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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칼럼] 전자정부 진화와 AI 에이전트 부산 시정
“그 업무는 우리 부서 소관이 아닙니다. 전화를 돌릴 테니 끊기면 ○○○○번으로 다시 하세요.”
관공서에 전화했을 때 마주치던 익숙한 풍경이다. 어렵사리 연결된 곳에서는 다시 다른 부서로 넘기고 수화기 너머로 연결음이 반복되기 일쑤다. 미로 같은 관공서 업무 체계 탓에 담당자를 찾는 과정 자체가 고역이 되기 십상이다.
물론 이러한 불편은 상당 부분 개선됐다. 대한민국은 행정 서비스의 디지털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를 구축했다. 과거 주민센터에서 처리하던 많은 민원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무인민원발급기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은 2010년 유엔 전자정부평가 세계 1위를 시작으로 전자정부 선도국의 위상을 굳혔다. 이러한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정부는 2017년 6월 24일을 전자정부의 날로 지정했다.
전자정부는 종이 문서를 전산화하고 이를 행정 정보망에 연결·공유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것에서 시작해 모바일로 확장됐다. 이어 정부 데이터를 연결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개념으로 진화했고, 현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AI 대전환이 더해졌다.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어떤 지원금이 있는지 찾아야 하고,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알아봐야 하고, 여러 기관 사이트를 들락날락해야 한다. 이른바 ‘AI 딸깍’이라는 자동화의 시대이지만 행정 서비스는 여전히 불편하다. 부처별, 기관별 칸막이를 없애겠다는 정책이 현장에서 피부로 체감될 정도로 실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주하려는 30대 맞벌이 다자녀 부부가 맞닥뜨릴 상황을 살펴보자. 전입신고, 자동차 등록 변경, 각종 공과금 이전, 자녀 전학, 다자녀 혜택 신청, 반려동물 등록, 전기·수도·도시가스 이전…. 이들 민원을 처리하려면 정부24, 국민신문고, 교육청, 구청, 공기업 사이트를 제각각 찾아다녀야 한다. 디지털화는 성공했지만, 국민이 행정을 찾아다니는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공공기관이 앞다퉈 AI를 도입하고 있다. 조직 내 규정과 업무 지침, 과거 사례, 결재 문서를 학습한 지능형 검색엔진을 구축하고, 이를 챗봇으로 활용해 행정 효율을 높인다. 나아가 비서처럼 업무를 대행해 주는 AI 에이전트(에이전틱 AI)도 각광받는다. 생성형 AI는 주어진 질문에 응답할 뿐이지만 AI 에이전트는 필요한 정보를 찾고 여러 시스템을 연결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단계다. AI 에이전트를 적용하면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행정으로 프레임 전환이 가능하다.
이러한 변화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에도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부산시장 인수위원회는 전재수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AI 대전환’을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 17일 전문가 정책 간담회를 열었고, 23일에는 현장 기업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가졌다. 피지컬 AI를 위시한 스마트항만과 해양 AI 산업, 제조업 AX(AI 전환)는 부산의 성장 엔진을 교체하는 중차대한 사업이다.
그런데, 부산 AI 전환 대역사에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과제가 AI 행정 혁신이다. 부산을 AI 허브로 만들겠다는 전 당선인의 미래 비전은 시민의 삶과 지역 경제를 이끄는 부산 시정 자체에 AI를 도입하는 것으로 입증해야 한다. 이미 공약으로 제시한 행정·복지·의료 예약을 돕는 AI 생활비서 서비스와 AI 안전 도시 시스템 등을 확장·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 대전환이 국가 전략이라면, AI 에이전트 시정은 이를 행정 현장에서 구현하는 실천 모델이다.
부산에서 복지, 청년, 저출생, 고령화 등의 업무에 AI 에이전트가 도입된다면 어떨까. ‘부산시 청년 비서’가 취업 준비생이 묻기도 전에 월세 지원, 청년 디딤돌 카드, 주거 지원, 고용노동부 청년지원사업을 제안하는 식이다. 청년이 지원 사업을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먼저 “당신은 월세 지원 대상입니다. 신청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신혼부부·임신부·1인 가구·독거노인·취약계층에게도 맞춤형 AI 에이전트가 필요한 서비스를 먼저 알려 주고, 원할 경우 신청과 연결까지 대행하는 것이다. 단순 업무가 자동화되면 공무원이 정책 기획, 복지 사각지대 발굴, 재난 대응 같은 곳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된다.
전재수 부산 시정이 이끄는 AI 대전환 성공에 부산의 미래가 걸렸다. 다만, 행정이 먼저 AI 혁신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AI 대전환의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다. AI 활용을 전제로 업무 절차를 재설계하는 ‘AI 우선’(AI by Design) 원칙을 세우고 민원이 제기되기 전에 행정이 먼저 찾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산업 현장의 AI만큼 중요한 것이 시민이 체감하는 AI다. 부산의 AI 대전환은 공장과 항만에서만이 아니라 시청과 구청, 복지관과 보건소에서 완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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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현대백화점 1호점 폐업
국내 백화점 업계 톱3는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이다. 이들은 압도적인 자본을 앞세워 전국에 점포를 출점했다. 규모 확대와 명품 브랜드 입점을 가속화하면서 연간 매출 1조 원을 넘기는 점포들도 속속 등장했다. 현재 ‘1조 클럽’ 가입 백화점은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부산본점,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부산 센텀시티·대구신세계·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 현대백화점 본점과 판교점·무역센터점·더현대 서울 등이다. 이 가운데 롯데 잠실점과 신세계 강남점은 ‘3조 클럽’ 시대를 열었다. 매장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2조 클럽’인 신세계 센텀시티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라는 기네스 기록도 갖고 있다.
1990년대 전국구 백화점들의 잇따른 출점·규모 확대 경쟁이 이어지면서 지역 백화점들의 상당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산에서도 향토기업인 미화당백화점과 부산백화점, 세원백화점, 유나백화점, 태화백화점, 신세화백화점 등이 간판을 내렸다. 울산 주리원백화점과 올림푸스백화점, 경남 마산 가야백화점과 대우백화점 등도 사라지거나 다른 업체에 매각됐다. 전국 다른 지역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규모의 경제에서 밀린 지역업체들의 연쇄 폐업은 당시 대규모 실직 등 지역 경제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이제는 전국구 백화점 점포들의 상당수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온라인 유통 업체와 할인점·아울렛 매장의 성장 등으로 백화점 입지가 급격히 좁아진 데 따른 것이다. 규모가 작고 매출이 부진한 점포에 대한 구조조정은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마산 대우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롯데백화점 마산점은 매출 부진을 이유로 이미 2024년 6월 문을 닫았다. 롯데는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센텀시티점 매각도 검토 중이다.
이런 와중에 울산 동구에 자리한 현대백화점 1호점도 머지않아 문을 닫는다. 이 백화점은 1977년 점포 인근 HD현대중공업 임직원과 외국인 기술자 등의 편의를 위해 개점했다.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개장 전까지 본점 역할을 맡은 데다 1995년 현대백화점 부산점 개점 전까지 유일한 비수도권 점포로 운영되며 전국적 위상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출 감소를 극복하지 못해 현대 직원과 지역민을 위한 임대아파트 등으로 개발된다. 지역경제의 중심인 백화점의 폐업은 해당 지역에 큰 충격을 안긴다. 상권 공동화를 우려한 동구 상인 등이 폐업 반대에 나선다고 하니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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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규의 법의 창] '선관위 해체' 가능한가?
지난 6월 3일 실시된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거관리 부실은 큰 충격을 안겼다. 선거 당일 일부 유권자들은 참정권을 침해받았다. 선거 결과 자체를 뒤흔들 중대한 위법이 있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관리 부실만으로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사안이다.
국민들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해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이런 기본적인 준비도 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불신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최근 수년 동안 선관위는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선거 공정성을 수호해야 할 기관이 채용의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선관위는 헌법기관의 독립성을 이유로 감사에 반발했고, 이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헌법재판소 판단까지 이어졌다. 국민들은 ‘독립성은 강조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지금 선관위 문제는 국가 기관 신뢰의 문제다. 신뢰가 흔들리자 ‘선관위 해체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선관위 해체는 쉽지 않다. 선관위는 정부 부처가 아니다. 헌법 제114조가 직접 설치를 규정한 헌법기관이다. 대통령도, 국회도, 정부도 선거를 마음대로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헌법이 특별히 만든 독립기관이다. 우리 헌정사는 관권선거라는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과거 권력이 선거를 통제하고 결과에 영향을 미쳤던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헌법은 선거를 독립기관이 관리하도록 설계했다. 따라서 선관위를 없애려면 법률 개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문제는 해체 이후다. 선관위를 없앤다고 해서 선거관리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선거를 관리하면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맡으면 지역별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 법원이 맡는다면 사법부의 정치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결국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선관위 해체보다는 선관위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개혁’이다. 독립성은 외부 간섭을 막기 위한 장치이지, 국민적 통제를 받지 않는 절대적 특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립성 없는 선거관리는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책임성 없는 독립기관은 국민 신뢰를 잃게 된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지금 생각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개혁의 방향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인사와 채용 절차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 모든 채용 절차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개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감사 결과와 징계 결과 역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둘째, 선거관리 과정에 대한 국민 참여형 감시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선거 참관인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 역할은 제한적이다. 개표 과정뿐 아니라 투표용지 인쇄, 운송, 보관, 폐기까지 전 과정에 시민·학계·법조계가 참여하는 공개 검증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과 같은 관리 부실이 발생하면 단순한 유감 표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은 물론이고, 책임 있는 공직자에 대한 인사 조치 등 법적 책임까지 명확히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선관위원 구성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 중앙선관위원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추천하거나 지명한다. 제도적 균형을 고려한 구조이지만 정치권과 법조계 중심이라는 비판도 있다. 향후에는 정보기술 전문가, 선거 행정 전문가, 시민사회 대표 등이 참여하는 추천 절차를 마련해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다섯째, 선거 시스템에 대한 상설 검증 기구를 도입해야 한다. 오늘날 선거는 전산망, 통합선거인명부, 개표 장비 등 다양한 기술이 활용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음모론과 불신을 막기 위해서는 선관위 설명보다 독립적인 전문가 검증이 필요하다. 정보보안 전문가와 대학 연구 기관이 참여하는 상설 검증 기구를 통해 시스템을 정기적으로 공개 점검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 민주국가들의 선거관리 방식은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은 하나다. 선거관리 기구가 국민 신뢰를 잃으면 민주주의도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국민 신뢰를 잃은 국가 기관은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국민은 완벽한 기관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고, 스스로를 개혁하는 기관을 원한다. 선관위가 지금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그러나 꽃은 저절로 피지 않는다. 건강한 토양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그 토양은 헌법과 제도에 기초한 국민의 신뢰다.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해체 논쟁이 아니라 공정성과 책임성의 회복일 것이다. 그 요구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선관위의 위기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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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힘
땀 뻘뻘 쏟으며 트럭 한 대가 섰다
트럭에서 내린 반바지 중년 사내가
맥주 세 박스를 등에 지는데
나 서 있는 오 층 베란다까지
끄응!
소리가 다 들렸다
부들부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단란주점 계단을 올라가서는
그리고
끄응!
하고 내려놓으리
세상을 한번 들었다 내려놓는 일
저렇게 죽을힘을 다 쓰는 일이다
너도 한번 죽을힘을 다 써봐라
비로소, 살아갈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시집 〈달나라 청소〉 (2025)
죽을 힘을 다해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것. 피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살아낸다는 것.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건 아마도 한 번뿐인 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처한 상황의 무게, 자신에게 주어진 그것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존재하고 끝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삶에는 저렇듯 죽음을 각오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우린 삶의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빛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배달하는 중년 사내의 힘도 후회 없는 노력이며 용기일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건 곧 삶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죽을 힘을 다해보란 말이 채찍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에 힘 내보자는 응원으로 받아들여 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최선은 우리의 꿈을 이끌어줄 것입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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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눈] 신뢰를 잃은 선거 관리
최근 6·3 지방선거 때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능력과 위기 대응 체계에 대한 총체적 부실이 나타나 국민적 우려를 키우고 있다.
투표용지를 받지 못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투표에 불편을 겪으면서 선거의 기본 원칙인 공정성과 신뢰성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선거는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인 만큼, 작은 혼선이라도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이번 사태는 투표 수요에 대한 예측과 현장 관리가 미흡했던 데다, 돌발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 또한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선거관리기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실수와 논란은 선관위의 책임성과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선거 관리의 작은 허점 하나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한 성찰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이 요구된다.
앞으로는 투표용지 수급과 현장 운영 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고, 비상 상황에 대비한 대응 매뉴얼과 인력 운용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선거 전 과정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사후 평가를 통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독립성 못지않게 책임성과 전문성을 갖출 때 비로소 선관위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은경·부산 남구 대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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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합 LCC 본사 부산 유치, 전재수 부산 시정 당면 과제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이 22일 지역 상공계와 만난 자리에서 (에어부산·진에어·에어서울 간) 통합 LCC 본사 부산 유치 요청이 쏟아졌다. 통합 LCC 출범과 관련, 상공인들은 “본사를 부산으로 가져와 달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에어부산 합병 등으로 지역 핵심 기업이 위협받는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새로운 부산시장과의 상견례에서 부산 상공인들이 통합 LCC 본사 유치를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지역 경제 현안이라는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한 것이다. 사실 통합 LCC 본사 유치는 전 당선인은 취임 전에라도 매달려야 할 문제다. 통합 LCC 출범이 내년 초가 될 것이라는 예고가 나온 만큼 더는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통합 LCC 본사 유치는 부산 전체가 공감하는 문제지만, 특히 상공인들에게는 현실적 이해까지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간담회에서도 상공인들은 “에어부산은 부산 상공계에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에어부산 이름을 계속 쓰도록 해 달라”며 애정을 보였다. 에어부산의 존재와 역할을 경험하며 거점 항공사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통합 LCC 본사 유치 노력은 아쉬웠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논의 초반, 국토교통부와 대한항공은 통합 LCC 본사를 부산에 줄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다 입장을 뒤집으며 공분을 샀다. 무엇보다 부산시는 국면마다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정부와 산업은행, 대한항공 입만 바라봤다.
오랜 기간 공항이 있는 서부산권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을 했고, 해양수산부 장관까지 지낸 전 당선인은 누구보다 가덕신공항 성공과 복합물류 구축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는 지역 정치인이라고 본다. 그는 22대 총선에서 부산 유일의 민주당 당선인이 됐을 때, 해수부 장관 시절 등 정치적 변곡점마다 에어부산과 가덕신공항을 거론하며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전 당선인은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도 “통합 LCC 본사 유치를 위해 뛰겠다” “가덕신공항 개항 시점을 현재 목표인 2035년에서 2~3년 앞당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참석 경제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가덕신공항 건설이 본격화하는 시점과 맞물리는 전 당선인 재임 4년은 남부권 관문공항 전략을 비롯한 지역 항공 미래 전략 마련, 육상·해상·항공 교통이 함께 가는 복합 글로벌 물류 거점 달성 등 가덕신공항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다. 전 당선인이라서 더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전 당선인의 대표 공약인 해양수도 부산 완성의 중요한 축이 바로 가덕신공항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지역 거점 항공사 없이는 가덕신공항은 성공할 수 없다. 다만, 전 당선인이 이날 통합 LCC 본사 유치에 대해 “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 문제”라고 단서를 단 점은 못내 아쉽다. 전 당선인이 서둘러 통합 LCC 본사 유치가 해양수도 부산 실현의 중요 축이라는 인식을 공고히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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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선관위 국정조사, 여야 정쟁 말고 근본적 해법 내놓아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을 규명할 국회 국정조사 특위가 23일 본격 가동된다. 국정조사 대상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각급 지역선거관리위원회다. 조사 범위는 투표용지 인쇄 수량 산정 과정의 부실 여부, 배분·보관 등 현장관리 실태, 선관위 지휘 체계와 사후 대응의 적정성, 참정권 침해 실태, 투·개표소 집회·시위 및 경찰 조치 사항, 선거관리 인력·예산 운용 등이다. 특위는 더불어민주당 9명, 국민의힘 7명, 비교섭단체 2명 등 총 18명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은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맡았다. 특위는 오는 8월 1일까지 조사 활동을 통해 전례 없는 참정권 침해 실태의 전모를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발단은 선관위가 지난해 12월 용지 인쇄 예산을 유권자의 110%로 배정받고도 인쇄 하한 기준을 60%에서 50%로 낮춘 것이다. 선관위는 별도의 내부 회의나 중앙선관위원 의결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이를 결정했다. 특위는 이러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발생 경위와 사태 발생 후 지휘·보고 체계, 부실한 현장 대응 경위 등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과거 논란이 됐던 채용 비리 외에도 외유성 출장, 선거 시기만 되면 늘어나는 휴직 등 선관위에 대한 다양한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선거 현장관리, 인사 체계, 조직 운영, 의사 결정 구조까지 총체적인 점검과 해부가 필요하다.
여야 국조특위 소속 의원들은 선관위법을 개정해 현재 비상근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근화하는 데 이견이 없다고 한다. 선관위에 대한 외부 견제와 감시 강화 방안 필요성도 공감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론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민주당은 독립적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 등 외부 통제는 원포인트 개헌을 통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개헌보다는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야는 조사 과정에서 정치적 공방이나 정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국조 특위가 편파성 시비를 남기지 않게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여야 동수로 위원을 구성한 취지를 되새겨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부산, 울산, 대구, 서울 등 지역의 많은 유권자들이 참정권을 침해받는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조사특위는 소중한 투표권이 다시는 훼손되지 않도록 진상규명은 물론 선거관리의 전면적인 혁신을 이끌어내야 한다. 선관위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 업무 역량 강화를 위한 감사 장치 도입과 선거관리 인력·예산 운영과 관련한 개혁 방안도 필요하다. 여야 조사특위는 이번이 선관위 쇄신의 골든타임이라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선관위와 선거 시스템에 대한 무너진 신뢰 회복은 물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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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박완수 도정 2기에 거는 기대와 우려
선거가 끝났다. ‘경남대도약’을 내건 박완수 경남지사가 ‘경남대전환’을 내세운 상대 후보를 이기고 귀환했다. 이제 경남도정은 지난 4년의 기반을 바탕으로 도정 9기 출항을 앞두고 있다.
양측의 깃발은 다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여야 후보 누가 당선됐더라도 지난 4년의 기반을 무시하거나 버릴 수는 없다. 이것은 도정의 연속성 때문이다. 박 지사는 '대도약'을 내걸었지만, 대도약은 '대전환'을 내포하고 있다.
박 지사는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지난 4일 도청에서 주요 간부들과 티타임을 갖고 두 가지를 강조했다. 건전 재정 기반의 민생 행정이 그 첫째다. 미래 신산업 육성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행정혁신도 강조됐다. 박 지사는 고물가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든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민생 안정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달라고 간부 공무원에게 주문했다.
박 지사의 ‘애민 정책’으로 맛난 불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밀양 시골에 있는 어머니는 박 지사가 8기 임기 막판에 지급을 결정한 ‘도민 생활지원금’과 정부의 고유가지원금을 합해 무려 25만 원이나 갖고 있었다. 어머니의 ‘턱’으로 염치없는 아들은 고기를 구웠다.
계산서가 두 자릿수 금액을 기록하자 식당 사장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생활지원금의 선순환 효과는 분명했다. 박 지사가 선거 직전 이른바 ‘표’를 노리고 이런 정책을 펴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생활지원금 지급 결정의 파급력은 경남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어쩌면 그것은 8기 도정의 성과 덕분이었다. 박 지사의 건전 재정이 도의 곳간을 채웠고, 그 여유로움으로 차입 없이 2800억 원이 넘는 쓰임을 있게 했다. 그리고, 박 지사는 이제 다시 9기 도정을 책임지게 됐다.
그의 1호 공약이 ‘행복UP’으로 명명한 5대 복지 공약이다. 우선 도민 멤버십 카드 도입이다. 모바일 앱을 통해 18세 이상의 도민이 카드를 발급받아 교통, 문화, 의료 등 소비에서 할인과 포인트 적립 등이 가능하다. 4050세대를 위한 전용 복지포인트와 장애인 이동권 보장 확대 등 복지, 도민연금의 강화 등이다. 여기에 이 계획을 뒷받침하는 도민행복기금 조성까지 해서 5대 복지 공약이다.
민생과 권역별 경제 공약도 중요하게 발표했다. 골목상권 활성화 등 내수 경기 진작 시책과 광역버스(G버스) 도입 등 광역 교통망 확충, 피지컬 인공지능(AI), 우주항공복합도시 조성, 남해안권 발전 위한 특별법 제정 등도 박 지사의 도정 9기 주요 과제이다.
공무원부터 통합 창원시장,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을 역임하고 도지사직을 무난하게 수행하는 박 지사를 흔히 ‘행정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공직사회에서 잔뼈를 굵힌 박 지사의 관록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달인에게 나름의 한계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집권 여당과 당적이 다른 것을 꼽을 수 있다.
박 지사는 사실 행정 전문가답게 야당의 고유 정치색을 극명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차별 없는 전 도민 생활지원금 지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전 국민 민생지원금 정책과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동안 야당은 급식, 복지 분야 등에서 ‘선별·차등 지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박 지사는 야당의 관성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지방선거 출정식을 민주화의 성지 국립3·15민주묘지에서 했으며, 재선 출마선언 직후 첫 행보로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 참배를 하고 선거운동에 나섰다. 선거 기간이던 서거 17주기 추모식에는 혼자 아침 일찍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묘역을 참배하는 열린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야당 출신 박 지사’가 제시한 굵직굵직한 사업은 정부와의 협조나 이해가 필수적이다. 당장 남해안특별법도 그렇고, 광양만경제자유구역의 하동 지분을 별도로 분리하는 하동경제자유구역청 신설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또한 속좁게 야당 출신 도지사를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정부와 지방정부의 엇박자가 없어야 박 지사가 정한 길이 원활하게 펼쳐진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부울경 행정통합이다. 지역 균형발전과, 경남 대도약을 위해서는 행정통합이 우선돼야 한다. 여당 출신의 부산시장과 울산시장은 메가시티 건설이 공약이었고, 박 지사 또한 자치권이 충분히 주어지는 행정통합을 법 제정을 통해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4월 발의한 ‘경남부산특별시 설치 특별법’이 국회에서 어떻게 다뤄질까? 박 지사의 계획대로라면 2028년 4월 총선 시기에 통합 단체장을 선출해야 한다. ‘행정의 달인’ 박 지사의 부울경 행정통합 행보가 궁금하다.
이재희 사회2부 선임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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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선관위 개혁과 참정권
‘지방의회는 조국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 지방자치는 헌법에 명시돼 있었지만, 군사정권은 헌법 부칙과 임시조치법을 동원해 무려 30년 넘게 사문화했다. 지역민이 선출해야 할 그 자리는 중앙에서 임명된 낙하산으로 채워졌다. 위정자들에게 지역민의 참정권은 ‘지방 통치’에 방해물일 뿐이었다. 빼앗긴 참정권이 회복된 계기는 1990년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무기한 단식이다. 목숨을 건 저항으로 여론이 비등해지자 정부는 단식 13일 만에 지방자치법 개정을 전격 수용한다. 그 결과 1991년 지방의회, 1995년 단체장 선거가 시행되어 오늘에 이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를 하지 않으면 관권·금권선거와 투개표 부정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려는 곧 사실로 입증됐다. 1992년 14대 총선 때 당시 한준수 충남 연기군수가 내무부 장관과 도지사의 지시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금품을 살포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행정부 임명 단체장이 집권 세력의 선거 도구로 동원될 수 있다는 위험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안착하면서 부정선거 시비는 잦아들었다. 민선 시대가 열린 덕분에 평화적 정권 교체도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렵게 되찾은 참정권이 6·3 지방선거에서 봉변을 당했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참정권이 침해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핵심은 선거관리위원회의 무책임과 부실이다. 중립과 공정을 위해 헌법상 독립을 보장받았지만 비상임 위원장 체제, 허술한 내부 감찰, 현장 대응력 부재, 반복되는 조직 기강 해이 끝에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특혜 채용과 소쿠리 투표 논란 등 허점이 드러날 때마다 미봉책에 그친 탓이다. 엄격한 감시와 내부 통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거세지면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확산하고 있다.
개헌 논의를 포함한 전면적 선관위 개혁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핵심은 독립성의 폐기가 아니라 독립성을 감당할 책임과 견제 구조다. 올해 9회 지선 때도 부산 일부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이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과거 연기군수의 관권·금권선거 고백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선관위 개혁의 방향은 권력 기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국민의 높아진 주권 감수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참정권을 지키는 제도적 장치는 그래서 필수적이다. 선관위 독립도, 선관위 개혁도 이 원칙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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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폭력물이 된 학원물, 반올림을 다시 보고 싶다
최근 학교와 교실이 다시금 대중의 뜨거운 관심 한가운데 섰다. 그 중심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있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특수부대 요원이 교권보호국 소속으로 직접 나선다는 도발적인 설정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선을 넘은 비행 청소년과 안하무인 학부모를 향한 거침없는 공격 등 소위 ‘사이다 전개’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작품은 단숨에 화제성 1위에 올랐다. 무법지대가 된 교실을 압도적인 힘과 폭력으로 제압한다는 설정에 대중이 이토록 열광하는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현재 교권 추락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느새부터인가 안방극장과 OTT 플랫폼에서 ‘학원물’은 곧 ‘폭력물’ 혹은 ‘스릴러’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른으로서 서늘한 감정마저 든다. 웨이브(wavve)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은 상위 1% 모범생이 학교 안팎의 끔찍한 폭력에 맞서 두뇌와 주변의 도구를 활용해 처절하게 싸워나가는 학원 액션물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은 단순한 학교폭력을 넘어 미성년자 조건만남, 범죄 알선 등 가장 어두운 청소년 범죄의 민낯을 가감 없이 파헤쳤다.
일선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단 이 같은 학교의 어두움이 중고등학교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머지않아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 역시 폭력물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과거의 학원물들을 떠올려본다. ‘라떼의’ 청소년 드라마의 주류는 ‘성장 드라마’였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반올림’이었다. 평범한 중학생인 주인공 이옥림(고아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던 드라마 속 교실에도 친구들 간의 다툼은 있었고, 선생님과의 크고 작은 갈등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파괴적인 싸움이 아니라,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훌륭한 어른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거쳐야 할 성장통이었다.
성장 드라마들은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을 법한 친근한 인물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민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이들의 풋풋한 우정과 사랑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안겼다. 물론 과거의 기억이 다소 미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래도 그 때의 학교는 위험한 곳이 아닌 서로를 반올림해주는 곳이었다고 믿고 싶다.
드라마의 제목인 ‘참교육’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곱씹어 본다. 악을 더 큰 힘으로 응징하는 통쾌함은 분명 속시원함을 준다. 하지만 붕괴된 공교육을 살려낼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까? 드라마 속 물리적 사이다 전개에 대리만족하며 씁쓸하게 웃어넘기는 현실을 넘어, 이제는 진짜 참교육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와 교육계 전체가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이번 드라마 열풍이 단순히 자극적인 오락거리로 소비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잘못된 학생을 주먹으로 때려잡는 것이 아닌 진정한 소통과 제대로 된 제도를 통해 교실을 치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사와 학생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참교육’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 치열한 고민 끝에 우리의 교육 현장이 다시금 풋풋하고 따뜻한 성장의 이야기로 ‘반올림’ 될 수 있는 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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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SF와 시대유감
이번 1학기 뉴미디어 문화 관련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SF(Science Fiction) 장르를 공부했다. 다양한 장르 가운데 SF에 주목한 까닭은 오늘날 뉴미디어에서 생산, 유통되는 콘텐츠 대부분이 SF적 상상력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미키 17’과 ‘원더랜드’,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 아이돌 그룹 에스파(aespa)의 가상 아바타 ‘ae-aespa’에 이르기까지 SF적 상상력의 영향은 전방위적이다. 낯선 미래에 대한 상상이 가장 익숙한 문화적 형식이 된 셈이다.
SF 장르에서는 광활한 우주 전경이나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기술 같은 스펙터클적 요소가 주요하게 활용된다. 그런 만큼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 시각 매체에서의 강세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요사이 한국문학에서도 SF가 눈에 띄게 약진하고 있다는 점은 적잖이 흥미롭다. 아마 전통적 한국문학 독자들에게 SF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비주류적 장르로 인식되기도 할 것이다. 일본식 번역어인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SF는 허무맹랑한 공상(空想)으로 가득 찬 대중 오락물 정도로 여겨졌다. 한낙원의 〈금성탐험대〉를 위시한 소년 과학소설에서부터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에 이르는 SF 문학의 흐름이 있었지만, 일부 마니아층이 즐기는 주변부적 하위문화에 머물러 있었다.
영화·웹소설 등 뉴미디어 콘텐츠 기반
낯선 미래 상상이 익숙한 문화적 형식
2020년 전후 한국문학 주요 장르 부상
청년 작가 잇따라 등장 독자 관심 증가
계층 불평등·미래 불확실성·기후 위기
인간의 공존 방식과 대안적 미래 제시
2020년을 전후로 SF는 한국문학의 주요 장르로 급부상했다. 변방에 위치하던 장르가 중심부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큰 지각변동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한가운데 김초엽, 천선란과 같은 1990년대생 청년 작가들이 있었다. 2019년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발간은 한국 SF 문학의 파급력을 극적으로 보여준 계기였다.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이 잇따라 출간되며 SF의 확산을 이끌었다. 이와 더불어, SF 소설에 대한 청년 세대의 관심도 빠르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오늘날 청년 작가와 독자들은 이토록 SF에 주목하는 것일까?
근대소설에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리얼리즘적 경향이 우세했다. 현실에 대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판단 위에서 미래의 전망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리얼리즘적 전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실재와 가상이 마구 뒤섞인 ‘매트릭스’ 같은 세계 속에서 미래는커녕 발붙인 현실조차도 쉽게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의 감각이 SF 장르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SF는 현실이 아닌 낯선 세계를 그린다. 그런데, 그 낯선 세계는 계층적 불평등 심화와 미래의 불확실성 증대, 기후 위기를 비롯한 전 지구적 위기 상황 등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적 조건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즉, SF 소설은 청년 세대의 무의식에 자리한 불안감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국 SF 소설이 그러한 무의식적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전통적 SF 문법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전통적 SF가 기술 문명의 스펙터클이나 종말론적 세계의 실상을 전면화했다면, 최근 SF 소설은 그러한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 혹은 비인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둔다. 예컨대,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 개척이 활발히 진행된 미래를 배경으로 가닿을 수 없는 행성으로 떠난 가족을 100년도 넘게 그리워하는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녀가 100년을 훌쩍 넘겨 살 수 있었던 것은 냉동 수면 기술 덕택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가족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까닭 역시 새로운 웜홀 통로가 발견되면서 기존 항로가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관계의 단절, 그리고 기술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관계성의 가치를 다룬다. 이처럼 한국 SF는 인간의 상실과 고독, 돌봄과 연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는지, 그리고 관계의 회복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드러낸다.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기성세대의 낡은 문화에 대한 날 선 비판을 감행하던 서태지는 ‘시대유감(時代遺憾)’에서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다며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라고 부르짖었다. 모두가 광기에 사로잡히는 미래가 세기말의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2024년 에스파는 이 곡을 리메이크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시대에 대한 유감은 여전한 것이다. 지금의 청년 작가와 독자들은 유감스러운 시대를 향해 직설적 비판을 가하는 대신, SF를 통해 또 다른 대안적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렇기에 SF 소설의 흥행은 유감스러운 시대를 건너가는 청년 세대의 대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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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코스피 10000 시대 목전, '빚투'와 변동성 증가 불안
코스피 지수가 지난 18일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했다. 19일 소폭 하락했지만 장중 9300선을 넘어서며 코스피 10000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키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AI(인공지능) 특수로 슈퍼사이클에 진입하면서 코스피 활황을 견인하고 있다. 삐걱거리던 한국 경제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빚을 내 무분별한 투자에 나서는 이른바 ‘빚투’가 증가하는 등 부작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더욱이 주식 투자를 하지 않을 때 느끼는 소외 불안 심리인 포모(FOMO)에 따른 ‘묻지마 투자’도 확산되고 있다. 지수 상승과 하락 폭이 커 변동성을 높이면서 ‘주식 투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증권사 계좌에 맡겨둔 현금성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128조 4086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5일 120조 5817억 원에서 16일 124조 5516억 원, 17일 124조 5324억 원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개인 신용대출 잔액도 지난 4월 말보다 4조 원 늘어난 108조 3339원에 달한다. 증시 호황에 따라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빚투’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지난 18일 기준 37조 9797억 원에 달했다.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달 29일(38조 227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 최근의 ‘빚투’ 열풍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코스피 대형주에 대한 투자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증시 변동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HBM 수요 급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50%를 넘어섰다. 반도체 종목이 출렁이면 변동성도 커지는 구조 때문에 올 들어 지난 15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발동된 사이드카 횟수도 이미 26회에 이른다. 과도하게 급등과 급락을 오가는 것은 우리 유가증권시장이 건강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변동성 증가에 따른 불안감 해소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코스피와 코스닥 양극화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코스피가 올해 115% 오를 동안 코스닥은 4%에 그쳤다. 이재명 대통령도 양극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증시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벤처기업의 산실이라는 코스닥 취지에 걸맞게 유망 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한층 확대해야 한다. 혁신 의지가 없거나 이익 창출 능력을 상실한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등 대대적인 산업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도 서둘러야 한다. 여기다가 원·달러 환율 문제와 기준금리 인상 여부도 지수 10000 시대를 목전에 둔 코스피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 자본시장 전환을 염두에 둔 정부의 정밀하고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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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연어 술 파티' 위증 판결, 조작 기소 프레임 무너졌다
대북 송금 관련 혐의 검찰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회유하는 ‘연어 술 파티’ 의혹을 제기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무려 열흘 동안 열린 사상 최장 국민참여재판 끝에 나온 평결을 토대로 재판부가 내린 판결에서다. 아직 1심이긴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해 온 ‘검찰 조작기소’는 그 실체를 가릴 상징적 근거가 허물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이 주도한 관련 국정조사의 증명력이 사법적 검증에 미치지 못한 점도 정치적 설득력을 약화시킬 악재다. 이는 결국 민주당이 설계한 특검의 필요성을 떠받칠 수 있는 핵심 사유의 손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원지법 형사11부는 지난 20일 새벽 이 전 부지사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의 선고 공판에서 국회 위증 혐의에 대해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지난 8일부터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단이 전날 오후 6시부터 9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밤샘 평의 끝에 낸 평결 내용은 유죄 4명, 무죄 3명이었다. 재판부는 다소 팽팽한 평결 내용을 존중하면서도 이 전 부지사의 진술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변호인단이 이 전 부지사의 거짓말 탐지기 조사 진실 반응 주장으로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법정 진술 일관성 여부에 더 무게를 둠으로써 법정에서의 행동을 우위에 두는 공판 중심주의를 채택했다.
이번 판결에 앞서 민주당은 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위를 꾸리고 40여 일 동안 기관보고 3회, 현장조사 2회, 청문회 4회를 진행한 뒤 지난 4월 말 결과보고서를 채택했다. 민주당은 이 과정에서 술 파티 의혹을 기정 사실처럼 주장하며 ‘조작기소 특검법’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민주당은 적어도 술 파티 의혹을 근거로 해서는 특검법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증명했다고 주장한 술 파티 의혹이 사법적으로 탄핵됐기 때문이다. 공소취소 권한 부여 여부 논란으로 인해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한 특검법에 또 하나의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아직은 1심 판결이 났을 뿐이고 이 전 부지사 측이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므로 술 파티 의혹이 전부 허위로 판명났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그동안 진행해 온 국정조사와 특검법안 발의의 가장 핵심적 토대인 술 파티 진술의 근거가 흔들린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법원이 국정조사 결과를 배제하고 법정에서의 진술과 증거만으로 심리한 끝에 내린 결론이 ‘술 파티 진술은 위증’이어서다. 민주당이 검사 탄핵 청문회부터 국정조사까지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으나 이 전 부지사 법정 진술의 신빙성 부족만 남은 셈이다. 이로써 민주당의 대통령 공소 취소 주장도 결국 사상누각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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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전재수호’ 해양수산 청사진에 거는 기대
지난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 시민의 선택을 받은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 아마도 당선이 확정된 순간부터 새로운 민선 9기 부산시정을 그가 과연 어떻게 그려나갈지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됐을 것이다.
그의 시정인수위원회 ‘다시 뛰는 부산 위원회’는 핵심 공약인 ‘해양수도 부산 완성’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 분야 정책 구상에 연일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단순히 그가 이재명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는 점 뿐만 아니라, 부산의 미래성장동력이 바다에 있다는 점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자신의 행정력과 능력치를 온통 부산의 새로운 도약에 쏟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인수위는 우선 체계적인 해양 정책 설계를 위해 ‘해양수도완성 부산비전분과’를 별도로 두고, 주력산업 고도화와 미래 신산업 육성을 긴밀히 검토 중이다. 인수위 부위원장으로 40대 여성 해양·물류 전문가를 선임한 것은 물론이고 지역의 해양수산 전문가를 다수 포진시켜 단순히 ‘보여주기’식이 아닌 글로벌 해양수도 전략을 뒷받침할 실무형 젊은 인재 중심으로 분과를 꾸렸다.
지자체 최초 해양(경제)부시장 신설도 특별히 눈에 띄는 정책이다. ‘해양수도’라는 정체성을 부산시청 조직에 이식하기 위한 것인데, 부산과 같은 광역시 부시장은 2명으로 인원이 제한돼 있어, 기존 ‘미래부시장’의 명칭과 기능을 ‘해양부시장’으로 바꿀 것이라는 가능성이 점쳐진다. 해양수산 분야 행정과 정무 경험을 두루 갖춘 인사를 발탁하겠다는 원칙을 밝히면서 이에 부합할 인물이 누가 될지, 관련한 조직은 어떻게 개편될지도 함께 궁금해진다.
그간 부산시청 조직 중에 해양수산 부서는 3급 국장을 두는 단일 조직으로 국한돼왔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해양농수산국으로 두고, 산하에 해양수도정책과, 해운항만과, 수산정책과, 수산진흥과에 농축산유통과를 합쳐 주요 부서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앞으로는 크게 도시혁신균형실, 환경물정책실로 이뤄진 기존 조직을 뒤엎고 해양 관련 부서를 2급 실장이 주도하도록 해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현재 타 부서에 포함돼 있는 해양 경제, 해양 관광, 해양 문화, 공항, 물류 등의 조직을 이관해 힘을 실을 수도 있다.
더불어 인수위는 해양수산 현장의 목소리를 골고루 청취 중이다. 선거 기간 이미 부산의 해양수산 관련 단체와 노조는 당시 전재수 후보에 대해 지지선언을 이어왔는데, 이들의 정책적 의견은 물론이고 한국해양진흥공사, 부산항만공사,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국내 유일의 선박 검사기관인 한국선급 등을 잇달아 방문해 실무 의견을 청취하고 관련 산업 육성과 정책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북극항로추진본부도 만났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전재수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북극항로 개척’은 올 9월 상업화 가능성을 여는 컨테이너선 시범운항이라는 첫 발을 뗄 계획이다. 부산의 해운선사가 시범운항 참여에 도전장을 내민 만큼 해수부와 함께 민선 9기 부산시도 내빙 선박 확보에 대한 금융 지원 등 지역 해양 산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실행 방안과 정책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가칭 '북극항로 추진본부'를 시정에도 신설해, 부산시의 해양 기능을 일원화하고 해양수산부와 협업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점도 주목된다.
이밖에도 지난해 전 당선인이 해수부 장관 시절 주도했던 ‘해수부 전체 부산 연내 이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HMM 본사 부산 이전과 해사법원 유치를 일군 데 이어,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이전과 동남권투자공사 설립까지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여기에 선거기간 가장 뜨거웠던 북항 야구장 건립 공약도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18일 항만공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법사위에 계류된 항만개발법도 곧 국회 문턱을 넘으면, 장관 시절부터 추진해 온 북항 돔구장 건립을 위한 부산항만공사와의 본격적인 협의 및 사업비 조달 논의도 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전 당선인은 시민들로부터 부산시장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아주 어렵게 얻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4년 임기 동안 지금의 약속과 의지만큼 시정이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하는 시장’을 갈망하며 그를 선택한 시민들을 늘 먼저 생각해주길 바란다. 바다의 가능성과 부산의 저력을 일깨워 명실상부 ‘대한민국 해양수도’로 변모시키겠다는 ‘전재수호’의 변화와 혁신에 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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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학력 기준 철폐
영국은 올해 학위 없이 실무 역량을 갖춘 사람도 의사와 법정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병원·법률사무소에 취업한 뒤 교육을 받고 현장 실무를 익히면 의사나 변호사가 될 수 있게 했다. 2024년 국가기술역량 전담기구 ‘스킬스 잉글랜드’가 생긴 후 나타난 변화 중 하나다. 고학력 전문직 일자리도 학벌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채용 시장이 바뀌는 셈이다.
아시아 내 글로벌 기업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의 변화는 더 전방위적이다. 싱가포르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싱가포르 기업 80% 가까이가 채용 시 학력을 주요 기준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 수치는 2023년 74.9%, 2024년 78.8%로 점점 높아졌다.
선진국이나 글로벌 기업이 학벌보다 실력을 더 중시하게 된 흐름은 기술 발달, 특히 인공지능(AI) 확산에서 비롯됐다. 기술 발달로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이 바뀌며 전통 채용 방식으론 필요 인재를 찾는 게 어려워졌다. 기존 교육 시스템도 새 유형의 인재 공급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과거 팀이 맡던 일을 한 명이 처리할 정도로 인력 수요도 급감하고 있다. 변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우리 사회도 그 흐름을 따르는 분위기다.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가 신입사원 채용에 학력 기준을 폐지했다는 소식이다. 4년제 학사 학위 이상이라는 자격 요건을 없애고 직무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보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설계와 연구개발 등 핵심 직무에 고졸 지원자도 도전할 수 있다. 오랜 학벌 중시 관행이 깨지고 새 기준이 들어서는 하나의 신호탄으로도 읽힌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한꺼번에 바뀌진 않을 것 같다. SK하이닉스를 향해 “실제론 고학력자만 뽑을 것”이라는 냉소도 나온다. 잊힌 사실이지만 삼성전자가 학력 제한을 폐지한 건 30년이 넘었지만 그 파격적 시도가 사회 전체로 확산됐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대다수 기업·기관에선 여전히 관행을 깨려는 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고, 일부 대기업에선 가족 채용 요구가 나오는 등 황당한 ‘역주행’ 사례도 적지 않다.
학력 철폐로 도전 기회가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섣부르다. 사회는 학력·스펙을 넘어선 인재를 요구하지만 구직자는 다른 대안이 없어 스펙 쌓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첫걸음도 떼지 못한 대다수 구직자들이 실무와 적응력, 경험까지 갖추라는 요구까지 받고 서러움만 더할까, 걱정이 앞선다. 김영한 논설위원 kim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