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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죄가 없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오빠 수난 시대’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 등장한 ‘오빠’ 단어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브로커의 전화에 오빠가 나서서 정상 절차로는 어렵던 신약 허가 기간을 확 줄여준 사실이 드러나며 온 국민이 도대체 어떤 ‘오빠-동생’ 사이인지 지켜보게 만들고 있다.
되돌아 보면 일상의 호칭인 오빠가 정치 스캔들이나 권력 남용, 불미스러운 성희롱 사건에 얽혀 수난을 겪은 사례가 한두 차례가 아니다. 오빠는 시대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무대 위 스타를 지칭하는 ‘애정의 단어’였다가 ‘정치 거래의 언어’로, 때론 ‘위력 행사의 폭력’으로 변모했다. 오빠의 변천사를 한 번 돌아봤다.
청춘의 우상이자 낭만의 대명사
오빠는 남매 사이에, 연령 차가 있는 남녀 사이에, 때로는 연인 사이에 쓰이는 친근함과 친밀감 담은 호칭이다. ‘동네 오빠’ ‘선배 오빠’ ‘옆집 오빠’ ‘교회 오빠’, 온갖 오빠가 있다. 관계와 상황, 어조에 따라 오빠 호칭에 담긴 감정도 다양했다. 서울 가면 비단 구두 사다 줄 것만 같던 전통적 의미의 오빠에 본격적으로 사회적 의미를 더한 것은 대중문화였다.
1960~70년대 ‘원조 오빠’ 남진·나훈아를 거쳐 ‘영원한 오빠’ 조용필이 인기를 끌면서 오빠는 대중문화 전면에 등장했다. 얼마나 오빠가 편했던지 리처드 클리프 같은 외국인도 ‘오빠’였다. 공연장에서 터지던 오빠 함성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 눌려 있던 여성들이 열정과 애정을 발산하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언어였다.
스포츠에도 오빠가 생겨났다. 대략 1990년대 농구대잔치에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스타들이 등장했을 때다. 농구장을 가득 메우던 ‘오빠 부대’를 향한 우려 섞인 시선도 없진 않았지만 순수한 팬심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대중문화 산업도 오랜 기간 스타를 친근하고 보호받고 싶은 오빠로 인식하게 하는 데 성공, 유대감과 충성도 높은 팬덤을 만들어 냈다.
정치에 입성한 ‘오빠’, 팬덤을 만들다
이 낭만적인 단어가 정치와 결합하면서 의미 분화가 이뤄졌다. 정치에서 오빠 단어 효과를 본 정치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꼽힌다.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대선 과정에서 세를 불려나가면서 열혈 지지자를 비판하는 ‘노빠’(노무현 오빠 부대) 용어가 나왔다. 하지만 노사모 회원들은 스스로 노빠를 자처하면서 긍정적 의미로 바꿔냈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빠’가 자연스러워졌다.
수긍이 쉽게 안 가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오빠’ 수혜자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 대통령 지지자들은 ‘경제 먼저, 오빠 먼저’ 플래카드를 들고 지지 활동을 펼쳤다.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와 대비시키고, 경제 대통령과 오빠 이미지를 앞세워 지지세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대선 때도 트로트곡 ‘오빠만 믿어’를 개사한 ‘명박만 믿어’를 로고송으로 쓴 사실을 보면 오빠 마케팅 효과가 없진 않았나 보다. 이때만 해도 정치권에서도 ‘오빠’ 호칭은 정치 팬덤을 지칭하거나 지지를 유도하는 친근함의 의미가 강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오빠의 추락’…공사 경계를 넘다
오빠 호칭에 부정적 의미가 강화된 것은 오빠를 앞세워 공적·사적 영역이 허물어지는 일이 터지면서다. 2007년 신정아 씨 사건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을 가리킨 ‘예일대 오빠’라는 표현이나,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윤관석 전 의원과의 통화 중 “거기 해야 돼 오빠”라고 말한 녹취록이 대표적이다. 공식 호칭 대신 오빠라는 사적 호칭이 사용된 정치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오빠는 공적 권력과 은밀한 청탁을 뒤섞는 매개로 조금씩 자리 잡게 됐다. 부당한 뒷거래가 있는 것처럼 비쳤고, 때론 정권에 부담이 가기도 했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불거진 ‘오빠 로비’ 의혹도 국민에게 유사한 인식을 부르며 연일 파장이 커지고 있다. 후보자와 사적 친분이 있는 브로커가 오빠라고 부르며 이권 청탁을 시도했고, 김 후보자가 그 청탁을 적극적으로 들어줬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오빠-동생’이라는 사적 소통 구조가 권력의 그늘에서 작동한 것 아니냐는 점에서 국민 공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물이 공적인 검증과 권한 행사가 핵심인 법무부 장관 수장에 적합하냐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오빠’ 오남용, 부메랑이 되다
정치인 스스로 부적절한 ‘오빠’ 표현을 써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도 잦았다. 우근민 전 제주지사는 2002년 여성단체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발 당하자 “오빠 동생 하는 사이였다”는 황당한 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반발을 불렀다. 우 전 지사는 추후 대법원으로부터 성추행 최종 판결을 받았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오빠 오남용 사례도 있다. 2019년 이 의원이 단식투쟁을 벌이던 황교안 당시 대표를 풍자하는 과정에서 오빠를 잘못 끌어다 쓴 일이다. 이 의원은 황 대표를 비판한다면서 나경원 의원의 이름을 빌려 ‘황교안 오빠, 나경원 올림’ 이란 가상 편지를 써 SNS에 올렸고, 성희롱성 지적에 부랴부랴 글을 수정했다.
최근 사례로는 지난 총선 때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하정우 후보 지원 유세 현장에서 초등학생에게 “여기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유도해 논란이 벌어진 일이 있다. 이 사태에 국립국어원까지 나서서 초면에 나이 차이가 40세 이상 나는 연상의 남성에게 오빠 호칭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답변까지 내놨다.
정치 무대에서 오빠가 등장할 때마다 예외 없이 불거지는 ‘오빠 게이트’, 혹은 ‘오빠의 정치학’은 이제 한국 정치가 넘어야 할 음습한 유산이 돼가고 있다.
권력 가리는 ‘오빠’의 일상화
“교수라 부르면 F학점, 오빠라고 부르면 A학점을 주겠다” “‘오빠, 오빠’하며 술을 따라야 한다” “탄탄대로 걷게 해 줄게. 오빠만 믿어” “오빠들 만나러 가려면 수업 빠져도 돼”…. 쉽게 안 믿기겠지만 최근 수년간 실제로 쓰여져 피해자까지 만들어 낸 말들이다.
오빠를 교묘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쓰는 일은 영역이 따로 없다. 교단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스스럼없이 내뱉는가 하면, 공직 사회나 민간 기업에서 상급자가 동료 직원들에게 위력을 행사할 때 오빠라는 가면으로 가렸다. 위계가 분명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성추행과 성희롱은 피해자가 상하관계 때문에 문제 제기를 못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렸다는 점에서 비겁하기까지 하다.
공적 권력과 사적 친밀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위력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오용된 오빠라는 호칭. 공과 사의 경계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한때 정겹고 낭만적이던 이 단어가 예전의 순수함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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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승원 임명 강행하면서 국민의 신뢰 회복할 수 있겠나
오늘은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기자회견으로는 일곱 번째인 이번 회견을 앞두고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국정 현안들에 대한 소통을 예고한 바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기자회견이 최근 급락하고 있는 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을 반등시키려는 의도에서 급히 마련된 것이라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소통 시도는 적을수록 비판의 대상이 될지언정 빈번함은 오히려 그 자체로 환영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기자회견은 전날 국회에서 벌어진 여권의 무리수로 인해 과연 어떤 메시지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인지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국회 법사위는 17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전격 채택했다. 인사청문회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며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의결이 이뤄졌다. 김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한 반대 응답이 과반을 이루며 찬성의 배를 넘는 등 압도적 반대 여론 속에서도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청와대와의 교감 없이 여당 단독으로 이 같은 무리수를 두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는 이 대통령 공소 취소 의원 모임을 이끈 김 후보자의 이력으로 미뤄 공소 취소를 위한 움직임으로까지 해석된다.
이날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 지지율 급락에 대해 “폭과 속도가 굉장히 세다”면서 공소 취소와 연임 개헌 등 지속적인 의구심이 이어지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연임하지 않겠다’는 7음절 멘트를 밝히고 재판을 받으라는 요구를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해 온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오늘 예정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는 이와 관련한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돌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기자회견 전날 공소 취소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무리수를 둠에 따라 신뢰 회복을 위한 부담은 오롯이 대통령으로 향하게 됐다.
민주당이 주도했다고 하더라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절차는 이제 마무리가 돼 버렸다. 김승원 후보자가 합법적으로 법무부 장관이 되는 데 있어 남은 절차는 대통령의 임명 여부 뿐이다. 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스스로 민주당과의 교감을 만천하에 알리는 셈이 될 것이다. 신뢰 회복을 위해 기자회견을 한다는 대통령이 여론을 철저히 외면하는 결단을 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여론을 백안시하고 오만한 판단으로 계엄이라는 자폭을 선택한 전 정권의 반면교사가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신뢰 회복을 위해 이 대통령은 대선에 나설 때처럼 국민을 향한 간절한 마음가짐을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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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국인 16% 부산 찾는데 소비는 고작 8%, 갈 길 멀다
K팝과 K푸드 등 한류 문화 인기에 힘입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부산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아름다운 해안 경관과 대도시 인프라를 갖춘 부산의 다양한 매력에 빠져 이른바 ‘부산 앓이’를 호소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6월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역대 최다 수준인 242만 명을 넘어섰다. 연간 외국인 관광객 400만 명 유치를 계획한 목표도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당일치기 여행이 증가하는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산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더욱이 부산을 찾는 외국인은 늘었지만 적극적 소비로 연결되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17일 공개한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894만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이 방문한 지역을 살펴보면 서울이 76.8%, 부산이 15.7%, 제주 9.7% 등으로 집계돼 관광산업에서도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이들은 지난해 국내에서 카드로 총 11조 7382억여 원을 소비했지만 이중 70.9%에 해당하는 8조 382억 원이 서울에서 사용됐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산에서 사용한 카드액은 8%인 9396억 원에 그쳐 방문자 수 대비해 절반 수준의 소비만 이뤄졌다는 것을 내비쳤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산에서 소극적으로 지출한 것은 ‘스쳐가는 관광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서울 등 수도권에 머물면서 부산으로 당일 여행을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여행객들이 많은 상황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청년층 사이에선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부산 관광지를 돌아보는 이른바 당일치기 ‘특전사 여행’도 유행하고 있다. 중국과 가깝고 부산 교통이 편리한 데다 바다와 원도심, 전통시장 등 서로 다른 유형의 관광지를 하루 일정으로 즐길 수 있다 보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행객 증가는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장기 체류와 소비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무척 안타깝다.
관광이 소비로 연결돼야 지역 경제도 활성화된다. 관광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부산에 더 오래 머물도록 만드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외국인 부산 재방문율이 2024년 35.5%에서 지난해 26.7%로 낮아진 것도 세밀한 관광 전략 부재에 따른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부산시는 해운대 해변열차 등 체험형 시설을 확충하고 다양한 관광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부산을 거점으로 삼아 울산과 경남, 경주 등 인근 도시까지 여행토록 하는 ‘남부권 관광 베이스캠프’ 전략도 필요하다. 시와 관광업계가 합심해 진정한 부산 관광 르네상스 시대를 열 특단의 정책을 고민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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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포커스온] 극장으로의 귀환
올 하반기 극장가 흥행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5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 수는 17일 기준 1092만 명을 기록하며 11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놀런 감독은 2014년 블랙홀 열풍을 일으킨 SF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어 한국에서 ‘쌍천만’ 감독으로 등극했다.
‘오디세이’가 국내에서 흥행한 이유로는 놀런 감독이라는 브랜드, 아이맥스 촬영, 고전의 재발견이라는 화제성이 꼽힌다. ‘인셉션’ ‘인터스텔라’ ‘오펜하이머’ 등을 통해 놀런 감독은 국내 관객에게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오디세이’는 아이맥스 전용 카메라로 영화 전체를 촬영한 첫 영화다. 아이맥스는 일반 영화관보다 훨씬 큰 화면과 높은 해상도, 특화된 음향 시스템을 통해 관객이 영화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거대한 자연과 전투, 신화적 세계를 압도적인 화면과 사운드로 구현하면서 대형 스크린에서 볼수록 만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퍼졌다.
특히 부산 CGV 센텀시티 아이맥스관,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 등 특별관을 중심으로 예매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영화 관람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됐다. 아이맥스 티케팅 전쟁조차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는 2030세대의 분위기도 흥행에 한몫했다. 여기에 일반 상영관 관람 후 아이맥스관을 다시 찾아 관람 경험을 비교하는 ‘N차 관람’ 열기는 ‘오디세이’가 낳은 진풍경이다.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분도 돋보였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원작에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의 면모가 부각됐던 오디세우스가 영화에서는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문명의 몰락을 초래한 인물이자 전쟁으로 고통받는 인간으로 그려졌다. 놀런은 원작을 과감하게 비틀어, 동시대 문제 의식을 담아냈다. 영웅의 모험담이 아닌 전쟁의 상처와 문명 붕괴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 집중한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 속 인종 대립이나 전쟁의 야만적 행태에 대한 해석을 통해 현재 벌어지는 이란-이스라엘 전쟁과 이민자들에 대한 폭압 등 시대적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영화와 원전을 비교해 보려는 관객의 ‘지적 호기심’과 인문학적 관심은 스크린셀러 열풍으로 이어졌다. ‘오디세이’ 관련 완역본, 해설서, 입문서, 만화책 판매량이 급증한 것이다. 영화에서 시작된 관심이 관람을 넘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문화적 행위로 이어진 셈이다.
극장가는 최근 수년간 침체를 겪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억 2668만 명이던 연간 극장 관람객 수는 2020~2021년 연간 6000만 명 내외로 줄었다. 이후 2023년 1억 2514만 명까지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1억 609만 명으로 감소했다. 숏폼 콘텐츠가 보편화하고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관객의 소비 패턴이 달라지면서 영화가 극장에 가야 할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야 관객이 시간과 돈이라는 적잖은 비용을 들이는 시대가 됐다.
놀런 감독이 컴퓨터그래픽 사용을 최소화하고 아날로그적인 촬영 기법을 고수한 필름 신봉자라는 점은 인공지능(AI)과 컴퓨터그래픽(CG) 만능 시대에 지친 관객들에게 ‘디지털 디톡스 효과’를 줬다. 인류의 원형적 서사를 아날로그적인 기술의 영화로 본다는 것이 향수를 일으켰다. 시각적 효과와 현장감 등 극장에서만 온전히 체감할 수 있는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올 3월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수 1692만 명을 기록했고, ‘오디세이아’가 천만 영화로 등극하면서 극장가가 지난해의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신호다. 다만 기록적인 흥행작이 나오는 것과 영화 시장 전반에서 다양한 작품이 고르게 관객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단순히 거장 감독의 이름값, 화려한 출연진, 막대한 제작비만으로는 관객을 붙잡긴 어렵다. 반드시 극장에서 관람해야 한다는 확실한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플랫폼 다변화 시대에 극장 영화가 살아남을 핵심경쟁력이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들이 진검승부를 펼친다. 한국판 영화 ‘인턴’이 16일 개봉했고, 23일엔 시대극 ‘암살자(들)’과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선보인다.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23일부터 2주간 극장 개봉한다. 올여름 대형 외화에 집중됐던 관객의 선택이 한국 영화로 반드시 이어져 극장가의 회복세가 지속하기를 바란다. 10월 6~15일 열리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도 관객들의 극장 귀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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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쇄빙연구선과 극지강국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ARAON)’가 2009년 11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부설 극지연구소(소유·운영 주체)에 인도돼 그해 12월 18일 인천항에서 남극을 향해 출항했다. 아라온호는 첫 출항에서 1m 두께의 얼음을 깨며 항해하는 쇄빙 능력 실증 테스트 및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후보지 조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20여 개국만 보유하고 있던 ‘쇄빙연구선 보유국’ 반열에 올라 극지 연구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적인 조선 강국이었지만 쇄빙선 설계·건조 경험이 전무했다.
이후 17년이 지난 2026년 9월 11일 경남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는 제2 쇄빙연구선인 차세대 쇄빙연구선 착공식이 열렸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추진 10년 만인 지난해 7월 29일에야 한화오션과 지각 건조 계약을 체결한 이후 14개월 만이다.
해수부는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를 위해 2015년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요청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후 2021년 예타를 통과해 극지연구소가 2022년부터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총사업비는 3176억 원.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총톤수 약 1만 6560t에 길이 140.8m로, 아라온호(7507t·111m)보다 규모가 크고 승선 인원도 100명으로 아라온호(85명)보다 많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예정대로 2029년 완공되면 2030년부터 정식으로 북극 연구에 투입된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운항되면 북극 연구(북극 고위도 전담)를, 아라온호는 남극 연구를 전담하는 ‘투트랙 체제’로 운용된다. 이 경우 남·북극 연구 항해 일수는 연간 약 85일에서 약 270일로 3배 이상 늘어난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아라온호보다 약 50% 향상된 쇄빙 능력을 갖추게 된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준공 시 한국은 남극 2개(세종·장보고), 북극 1개(다산) 등 3개의 과학기지와 2척의 쇄빙연구선을 동시에 운영하는 ‘투트랙 체제’를 구축한다. 고위도 북극 연구의 주도권 확보, G7급 극지 연구 인프라 완성 등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급 극지 강국으로 도약하게 된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사업의 차질 없는 완수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철저한 품질 관리 및 공정 준수 △예산의 안정적 증액 및 연차별 집행 △운용 인력 선제적 양성 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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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고전 공부로 알아가는 참다운 나
뜨거웠던 여름을 보냈던 시간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게 느껴지는 선선한 계절이다. 역시 가을이 되니 공기가 마냥 청량하기만 하다. 땀 흘리며 살갗을 찌르는 뜨거운 태양 빛을 식히느라 서둘러 에어컨이 돌아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마음과 걸음걸이가 엊그제처럼 아득하다. 계절이 순환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를 리 없는 우리지만, 때로는 추위나 더위가 한정 없이 지속될 것처럼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지난 사건과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생겨나는 ‘사후적인’ 느낌과 겹치면서,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시간과 사건을 은근히 염려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흐르기도 한다는 점을 넌지시 던진다. 그러니까 하루하루 순간을 집중해서 살아가는 일과, 이미 지난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후회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얼마나 정신적인 성숙에 큰 차이를 주는지 생각한다.
그럴듯한 해설 난무하는 강연 범람
진정한 마음의 양식·가르침 구해야
삶의 본질 깨닫고 정신적 성장 이뤄
최근 몇 달 동안 하루 서너 시간 정도를 할애해서 듣는 유튜브가 있다. 고전 강좌다. ‘고전 강좌’란 말은 질릴 정도로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동서양의 고전을 강의하는 매체나 공간은 허다하다. 하다못해 동네 주민센터나 복지관 같은 데만 가더라도 고전 커리큘럼이 게시판에 내걸려 있을 정도로 우리와 ‘고전’은 밀접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진다. 고전을 읽는 일은 익히 아는 것처럼 우리에게 마음의 양식을 주고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오래전부터 고전을 강요하고, 읽고, 인용하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고통과 폭력과 상처로 얼룩져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거짓과 속임수, 힘 있고 가진 자들의 횡포와 농락, ‘진보’나 ‘보수’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소수 의견에 대한 무시와 배제, 그리고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나머지 인문학에 무지하거나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스타 저자나 강사의 번지르르한 말만을 숭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전’은 범람하지만 정작 그 가르침은 망각되고 마는 현실이다.
최근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로부터 본격적으로 뻗쳐 나왔던 서양철학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리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 여기에 사랑과 자비를 구현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기독교 및 불교 사상의 정수 등을 담은 고전의 말씀을 차례차례로 일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문학을 전공하고 비평 활동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틈틈이 읽었던 다양한 장르의 독서 편력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AI(인공지능)처럼,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지적·문화적 트렌드를 나타내는 개념이나 키워드와 관련한 책 읽기는 한시적으로만 유용할 뿐 시간이 지나면 증발하는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마는 경향이 잦다. 전공 분야인 문학, 미학, 예술 방면은 글쓰기와 관계없이 꾸준하게 읽고 있는 편이지만, 정작 고전으로 분류되는 분야의 탐색은 게을렀던 게 사실이었다.
하는 일이 늘 책과 가까이하는 업이지만, 어느 순간 지금까지 읽고 궁리했던 사유를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어딘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범주와 영역을 발견한 차 다양한 철학과 종교 관련 유튜브를 일별하다 지금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고전 강좌를 찾은 것이다. 알고 보니 십수 년 전 띄엄띄엄 들었던 강좌였다. 그때는 강좌 대표의 남다른 ‘아우라’와 어떤 ‘자명한’ 식견을 몰라보고 내용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금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강좌를 반가운 마음으로 구독하면서 일과 중 점심시간과 자기 전의 시간대를 할애하는 중이다. 동서양 철학과 경전을 일이관지로 꿰뚫는 강사의 지식과 혜안은 둘째로 치고, 고전을 단지 지식을 흡수해서 실천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와 목적을 경전과 철학에 등장하는 수많은 성인·성자들의 말씀으로 뒷받침하는 구성으로 강의 주제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에 빠지다 보면 얼핏 얼핏 ‘나’를 다시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곤 한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한국에서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1세대 강사뿐만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와 철학 관련 고전 강좌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자명한 인식과 지혜를 솟구치게 하는 매체를 만나게 되어 한없이 기쁜 날이다. 4대 성인이라 일컫는 석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숱한 성자들이 강조했던 말씀의 내용과 원리가 어디에서 하나가 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강사의 수련 체험과 개념의 일치를 통한 자명한 논리로 받아들이는 속에 내 정신의 양분도 새록새록 채워짐을 느낀다. 2000년이 넘는 세월에서 살아남은 말씀, 즉 고전이 고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함께 이 계절을 책을 넘기며 숙고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이런 속에 참다운 나를 더욱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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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20세기의 오디세이, 윤이상의 '예악'
9월 17일은 한국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태어난 날이다. 39세의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난 그는 프랑스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서 음악의 새로운 사조를 익혔다. 그러다가 1959년 독일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여 큰 반응을 얻었다. 그 음악회에서 지휘를 맡았던 브루노 마데르나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윤이상을 끌어안으며 “유럽 현대음악이 가보지 못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라고 극찬했다. 현지 신문은 “동양의 유산이 서양 현대음악의 막다른 골목(엄격한 음렬주의의 한계)을 깨뜨릴 새로운 열쇠가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그때까지 유럽 음악가들에게 동양이란 그저 오페라 ‘나비부인’이나 ‘투란도트’에 쓰인 것처럼 이국적인 에피소드나 소재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후 엄청난 속도로 신작을 발표하던 윤이상은 1966년에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관현악을 위한 ‘예악’(禮樂)을 초연했다. 이 곡은 조선 시대의 종묘제례악을 서양 오케스트라 속으로 불러와서 벌인 음의 축제와도 같았다. 이로써 윤이상은 “동양과 서양을 완벽하게 결합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극찬을 받으며 일약 현대 음악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윤이상의 음악은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 곡에서 들을 수 있던 식의 멜로디가 없다. 정해진 조성도 없고 익숙한 화성이나 리듬도 없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대신 음향과 음색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당대의 무조음악이나 음향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윤이상의 특별한 점은 현대음악의 기법을 동양이라는 소재와 정신계에 놓고 결합한 것이다. 윤이상이 만든 음향은 생성되고 움직이다가 소멸하는 자연의 이치를 따라간다. “동양에서는 사람이 혼자서 음악을 만들지 않으며, 음향이 이미 그곳에 먼저 존재한다… 그러므로 동양 사람들이 말해오기를, 음악이란 작곡하는 것이 아니고 낳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우주에 작은 부분이 탄생하는 것이다”라고 윤이상은 말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에 ‘20세기의 오디세이’로 불리던 작곡가가 있었으니, 그가 윤이상이었다. 신화 속의 오디세이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20세기의 오디세이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95년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국에서 통영국제음악제와 윤이상평화재단이 출범했고,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리고, 윤이상 기념관이 세워졌다. 그리고 2018년에 베를린에 쓸쓸히 잠들어 있던 윤이상의 유해가 통영으로 이장되었다. 그의 묘비에 적혀있던 ‘처염상정’(處染常淨), 비록 혼탁한 곳에서도 항상 정결함을 잊지 않는다는 그 문구도 같이 한국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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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항만공사 통합 역효과' 결론 뒤집는 정부의 자가당착
정부의 부산·울산·인천·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 통합안에 대한 반발이 격화되고 있다.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은 물론 각 지역 해운·항만 업계, 시민사회, 정치권까지 가세해 날이 갈수록 세를 불리고 있다. ‘한진해운 강제 해체’가 떠오를 정도다. 이런 전방위 반발은 정부가 불렀다. 분명한 통합 목적도 제시하지 않고, 소통 없이 추진한 결과다. 예산 절감과 효율성만 잣대로 통합을 밀어붙인 때문이다. 4개 항만 특성은 사라졌고, 4개 항만공사 전문성도 묻혔다. 세계적 흐름에도 맞지 않다. 싱가포르항과 상하이항, 로테르담항 등은 민영화로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데, 우리만 국영화를 강화하겠다는 ‘거꾸로 행보’다.
따질수록 이번 통합 추진이 졸속임이 분명해진다. 2011년 국토해양부가 중앙대 연구진에 의뢰해 4개 항만공사 통합 가능성을 진단한 결과, 이미 ‘통합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는 결론이 났다. 통합 시 인건비, 행정 비용, 업무공간 비용 등으로 50억 4000만 원이 줄어들지만, 의사 결정의 비효율, 우수 항만공사 효율성 하락 등으로 역효과가 크다는 게 골자다. 부산항·울산항에는 통합이 ‘독’이 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4개 항만공사 체제 유지 시, 부산·울산 항만공사 효율성은 1.0으로 ‘통합 항만공사’ 효율성(0.635)을 크게 웃돌았다. 십수 년 전 두 항만공사의 경쟁력과 노하우가 이미 증명된 셈이다. 타 항만공사와의 통합으로 전체의 효율 저하도 우려된다.
당시 보고서는 지방분권 측면에서도 통합이 부정적이라는 전망도 담았다. 4개 항만공사 통합이 지방화·지역화라는 국가 목표에 역행하고, 특화된 항만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지방정부와의 갈등, 내부 반발 같은 부작용도 우려했다. 이번 정부 발표 이후, 이 같은 보고서의 예측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똑똑히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정부가 최소한 전문기관에 맡겨 통합에 따른 경제성과 효율성을 따져보기라도 했다면 모르겠다. 20년 운영 노하우와 경험을 쌓은 공공기관들을 통합한다면서 ‘감’만으로 하겠다는 꼴이다.
마침 세계 항만공사 수장도 “항만공사 통합보다는 분리 운영이 옳다”는 의견을 냈다. ‘14회 부산항만컨퍼런스’ 참석 차 부산에 온 옌스 마이어 국제항만협회 총재는 “항만 분리 운영이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당 경쟁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효율성을 키울 수 있는 방안으로 분리 운영을 제시한 것이다. 각국 항만공사들이 경쟁 격화에 대비, 조직을 슬림화하고 경영 마인드를 강화하는 추세다. 정부가 내세운 통합 명분인 ‘기능 중복 해소, 과당경쟁 완화, 조직 효율화’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것이다. 북극항로 개척으로 해양수도를 구축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에서 우리 항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항만공사 통합을 추진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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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가덕신공항 공사비 뭉개는 기획예산처, 지역 안중에 없나
이재명 정부의 국책사업 추진 속도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메가 프로젝트의 하나인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와 관련한 사업 추진은 속도전을 넘은 전격전까지 거론될 정도다. 국운이 걸리다시피 한 국책사업의 이 같은 속도전 양상에서 유달리 예외가 되는 사업이 있다. 동남권의 미래는 물론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이 걸린 초대형 사업이라 꼽히는 가덕신공항 건설이 그것이다. 건설 필요성 제기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장장 20년이 넘는 이 사업은 다음 달 예비계약을 앞두고 건설 비용 증액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으나 예산 관련 부처의 외면으로 또다시 사업 지연이 우려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국무조정실은 최근 예산 관련 정부 부처인 기획예산처가 총사업비 관리 지침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가덕신공항 사업을 추진하는 게 맞다고 조율했다. 가덕신공항 사업이 수년째 지연되면서 늘어난 공사비 6000억 원에 대해 정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을 경우 건설사 대거 이탈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부산시당은 기획예산처와 관련 지침 개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18일 건설사와 국무조정실, 국토부 관계자까지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기획예산처는 국무조정실의 조율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통한 가덕신공항 특별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입장만 고수하며 끝내 간담회 불참을 통보했다.
기획예산처가 가덕신공항 공사비 관련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표면적으론 공사비 증액을 떠안았다가 책임 문제가 추후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비친다. 하지만 지역에선 기획예산처가 이재명 정부 실세 중 한 명인 박홍근 장관을 뒷배로 해 배짱을 부린다는 해석도 나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음 달 예비계약이 임박한 상황에서 소통마저 거부하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게 해석의 배경이다. 또 다른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가덕신공항 특별법 개정의 경우 국회 통과가 불확실하고 사업 추진이 다시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사실까지 감안하면 달리 해석할 여지도 없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역 균형발전이 대한민국의 살 길이라고 규정하며 관련 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왔다. ‘5극 3특’ 조성이라는 기치 아래 추진되고 있는 메가 프로젝트도 결국은 지역 균형발전이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다. 가덕신공항 건설은 오래전부터 지역 균형발전을 실현할 가장 대표적인 국책사업으로 꼽혀 왔다. 지역 균형발전에 국운을 걸다시피 해 왔다면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에도 더 드라이브를 걸어야 마땅하다. 국책사업은 결국 예산으로 현실화하는 것이며 사업에 쏟는 예산은 국책사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의지라 할 수 있다. 지역은 안중에도 없는 기획예산처의 행보에선 대통령의 지역 균형발전 의지를 전혀 읽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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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왜 오디세이 거인은 실물이었을까?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 한 달여 만에 1000만 관객 몰이에 성공했다. 3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올해 최대 흥행 외화 자리를 꿰찼다. 리뷰와 평점 등을 살펴보면, 비평가는 물론 일반 관객들의 평가도 상당히 좋다. 장대한 서사도 흥미롭고, 압도적인 화면과 사운드도 몰입감을 높였다는 평가가 많다.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은 이런 복잡한 분석을 묶어서 축약해 “재밌다”라고 표현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겐 독특한 ‘장인정신’이 있다. 사실 집착에 가깝다. 할리우드에선 일상이 된 ‘CG’를 거부하고,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배제해서 촬영한다. 오디세이는 아이맥스용 필름으로 100% 촬영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도 CG가 아니라 18m 크기의 실제 움직이는 구조물이었다. 거인족들도 장신 배우들을 고용해 원근법으로 촬영했다. CG로 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디지털의 도움을 최소화하며 번거로운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CG가 아무리 정교해도 실물보다 못하고, 실물이 없으면 배우 연기도 어색하다는 게 놀런 감독의 생각이다. 그가 거장 반열에 오르게 된 것에 이런 고집스러운 촬영 스타일도 기여했을 것이다. 설령 CG로 실제와 똑같은 결과물을 만든다 해도, 사람들은 실물 촬영을 더 높게 평가할 것이다.
2009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소속 울리히 커크 연구진은 fMRI(자기공명영상)으로 재밌는 실험을 했다. 참여자에게 똑같은 추상화를 주면서, 사람 또는 컴퓨터의 작품이라고 라벨링을 했다. 이때 참여자들의 뇌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할 때 즐거움과 보상을 처리하는 뇌 영역이 더 활성화됐다. 인간은 예술을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예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투입된 아날로그적인 노력에도 반응한다.
SNS와 쇼츠 영상이 대세인 요즘 세상에서 북콘서트와 북페스티벌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책을 읽고,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어느 지역 독서대전에 7만 명이 왔다 갔다는 뉴스도 있다. 지난 12일과 13일에 부산 백양근린공원 일원에서 열린 ‘2026년 낙동독서대전’도 성황리에 끝났다. 북페스티벌의 흥행은 수년 전부터 꾸준히 관찰돼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책을 통한 소통이 늘어 가는 현상은 아날로그 방식의 지식 교류를 원하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핸드폰만 켜면 쇼츠 영상으로 짧은 뉴스를 접할 수 있다. AI에 물어보면 뭐든 상세하게 답이 나온다. 디지털을 통하면 빠르게 큰 노력 없이 지식 습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앎의 재미는 없다. 공감각적인 동물인 인간은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를 하면서 지식을 쌓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독서를 하면 전두엽과 측두엽이 더 강하게 상호작용해 ‘깊은 읽기’에 유리하고, 디지털 매체는 ‘얕은 읽기’에 적합한 뇌 회로가 작동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간을 들여 가며 책장을 넘기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고, 지식 습득을 넘어선 앎의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더 키우는 자리가 북콘서트나 북페스티벌이라는 거다.
디지털 세상은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 인류는 AI시대 한복판으로 향하고 있다. 어떻게 디지털과 AI를 거부하겠는가. AI는 업무의 효율성 증가, 생산성 향상 등에 매우 효과적이다. 사적인 일들,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점심 메뉴를 정할 때도 AI를 쓰면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더 빠듯하게 사는 게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사피엔스는 초원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뤄 생활하는 것에 적합하도록 진화했다. 디지털이 없는 느린 일상에서 타인과 직접 소통하는 삶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인류가 디지털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AI와 대화하며 열심히 살아 생산성을 극대화해도, 우리에겐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아날로그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커피숍에 줄을 서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어쩌다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 주인장과 짧은 대화 속에서 추천 받은 음료를 마시면, 왠지 맛이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짧은 아날로그적인 소통이 맛을 더 했을 것이다. 디지털과 AI시대에 더 잘 살려면, 우리의 아날로그적인 본질을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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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거제 야호' 그 이후
경남 거제는 천혜의 해안 경관을 갖춘 조선 도시다. 해금강, 바람의 언덕, 외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등 전국적으로 알려진 관광 명소와 먹거리가 즐비하다. 그런데 최근 거제를 찾는 젊은 관광객들이 예년보다 크게 늘었다. 거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MZ 관광객 유입을 촉발한 일등 공신은 걸그룹 리센느의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거제 출신 멤버 원이와 대화를 나누다 던진 ‘거제 야호’라는 한마디였다. 야호는 통상 산 정상에서 외치는 감탄사가 아니다. 일본 젊은 세대들이 사용하는 ‘얏호’로 안녕에 가까운 친근한 표현이다. 미나미가 말한 ‘거제 야호’는 ‘거제 안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3월 20일 리센느 원이의 개인 유튜브 콘텐츠에서 미나미가 독특한 억양과 표정, 손동작으로 ‘거제 야호’라고 말하는 장면이 공개되자 이 부분을 발췌한 짧은 영상들이 숏폼과 SNS에 빠르게 확산됐다. 거제 대신 다른 지명이나 자신의 학교와 직장 이름 등을 넣은 다양한 ‘야호 밈’들이 탄생했다. 흥미로운 것은 ‘거제 야호’를 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거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거제시는 5월 22일 리센느를 새로운 홍보대사로 위촉해 도시 브랜드 홍보를 시작하는 등 젊은 세대와의 소통 강화에 나섰다. 특히 리센느 멤버들이 거제식물원 정글돔, 거제 케이블카 등 거제 관광지를 방문하는 브이로그 형식의 관광 홍보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했다. ‘거제 야호’에 이어 거제 홍보 영상까지 화제를 모으면서 거제를 찾는 MZ 세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리센느가 다녀간 곳을 관광객들이 찾아가 같은 장소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다시 SNS에 올리면서 관광객 급증 현상을 만들어냈다. 리센느도 ‘거제 야호’ 인기몰이에 힘입어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거제시의회는 지난 9일 리센느 멤버 전원을 연예인 최초 거제 명예시민으로 선정해달라는 내용의 시 안건을 통과시켰다. 리센느가 거제 위상을 높인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리센느는 지난달 거제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복구와 이재민 지원을 위해 팬덤이 모은 5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거제 야호’ 현상에서 눈여겨볼 점은 우연한 밈 유행을 도시 브랜딩과 관광 정책에 접목시킨 시의 적극적이면서도 발 빠른 대응이다. ‘거제 야호’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거제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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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돋보기] 지방 주택은 사지 말라고?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부산은 집을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최근 현장에서는 집을 팔고 싶은데 안 팔려서 답답해하는 한탄이 많이 들린다.
서울과 부산의 아파트 가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2026년 세제개편안’은 지방에 더욱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장기거주소득공제’로 재편되면서 한도가 없었던 공제금액이 2029년이 되면 거주 시에만 최대 10억 원까지 공제되는 것으로 변경됐다.
종부세는 1주택자 거주시에 공시가격이 기존 12억 원에서 14억 원까지 증가되어 시세 기준 20억 원까지는 종부세 부담이 없어지는 것으로 완화됐다. 1주택인데 비거주시에는 기존 12억 원에서 변경이 없었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보유에서 거주 중심으로 변화한 것은 서울 지역의 신축 아파트 공급이 한계를 보이자 기존 보유주택을 매물로 내놓게 해서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키려는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주택자에게는 더욱 강력한 규제가 적용된다. 종부세 계산 시 기본공제 9억 원을 초과할 경우에 4억 원은 고정 공제하지만 5억 원에 대해서는 주택가액 합계에서 거주 주택 가액비중 만큼만 공제를 해준다. 비거주 시에는 4억 원 밖에 공제를 못 받게 되고, 한 곳에 거주를 하고 있더라도 보유주택 금액이 거주주택보다 더 가격이 높다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구조로 변경됐다.
문제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인기가 더 높아져 서울 집중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서울과 경기 대부분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어 실수요가 아니면 집을 살 수 없지만, 문제는 지방의 아파트를 처분해서 주택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더욱 본격화된다는 것이다.
부산에서도 최근 다주택자들의 세금 회피성 매물이 증가하면서 회복하던 집값이 다시 하락세로 전환됐다. 2022년 하반기 이후 내림세가 이어진 데다 정부 정책까지 똘똘한 한 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지방에서는 물가 상승률 정도라도 집값이 상승할 권리를 잃어버린 셈이다.
미분양은 금융위기 이후 최대인 8379세대에 달하고 있다. 다주택자 규제가 분양 수요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집값 안정화를 목표로 한 세제 개편안이 지방을 더욱 옥죄고 있는 것은 명확한 ‘정책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지방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접근은 서울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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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더 많은 성장을 연결하는 기회, 미래전략캠퍼스
부산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보 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분야의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 현장에서 실제적 협업을 통해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년들이 서울로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전략캠퍼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래전략캠퍼스는 2015년부터 매년 3월 부산과 동남권 기업들, 스타트업과 공공기관, 대학 관계자가 모여 주요 산업 동향과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외부 환경에 대한 빠른 대응과 지속 가능한 지역 생태계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민간 주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작은 세미나로 시작했다. 개막식과 불필요한 의전 대신, 참석자를 우선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고, 청중을 바라보고 모두가 함께 찍는 단체 사진 한 장만 기념으로 남기는 행사로 잘 알려져 있다. 작년 10주년을 계기로 개최 장소를 북항으로 옮겼고, 올해는 부산항만공사와 공동주최하여 해양 분야를 강화하고, 부산의 강점인 관광과 미래 부산 경제를 이끌어 갈 스타트업을 핵심 주제로 구성했다.
부산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미래를 읽는 힘을 키우고
흐름을 주도하는 도시가 되어야
청년들이 기회의 도시 부산에 모여
자신의 꿈을 펼칠 판을 함께 만들고
‘모두의 캠퍼스’ 통해 도전 이어가길
최근에는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고, 해외 관광객 500만 명을 바라보는 등 부산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서울, 대전, 제주 등 타 지역 참가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동남권 네트워크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신청하거나, 시장조사 및 홍보를 위해 참여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현상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규모가 2배 이상 커져서 3월 26~27일 2일간 해양수산, 스타트업, 관광MICE, 디자인과 콘텐츠, 에듀테크 교육과 문화산업, 아시아 시장 진출 등 크게 8개 트랙으로 나누어 16개 세션 70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발표하고, 1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함께하며 미래전략캠퍼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재확인했다.
1일 차 오프닝은 부산을 대표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젊은 기업인 모모스커피 전주연 대표와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가 그간 성장 과정과 앞으로의 도전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해양 실리콘밸리와 수산 데이터를 중심으로 해양수산 세션,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의 AX전환 인사이트와 로컬기업의 성장기를 함께 다뤘다. 특히, 관광MICE 세션에서는 스포츠와 연계하여 새로운 트렌드와 부산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해양관광의 최근 성장세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어갈지 고민하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영사관과 함께 준비한 한일세션은 최근 관심이 높은 관광을 주제로 발표들이 이어졌다.
처음 시도하는 ‘창업가들의 항해’ 특별세션에서는 지역 스타트업들의 어려움과 극복 사례, 그 과정에서 배운 경험과 인사이트를 후배 기업들과 공유하는 의미 있는 기회였고, 매년 지역 출신의 창업가들이 부산으로 모이는 홈커밍데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키워갈 계획이다.
2일 차 오프닝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스타트업의 역할과 인구변화의 관점에서 살펴봤고, ‘아시아 퓨처 캠퍼스’ 세션에서는 지역에서 시작해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여 잘 성장하고 있는 창업기업들을 소개했다. 그 외에 교육과 문화산업, 디자인과 콘텐츠 등 새로 추가된 주제 세션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여 실무적 협력을 위한 네트워킹을 이어갔다. 미래전략캠퍼스의 주요한 역할이 발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남을 계기로 실제적 프로젝트로 연결되고, 성과로 이어져 현장의 변화와 미래의 문제에 빠르게 대처하고, 부산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모두의 캠퍼스’라는 현장 실무형 멘토링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미래전략캠퍼스로 구축된 지식 네트워크와 경험들을 청년들과 공유하자는 취지이며, 4월부터 매달 주제를 정해 희망하는 청년대학생들이 무료로 참여 중이다. 멘토는 올해 발표자로 참여한 70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함께한다. 처음 7개 대학 25명으로 시작하는데, 9월 현재 10개 대학 50명 이상이 함께하고 있다. 내년 12회 미래전략캠퍼스는 2027년 3월 25~26일 예정돼 있다. 또, 어떤 주제가 제시되고, 새로운 협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성장의 기회가 만들어질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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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성과와 헌신을 함께 보는 법
연봉 협상 시즌이 다가오면 조직은 잠시 정직해진다. 지난 한 해 누가 무엇을 얼마나 해냈는지, 모두가 숫자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맘때면 늘 마음에 걸리는 얼굴들이 있다. 성과표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없으면 팀이 확연히 삐걱대는 사람들이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단순하지만 묵직한 말을 남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비판보다 이해가, 지적보다 진심 어린 인정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백 년 전의 통찰인데, 성과와 숫자로 사람을 재는 데 익숙해진 요즘 조직에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윤활유 역할 떠맡는 '글루 워크'
성과표에는 아무런 기록 없어도
조직 속 마찰 줄이는 귀한 노력
정확하게 성과 평가하는 눈과
기여와 헌신을 찾아내는 눈은
진심 어린 관심으로만 하나 돼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노동을 가리키는 말이 생겼다. ‘글루 워크(glue work)’. 조직을 붙여 주는 접착제 같은 일이라는 뜻이다. 회의를 매끄럽게 정리하고, 신입의 질문을 받아 주고, 흩어진 논의를 하나로 엮어 내는 일. 팀을 실제로 굴러가게 하지만, 정작 개인 성과로는 좀처럼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일컫는다. 기계로 치면 톱니바퀴가 아니라 그 사이를 메우는 윤활유에 가깝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것이 마르는 순간 기계 전체가 마찰음을 내며 멈춰 선다.
팀을 맡기 전까지 나는 이 노동의 무게를 절반만 이해하고 있었다. 팀원이던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관리자가 되고 팀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자, 성과표에 잡히지 않던 노력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를 준비하며 남들보다 먼저 자료를 훑어둔 사람, 담당이 애매한 일을 말없이 떠안은 사람, 손은 조금 느려도 동료들 사이에서 윤활유처럼 팀의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던 사람. 이런 헌신은 어떤 지표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사라지면 조직은 이내 삐걱댄다. 존재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부재로써 비로소 증명되는 노동, 그것이 글루 워크의 속성이다.
문제는 이 글루 워크가 글로벌 재택 환경에서 더 쉽게 지워진다는 데 있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면 눈에 띄었을 수고가, 화면 너머에서는 조용한 메시지 한 줄로만 남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일하다 보면 서로의 얼굴조차 자주 보지 못하니, 누가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지는 더더욱 흐릿해진다. 그래서 카네기의 말은 재택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무겁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서로를 알아봐 주는 마음인데, 그 마음이 가 닿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성과를 채근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 관리자의 진짜 딜레마가 있다. 평가라는 제도는 아무래도 뚜렷한 성과를 낸 사람, 자기 일을 또렷한 언어로 설명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기울기 마련이다. 묵묵히 팀을 떠받친 사람일수록 정작 자신의 공을 말하는 데 서툴다. 그렇다면 그 보이지 않는 기여를 발견해 제 몫의 이름을 붙여 주는 일이야말로, 숫자가 놓치는 빈자리를 메우는 팀장의 진짜 역할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성과를 눈감아 주는 온정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냉정한 성과주의와 무른 온정주의는 둘 다 절반씩 틀렸다. 숫자만 보면 팀을 지탱하는 헌신을 놓치고, 온정만 앞세우면 결국 열심히 한 사람이 손해 보는 조직이 된다. 카네기의 인정이 빛나는 지점은 바로 그 사이다. 그의 인정은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해냈는지 정확히 짚어 내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막연히 잘한다고 말하는 것과, 구체적인 기여를 콕 집어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진심 어린 인정에는 관찰이 필요하고, 관찰에는 관심이 필요하다. 성과와 온정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관찰 위에서 비로소 만난다.
그래서 나는 팀장으로서 작은 원칙을 세웠다. 성과 지표에 잡히지 않는 노력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누군가 조용히 메운 빈틈을 발견하면, 짧게라도 그 노고를 짚어 말해 준다. “그 부분 챙겨 줘서 팀이 편했다”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사람은 자신의 수고가 누군가의 눈에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얻기 때문이다. 신뢰란 그렇게, 알아봐 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백 년 전 카네기가 던진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통제나 압박이 아니라, 진심으로 알아봐 주는 마음이라는 것. 성과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사람은 인정으로 기억한다. 다가오는 연봉 협상 시즌, 당신의 곁에도 성과표에 적히지 않는 노력으로 팀을 조용히 떠받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수고를, 숫자로 환산되기 전에 한 번 소리 내어 알아봐 주면 어떨까. 좋은 팀장은 성과를 잘 재는 사람이 아니라, 재어지지 않는 것까지 볼 줄 아는 사람일 테니까. 인정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오늘부터 연습할 수 있는 습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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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사람은 왜 두 번 죽는가?
붉은 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오타 치하루(1972년~)는 일본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2025년 뉴욕 재팬 소사이어티의 ‘두 개의 고향’에서 선보인 ‘일기’라는 대형 설치 작품이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뻗은 수천 가닥의 실은 혈관 같기도 하고 신경망 같기도 하다. 그 사이에 책상과 의자, 편지와 일기, 신발과 열쇠, 여행 가방이 매달려 있다.
실 속의 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병사들의 기록과 전후 독일 민간인들의 일기다. 데리다의 ‘흔적’과 ‘대리보충’을 떠올리게 하듯, 이 사물들은 부재한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동시에 그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오타에게 실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하나의 실은 약하지만 수많은 실이 얽히면 거대한 공간이 된다. 기억도 그렇다. 다른 기억과 만나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면서 개인의 기억은 공동의 기억이 된다.
시오타의 기억 작업은 이제 개인의 부재를 넘어 전쟁의 기억으로 나아간다. 붉은 실은 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시간을 한 공간에 엮어 놓는다. 여기서 전쟁은 국가 간의 승패가 아니라, 어느 병사의 두려움과 가족의 기다림, 살아남은 사람의 하루로 돌아온다. 일본과 독일이라는 작가의 ‘두 고향’도 이 기억 속에서 만난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말했다. 대량 학살 이후에도 예술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름다움을 생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훗날 〈부정변증법〉에서 지속되는 고통에는 표현될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대량 학살 이후에 예술이 타인의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감동으로 소비하고, 쉽게 화해시킬 수는 없다는 데 있었다.
여기서 예술의 윤리가 시작된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사라진 사람의 흔적을 현재에 붙들어 놓는다. 관객은 그 실 사이를 걸으며 타인의 기억을 몸으로 통과한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의 ‘손안의 열쇠’ 이후, 그가 21세기 설치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 잡은 까닭도 여기 있다. 기억과 부재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실과 사물, 공간이라는 물질적 경험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을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예술이 세계의 전쟁을 멈출 수는 없다. 폭격을 막을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없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오늘날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와 이란을 하나의 기억 공간 안에 놓는다. 사람은 죽음으로 한 번 죽지만, 망각 속에서 다시 한번 죽는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그 두 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기억의 선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