식에도 주력해야 한다. 청년이 지역에서 공부하고 지역에서 취직해 지역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론의 현실화를 목표로 하는 라이즈 사업의 성과 도출을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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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동남권 관문공항에 알맞은 시기는 언제인가
4월 초, 진로 강의를 간 적이 있는 부산 한 여고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생들이 수행평가를 위해 지역지와 중앙지의 차이점과 역할에 대해 궁금한 점을 메일로 묻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꼼꼼한 질문들에 답하면서 지방공항 논쟁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남부권 관문공항이 필요하다는 숙원에 ‘멸치 말리는 공항’ 운운하면서 국토 절반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을 모욕한 일부 언론을 지적하고, 가덕신공항 건설 확정에는 지역의 목소리를 전한 지역 언론의 역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지나간 이야기인줄 알았다.
한 달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국가계약법을 어기고 정부 입찰 공고에서 약속한 공사 기간보다 2년을 더 초과한 공사 기간을 반영해 기본설계를 내놓으면서 가덕신공항 공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국토교통부가 가덕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입찰을 처음 공고한 것이 지난해 5월이다. 세 차례나 단독 입찰을 했던 현대건설은 이런 조건을 잘 알고 수의계약에 참여하기로 해놓고는 6개월 만에 입찰 조건을 어긴 기본설계안을 들고 왔다.
국토부 장관은 현대건설의 공기 연장안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지만, 2029년 12월 개항, 착공 7년 후 준공이라는 정부 약속을 믿고 기다린 남부권 국민들만큼 황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덕신공항은 참여정부 때 국가적 이슈로 등장해 정권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부 기본계획으로 확정된 국정 사업이다. 국가계약법도 무시하는 전례 없는 건설사의 배짱으로 대규모 국책 과제가 최소 1년을 허비하게 됐다. 국정 과제를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할 국토부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이 사태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와서 정부 기본계획이 틀렸다면 동남권의 30년 숙원 사업을 정부가 타당한 근거도 없이 추진했다는 말이다. 공기 연장이 필수라는 건설사 논리가 맞다면 정부가 1년 동안 전문가 용역을 거쳐 수립하고 고시한 기본계획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대신에 엉뚱한 이야기들이 다시 흘러나온다. 가덕신공항 규모를 이야기하면서 ‘여의도의 몇 배’ 운운하는 것 정도는 수도권 중심 시각의 가장 가벼운 단계다. 정부가 약속한 국책 사업을 지연시키고 흔들어놓은 쪽은 따로 있는데, 일부 언론은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고 애초에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추진된 일정이라고 화살을 돌린다. 더 나아가 가덕신공항 자체가 표퓰리즘으로 결정된 사업이니 이참에 사업 추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운운한다.
기막힌 이야기는 더 있다. 인천공항은 2033년에 여객 수용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지방공항의 눈치를 보느라 5단계 확장의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내년에 수립될 제7차 공항개발종합계획에 가덕신공항 등 지방공항에 승객이 얼마나 분산되는지를 먼저 검토하겠다는 것을 두고 무분별한 공항 건설은 정치 논리고, 선거용으로 결정된 가덕신공항 건설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해공항은 포화 상태를 넘어선 지 오래고, 정부가 남부권의 관문공항으로 가덕신공항을 추진 중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선거철마다 남발되는 정치적 SOC(사회기반시설) 공약의 예견된 실패라는 분석도 등장했다. 가덕신공항과 나란히 예시로 든 것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후보가 나란히 들고 나온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 확대 공약이다. GTX A·B·C 노선의 신속한 추진과 수도권 외곽, 강원까지 가는 연장 노선에 더해 D·E·F 노선의 단계적 추진을 검토한다고 한다. 약 134조 원이 필요하다는데,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 예산은 13조 5000억 원이다.
동남권은 안전한 공항의 적기 개항을 바란다. 2029년 12월은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전제로 당긴 일정이 맞다. 동시에 엑스포를 지렛대 삼아 지역과 국가가 함께 생존하기 위한 전략상 마지노선이기도 했다. 나라를 망치는 수도권 일극체제에서 탈피해 국가의 새로운 발전 축을 가동하기 위한 목표다. 노인 인구가 청년 인구를 역전한 부산에서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도 미래를 계획하고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시간표다. 지금 이 순간도 인천공항을 오가는 데 연간 1조 원이 넘는 돈을 길바닥에 쏟고 있는 동남권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할 적기다. 지금 당장이라고 해도 늦었다. 안전은 기본이다. 신공항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가 2002년 129명 사망자를 낸 김해 돗대산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다. 무엇보다 동남권 국민들이 직접 이용할 공항이다.
정부는 동남권 800만 국민들과 정부 약속에 대한 신뢰를 최우선에 두고 안전한 공항을 제때 개항하기 위해 가능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국민들도 대선 후보들 중 누가 국가균형발전에 진정성을 갖고 가덕신공항을 말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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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슬픈 캐시미어
5월 한낮이 한여름처럼 느껴진다. 서늘한 냉기가 몸속을 파고드는 겨울, 비단만큼 부드러우면서도, 거위털만큼이나 가볍고 따뜻한 캐시미어 머플러나 코트는 멋쟁이들의 필수 아이템이다.
인도 북부 고원인 카슈미르를 비롯해 티베트, 몽골, 이란 등의 고산지대에 사는 산양들은 추워지기 시작하면 거친 털 사이에 가늘고 보드라운 털이 자라고, 봄이 되면 빠진다. 이 털을 모아 직조한 것이 캐시미어라고 한다.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 ‘섬유의 보석’으로도 불린다. 캐시미어의 고향이 카슈미르라는 사실이 최근 새삼 주목받는다.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세계의 지붕, 설산과 호수 주변을 노닐던 산양들의 평화로운 모습과는 정반대로 이슬람과 힌두라는 다른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이해가 맞물리면서 테러에 이은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한 이후 양국은 카슈미르도 6:4로 분할해 서로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최근까지도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무장 테러 단체의 총기 난사로 인도 여행객 등 28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번 사태가 빚어졌다. 확전을 거듭하며 양국 전투기 125대가 뜨고 미사일, 무인 폭격기까지 동원된 국지전이 벌어졌다. 공중 전투 규모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라는 평가도 있다.
사상자 수백 명이 나오고, 양국이 보유한 무기의 실제 전투 능력이 드러나고 있다. 파키스탄이 보유한 F16급 전투기인 중국산 J-10C가 인도의 프랑스산 최신예 라팔 전투기를 격추했다는 뉴스에 세계 방산업계와 군사 전문가들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중국 방위·항공 산업 능력에 놀라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중재로 휴전 합의가 있었지만 총성이 완전히 그치지 않았고, 언제 다시 불붙을지 알 수가 없다.
이념이든 종교든, 지향이 다른 사람들과 별 문제 없이 공존하던 사회가 어떤 때는 갈가리 찢긴다. 분열과 갈등의 씨앗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제국주의 패권 국가든, 공동체 내부의 모순을 외부의 적을 통해 눈가림하려는 부패한 지도자든, 불씨를 댕기는 세력들로 인해 지금도 혐오와 전쟁은 그칠 줄 모른다. 우리도 분단과 동족 상잔의 비극을 80년 가까이 안고 있다. 산양이 여유롭게 풀 뜯는 카슈미르,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는 비무장지대, 그날은 언제쯤 가능할까.
이호진 선임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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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역성장 시대의 건설업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대만에 추월당할 처지에 놓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니 신빙성이 상당히 높다. 손에 닿을 것만 같았던 GDP 4만 달러 시대는 5년 뒤에나 점쳐볼 수 있게 됐다.
역성장의 중심엔 건설업이 있다. 1분기 건설 투자는 건물 건설을 중심으로 3.2% 줄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무려 12.2%나 감소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건설업 총생산은 1.5% 줄었다. 국내 1분기 GDP 성장률이 -0.2%니 건설업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별달리 내세울 만한 주력 산업이 없는 부산에는 건설업 위기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사업이 지체되거나 무산되면서 지역 경제에 돈줄이 막혔고, 현장에 나가야 하는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실직 상태에 놓였다. 중견 건설사들이 부도나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니 수많은 하도급 업체들은 대금 받을 길이 묘연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설업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어야 했다. 금융이나 IT, 첨단 제조업 등 대안은 많다. 어느 것 하나 마땅한 산업을 육성하지 못했고, 지역 경제는 여전히 전통 산업인 건설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새 먹거리를 찾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하겠지만, 당장은 지역 건설업을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조기 대선은 지역 건설업의 위기이자 기회다. 대권 결과에 따른 리스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선 과정을 통해 지역 업계의 요구사항과 목소리를 중앙 무대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업계 상황이 너무나도 엄중하다보니 누가 대권을 잡든 ‘지방 건설업부터 살리자’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방 미분양 물량이 전국적으로는 11년 만에, 부산은 16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부동산 정책이 좌우될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동산 실수요자들이나 투자자들을 ‘투기꾼’으로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율을 70%까지 높이는 징벌적 세금을 거둬들였다. 부동산 대책만 28차례 발표했다. 그럼에도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천정부지로 뛰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이런 과오를 반복해선 안 된다.
지금은 수도권과 지방을 이원화하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써야 할 때다. 지방에 한해 다주택자 중과세를 폐지하고 미분양 주택에 대한 지원을 늘여야 한다. DSR 규제도 지방에서는 풀어주고, 멈춰버린 지방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방 건설업부터 정상화해야 한국 경제가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지역 업계도 뼈를 깎는 자세로 쇄신해야 한다. 정부가 보따리 풀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선 안될 일이다. 세금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달라 요구하는 대신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 1군 건설사와 견줘도 쉽게 밀리지 않을 경쟁력을 길러야 가덕신공항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지역 몫이 커질 것이다. 이참에 지방에 산재한 한계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20~30대 젊은 직원들이 왜 건설사를 탈출하려 하는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대선은 건설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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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 STO로 금융혁신의 길 열자
부산이 처한 현실은 냉혹하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으며, 한때 지역경제를 견인했던 조선업과 신발산업은 이미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외국 어선의 불법 조업, 지속되는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산업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대부분 일회성 보조금이나 단기 프로젝트에 머물러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부산은 기존의 전통적인 지원 방식을 넘어 근본적인 경제 혁신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 혁신의 열쇠는 바로 STO(증권형 토큰 발행, Security Token Offering)이다. STO는 부동산, 관광시설, 수산자원과 같은 실물자산의 소유권을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화하여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새로운 금융 모델이다. 이를 통해 일반 시민들도 소액으로 손쉽게 투자할 수 있고, 관련 업체들은 기존 자본시장법을 준수하면서도 보다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다.
부동산·관광시설·수산자원 등
실물자산 소유권 토큰으로 발행
소액 투자·업체 자금 조달 용이
글로벌 투자 유치에도 효과적
시, STO 법안 통과에 노력해야
금융기관 참여·행정 지원 필요
부산은 국내에서 STO 금융혁신을 실현할 최고의 조건을 가진 도시다. 연간 2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도시로서 해운대 해수욕장, 광안리 해변, 용두산공원 등 우수한 관광 인프라와 다양한 호텔, 리조트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또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불꽃축제와 같은 글로벌 문화 콘텐츠도 풍부해 이러한 자산을 토큰화하면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새롭게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운대의 주요 리조트나 호텔을 STO 방식으로 토큰화하면, 일반 투자자들도 적은 금액으로 부산의 관광 인프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투자자들은 호텔 운영 수익의 일부를 배당받게 되고, 관광 시설은 유입된 자금을 활용하여 시설 개선과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관광객 증가와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영화제, 웹툰, 드라마 등 지역 콘텐츠 제작에도 STO를 도입하면 콘텐츠 제작자에게는 안정적인 자금 확보를, 투자자에게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STO를 활용한 자산의 토큰화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투자 유치에도 효과적이다.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 주변 국가 투자자들이 부산의 매력적인 관광·문화 자산에 보다 투명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글로벌 투자 유입 통로가 새롭게 열리게 된다. 특히 부산의 수산자원을 STO로 활용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부산 지역 어민들은 최근 기후 변화와 외국 어선의 불법 조업, 장기화된 지역 경제 침체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식 어류를 기반으로 한 STO를 추진하면, 초기 시설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장군의 광어 양식장에서 1억 원 규모의 STO를 발행할 경우, 일반 시민들은 1만 원 단위의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다. 어민들은 이 자금으로 스마트 양식 시설을 구축하거나 생산량을 늘릴 수 있고, 투자자들은 어류 판매로 발생하는 수익 일부를 배당받는다. 이는 어민들에게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경영 환경을 제공하며, 투자자들에게는 명확한 수익 구조를 보장한다.
물론 성공적인 STO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다. 첫째, STO 법제화가 시급하다. 관련 법안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부산시는 중앙정부와 협력해 STO 법안이 신속히 통과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둘째,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금융위원회와의 협력을 통해 STO에 대한 명확한 규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BDAN)를 중심으로 금융기관들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부산은행과 같은 지역 금융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은 시장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셋째, 부산시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행정 지원이 요구된다. 공무원과 관련 기관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투자 유치와 홍보 전략을 계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공공 주도로 성공 사례를 만들어 민간 시장의 참여를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산이 STO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고 운영한다면, 이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전통 산업과 자산을 혁신적으로 가치화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금융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부산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지금이 바로 부산이 금융혁신의 선두 주자로 나설 최적의 시기다.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디지털 혁신이 부산을 시작으로 해서 전국으로 확산되는 미래를 기대하며, 부산시의 과감한 결단과 적극적인 실행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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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1대 대선 본격 선거운동 시작 국가 비전 경쟁 나서라
제21대 대통령 후보 등록이 마감됨에 따라 1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민주노동당 권영국, 자유통일당 구주와, 무소속 송진호, 황교안 등 후보는 6월 2일까지 22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 치러지는 선거다. 각 정당은 집단지성의 구심력을 발휘하고 국정 동력을 축적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원내 제1·2당은 대선 후보 자격이 흔들리기까지 했다. 국정 안정이 아닌 국민 불안감을 키우는 이상한 대선이 되고 말았다.
최종 김문수 후보로 확정되긴 했지만 국민의힘 후보 선출 중 벌어진 우격다짐은 온 국민을 경악시켰다. 당 지도부는 당내 경선에서 선출된 후보를 그림자 취급하면서 외부 영입 후보로의 단일화를 강제해 갈등을 자초했다. 뜻대로 되지 않자 새벽에 후보 공고와 접수를 강행하는 무리수까지 강행했다. 이로써 입당 하루밖에 안 된 한덕수 전 총리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당일 전 당원 투표에서 부결돼 김문수 후보가 복권된 것은 차라리 코미디다. 당 지도부의 막무가내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령 발동과 겹친다. 국힘 지도부는 정녕 대선 승리를 원한다면, 이처럼 당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비판을 성찰해야 한다.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사법부 흔들기도 도를 넘었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법원에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이례적인 속전속결 판결이 대선 일정과 후보 자격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으로 ‘사법의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하면 그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하지만 14일 국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고, 특검법까지 추진 중인데, 이는 과유불급이다. 정당이 불이익한 판결에 불만을 품고 사법부를 옭아매려는 것은, 사법부의 ‘선거 개입’ 못지않게 위헌적이다. 우리가 12·3 계엄령에 맞섰던 것도 입법부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 데 대한 저항이었다.
우리 헌법 1조는 국민 주권의 원리를 명시하고 있다. 국민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절차가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축이다. 이번 대선의 과제는 계엄과 파면으로 상처입은 민주주의를 치유하는 것인데, 이는 국민 통합이 병행될 때 가능하다. 그러려면 국가의 미래 비전이 공론장에서 숙의되고, 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선거의 본령이며, 그래야 안정적 국정 리더십이 탄생한다. 지금까지 정치공학과 당리당략에 골몰하고 국민의 체감은 안중에도 없었던 정치권은 대오 각성해야 한다. 내우외환 속에 대선 운동이 본격 시작됐다. 각 정당, 후보들은 국가 미래 비전으로 경쟁하고 국정 리더십 능력으로 평가받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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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물 건너가는 가덕신공항 2029년 개항 누가 책임지나
동남권 주민들의 염원을 담은 가덕신공항이 2029년 개항하지 못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부지 조성 공사 기간 연장안을 고수한 현대건설 컨소시엄과의 수의계약을 중단하는 절차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현대건설이 기본설계를 보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령에 따른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2029년 개항 목표로 차질 없이 추진하려면 가뜩이나 공사 기한이 빠듯한 상황에서 가덕신공항 공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2029년 ‘적기 개항’에 빨간불이 켜졌다. 가덕신공항 2029년 개항이 미뤄지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국토부는 더 이상 동남권 주민들을 우롱하지 말고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동안 현대건설 측은 기본설계안 중 공사 기간을 입찰 공고에서 제시한 84개월(7년)이 아니라 108개월(9년)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토부가 기본설계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공기를 다르게 제시한 설명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현대건설 측은 기간 연장안을 끝내 고수했다. 연약지반을 안정화하는 기간 17개월, 공사 순서 조정으로 인한 7개월 등 24개월의 추가 공사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의계약 중단에 이어 재입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재입찰을 진행할 경우 2개월가량 더 소요된다. 참여 업체가 나타난다고 해도 기본설계에 다시 6개월이 걸린다. 최소 8개월 이상의 지연될 경우 2029년 개항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재입찰 등을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해 일정 지연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지난해에도 원칙만 고수하다가 입찰을 잇따라 유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토부는 입찰과 관련,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10대 건설사 간 공동도급 범위를 2개로 제한했다. 반면 업계는 최소 3개 사 공동도급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은 국토부는 네 차례 입찰이 유찰되자 지난해 10월에야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수의계약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가덕신공항 조성 공사가 시간에 쫓기게 된 것은 국토부 책임이 크다. 부산시도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덕신공항 건설 공사는 단순한 개발 사업이 아니다. 국토균형 발전을 위한 남부권 핵심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국책 사업으로 추진됐다. 동남권의 염원을 담은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동남권 주민들이 적기 개항을 강조한 것은 조속한 개항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의미였다. 더욱이 가덕신공항은 정부 공약의 신뢰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기도 하다. 만약 개항이 늦어지면 수도권 일극주의의 대안으로 추진된 동남권 발전 전략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 부울경 초광역 교통망 구축 사업과 공항 배후단지 개발 등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적기 개항이 실제로 무산될 경우 지역민의 분노는 정부를 향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해결책 마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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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희망 고문 대선 공약
또다시 대선이다. 12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대선은 지역이 중앙에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각 지자체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등도 대선 때마다 지역 현안들의 대선 공약 반영을 위해 분주하다. 이번에도 부산에선 시와 부산상의, 시민단체 등이 최근 대선 공약에 포함되어야 할 과제들을 선정했다.
그러나 대선이 갈수록 보수 진보 양 진영의 정략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데다, 지난 대선 때 부산 공약의 진척 상황을 보면 대선 공약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직전 대선 주요 공약들이 결국 공수표가 돼 그간 지역에서 기울여온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현실을 보면서 허탈하기만 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공약한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전은 결과를 다시 떠올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완패했다. 당초 리야드와의 승부에서 대등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정부와 부산시의 준비 부족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북항 재개발 사업도 여전히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남권의 염원인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도 우여곡절을 거치며 드디어 첫삽을 뜨는가 했지만 다시 차질을 빚고 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 측이 공사 기간을 입찰 공고에서 제시한 84개월(7년)이 아니라 108개월(9년)로 고집하면서 국토부가 수의 계약 절차를 중단했다. 다시 입찰을 하든, 어떤 방식이든 당초 정부가 약속했던 2029년 개항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사이 중·장거리 해외 노선을 이용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오가는 동남권 주민들의 불편과 손해는 계속되고, 트라이포트 운영을 통한 동남권 발전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윤 전 대통령의 부산 핵심 공약이던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은행 이전이 부산을 실질적인 금융중심지로 성장시키고 동남권 산업 생태계를 업그레이드시킬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민의힘 주도의 공약에 의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철저히 반대했다. 월드엑스포 유치 실패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부산시와 정부가 추진한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역시 민주당이 외면했다.
결국 지난 대선에서 제시된 주요 대선 공약 중 실제로 이행된 것은 없다. 각 당 모두 서로 비난하기 바쁘지만, 쇠락하는 부산을 되살리기 위한 진심어린 노력은 양측 어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야당 설득에 소극적이었고,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모든 일에 반대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계엄령 선포와 그에 따른 탄핵으로 인해 대선은 예정보다 2년 일찍 찾아왔다.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이 완전히 새롭게 판을 짜야 할 가능성도 있다. 탄핵 이후에도 자중지란인 국민의힘은 이제야 후보를 정해 아직 발표된 지역 공약이 없다. 반면 이재명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은 일찌감치 공약을 발표했다. 3년 전 공약이었던 부울경 메가시티 구축과 해운·물류 클러스터 조성 외에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해사전문법원 설치라는 깜짝 공약을 내놨다. 해양산업의 기반을 강화하면서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강국의 중심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기에 북극항로를 개척해 대륙철도와의 연결을 통해 부산을 동북아 물류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도 더했다.
부산의 십수년 된 과제였던 해사법원 설립과 함께 해양수산부 이전까지 발표한 이 후보의 공약에 설렌 것도 잠시, 그는 수도권 공약을 발표하면서 인천에도 해사법원을 설립하겠다고 했다. 인천에 들어설 법원은 국제 해사사건 전문으로 특화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구상대로면 향후 해사사건은 ‘국내 부산, 국제 인천’으로 이분화한다. 해사사건 대부분이 국제계약과 관련한 분쟁을 다루는 해외 소송이다. 부산과 인천의 표를 의식해 해사법원 공약을 이용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부산이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공약도 단순히 선거용이란 의문을 낳는다.
지난 3년을 또 허송세월하면서 부산은 더 힘들어졌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8~39세 청년 인구를 추월할 정도로, 부산은 더 노쇠해졌고 경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소멸하는 지방을 살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할 때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산업은행 이전과 해양수산부 이전 등 각 당 공약 가리지 말고, 바로 행동에 옮기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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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뽀빠이' 그를 보내며
주걱턱에 닻 모양 문신을 한 우람한 팔뚝, 입에 문 파이프, 세일러복 차림의 그는 시금치만 먹으면 힘이 솟고 근육이 불끈불끈 커졌다. 만화 속에 살았지만 아이들에게는 누구보다 현실감 있는 영웅이었다. 미국 만화 캐릭터 ‘뽀빠이’(Popeye) 이야기다.
뽀빠이는 1929년 1월 미국의 한 신문에 연재된 한 줄짜리 만화 ‘팀블극장’을 통해 비중 없는 조연으로 처음 등장했다. “도와줘요, 뽀빠이!” 위기에 처한 올리브의 외침에 뽀빠이는 시금치를 먹고 나타나 악당 브루터스를 물리쳤다. 이렇게 시금치만 먹으면 엄청난 힘이 솟아 악당을 물리치는 뽀빠이는 등장 2년 만에 주인공으로 승격한다. 만화 속에서 그는 연인 올리브를 지켜내며 인기를 끌었고, 자주 내뱉던 “나는 나야, 그게 나의 전부야”라는 대사는 당시 참는 데 익숙했던 전 세계 소시민들의 억눌린 감정을 대변했다.
1933년에는 뽀빠이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만화영화 ‘뱃사람 뽀빠이’가 제작돼 세계 각국의 TV를 통해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980년에는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뽀빠이를 연기한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뽀빠이 하면 추억의 과자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1972년 2월 첫선을 보인 삼양식품의 ‘별뽀빠이’다. 당시로서는 꽤 낯선 형태의 과자로 라면은 끓여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달콤하고 고소한 과자로 재탄생했으며, 별사탕이 함께 들어 있어 골라 먹는 재미도 더했다.
이 만화 속 영웅은 시간이 흐른 뒤 한국에서 또 하나의 이름을 얻는다. 바로 뽀빠이 이상용이다. 그는 1975년부터 9년간 KBS 어린이 노래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의 진행을 맡으며, 당시 만화 캐릭터 뽀빠이의 인기에 힘입어 뽀빠이 아저씨라는 별칭을 얻는다. 단신임에도 굵은 팔뚝과 당당한 체격으로 아이들 앞에 선 그는 세일러복에 수병 모자를 쓰고 한 팔로 아이 몇 명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으로 TV 앞의 어린이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됐다. 그의 별명처럼 그는 진짜 뽀빠이였다. 특히 1980년대부터는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 수백 명에게 수술비를 지원하며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했다. 그 시절 뽀빠이 이상용은 아이들을 지켜주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어른이자 든든한 수호자였다. 그가 최근 세상을 떠났다.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어릴 적 과자봉지 속에서 골라 먹던 별사탕처럼, 그의 존재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