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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좋은 일자리가 해양수도권의 미래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부산을 떠난 건 지역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부산 유일의 대기업 계열사로 시가총액에서 지역 1위 기업이었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선박 AS와 보증 서비스 부분 등을 분리해 현대글로벌서비스라는 독립 법인을 설립하고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둥지를 튼 게 2016년 11월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삼성자동차 이후 첫 대기업 유치 사례로 부산이 들썩였다.
법인 신설 당시 2000억 원 수준이던 연 매출은 선박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2021년 1조 원을 돌파했다. 2023년 사명을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바꾸고 2024년 5월 코스피에 상장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현대마린솔루션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대신 떠나는 길을 택했다. 2025년 3월 공시를 통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모기업 HD현대 글로벌리서치센터(GRC)로의 본사 이전 사실을 공식화했다. 본사를 옮긴 후 코스피200 기업에 편입하고 시가총액 8조 원을 돌파했다. 그렇게 부산은 배를 짓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돈을 버는 회사, 연구개발과 글로벌 마케팅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알짜 해양 기업을 잃었다.
대기업 유치는커녕 있는 기업 하나 지키지 못한 부산시의 행정 실패는 차치하고라도 말로만 해양수도인 지역의 초라한 민낯을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산학연 협력으로 지역혁신을 이루겠다며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해양 혁신클러스터까지 만들었는데 정작 해양 대기업은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며 서울로 떠나는 게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지역을 등진다는 비판에 이기동 대표는 “나도 부산대 출신이지만 지역에서는 고급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현대마린솔루션의 수도권행은 그렇게 판교가 청년들의 취업남방한계선이라는 씁쓸한 현실만 각인시킨 꼴이 됐다.
스타트업이라고 현실이 다르지 않다. 항공우주 유망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2019년 서울에서 본사를 부산으로 옮겨 영도에 자리 잡았다. 부산시가 지자체 최초 초소형 해양관측 위성 ‘부산샛’ 발사를 계기로 유치한 기업이었다. 지역 이전 당시 7억 원이던 매출액은 2024년 43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Ⅱ’에 나라스페이스가 만든 위성이 탑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벤처투자가 쏟아지며 급성장했다. 하지만 2025년 7월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서울로 돌아갔다. 80명의 직원도 모두 떠났다. 부산시가 부산기술창업투자원까지 설립하고 창업도시를 외쳤지만 정작 유망 스타트업은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런 씁쓸한 현실에서 대형 조선사들이 부산에 R&D센터를 설립하고 확장한다는 건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품게 하는 소식이다. 한화오션은 최근 136억 원을 투자해 부산진구 부전동에 2700평 규모의 엔지니어링센터를 추가로 조성하고 2028년까지 상선·해양플랜트 분야 설계 및 연구개발 전문 인력을 채용키로 했다. 앞서 삼성중공업도 86억 원을 투자해 기존 남구 문현금융단지 내 R&D센터를 1700평 규모로 확장해 새로운 통합 설계 거점을 조성하고 2028년까지 해양 설계 및 연구개발 분야 우수 인력을 대규모로 고용할 계획이다.
국내 대형 조선소가 경남과 울산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산 현장은 물론이고 R&D와 기획, 영업, 금융 등 산업생태계가 부울경 경제권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래야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해양수도권이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부산 R&D센터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추적 R&D 기능과 전문 연구 인력은 판교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 일극체제가 만들어낸 기현상이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한 후 HMM 등 해운 대기업 이전이 잇따르면서 부산의 기업 판도에도 긍정적 변화가 생기는 것도 지역이 바랐던 해수부 이전 효과다. 3일 부산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5년 매출액 기준 전국 100대 기업에 부산 기업 HMM이 60위로 이름을 올렸고 1000대 기업에 포함된 부산 기업도 31곳으로 늘었으며 이들 기업의 총 매출액 합계도 처음으로 50조 원을 돌파했다.
부산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전재수 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해양수도 부산 세일즈단’ 발대식을 갖고 기업 유치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선급(KR)은 연구시설인 군산TCC(그린 기자재 시험·인증센터) 부산 이전 의사를 밝혔다. 이런 게 해양수도권 조성에 필요한 변화다. 전재수 시장은 불법이 아니라면 기업 유치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결기를 보였다. 5극 3특이니 메가 특구니 정책들을 갖다 붙여 본들, 결국 해양수도권의 미래는 좋은 일자리로 결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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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비장소와 무인숍
1992년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가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꽤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일상적으로 이용하던 공간의 인문학적 의미를 풀어낸 부분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시작되며 타인과의 관계 등이 무의미해지는 장소가 늘고 있다는 게 마르크 오제의 설명이었다.
그가 예시로 든 전통적인 장소는 고향 집, 마을광장, 전통시장, 교회 등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깃들어 있고,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형성하며, 개인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곳이다.
반면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잠시 거쳐 가는 공간이 늘고 있다. 공항, 고속도로, 각종 터미널, 대형마트, 극장 등은 현대인에게 스쳐 가는 장소다. 타인과의 관계는 최소화하면서 효율성 위주로 짜인 공간이다. 마르크 오제는 이런 곳을 ‘비장소’라고 분류했다.
비장소 개념이 등장하자 타인과의 소통, 공동체 소속감 등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판도 있었다. 너무 이분법적인 접근이라는 거다. 오히려 비장소가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해방감을 준다는 긍정론도 나왔다.
지금은 비장소가 너무 일상적인 공간이 돼, 30여 년 전 비장소 개념이 논란이 됐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마을광장, 전통시장 등 전통적인 장소가 특별한 곳이 됐고 일상은 스쳐가는 공간으로 가득하다. 마르크 오제의 진단과 비슷한 세상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더 고도화됐고, 전통적인 타인과의 관계는 옅어졌고, 세상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선호한다. 다만 사람들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 아등바등 살아가다 보니, 여전히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비장소를 넘어선 공간도 늘고 있다. 무인숍이다. 2010년대 중반 코인 빨래방이 많이 늘더니 인형뽑기방, 코인노래방,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무인 커피숍 등이 크게 늘었다. 키오스크 등의 기술력 향상과 인건비 절약 등의 경제적 요인이 결합돼, 대인 접촉 자체가 필요 없는 아주 효율적인 공간이다.
최근 부산 광안리 등 주요 관광지에 무인 오락실 등이 급증하고 있다. 기존 매장이 버티지 못한 곳을 운영비가 저렴한 무인숍이 차지하는 형태이다. 관광지로서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점포이며, 형태도 모두 비슷비슷하다. 마르크 오제가 관광지의 천편일률적인 무인숍 거리를 보았다면 분명 비장소만큼이나 흥미로운 이론을 만들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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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주의 AI 톡] 경력 사다리 첫 칸이 사라지면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 문제는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지난 여름방학부터 4학년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면접이 어땠느냐고 물으면 예년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돌아온다. 신입사원에게 묻는 것인지 경력사원에게 묻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어려운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대규모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수많은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같은 질문, 그리고 IT 기술적인 측면에서 대중 마케팅을 더 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보라는 질문도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실무 경험이 없다면 답하기 어렵다.
최근 알고 지내는 회사의 대표들과 나눈 대화에서 이런 변화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신입 개발자를 더 뽑기보다 기존 직원에게 AI 서비스 구독을 지원하고 할당하는 업무량을 늘리는 편을 택한다는 것이다. 신입이 맡던 자료 조사, 보고서 작성, 단순한 코딩을 경력자가 AI로 처리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과 교육에 드는 비용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첫 일터로 들어가는 문이 좁아지는 일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부산에서는 그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러한 현상은 컴퓨터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수습기관을 찾지 못해 정식 회계사 등록에 필요한 실무경력을 쌓지 못하는 청년들이 사회문제가 됐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5월 수습기관 확대와 수습처 배정 대책까지 마련했다. 회계업계의 불황과 합격자 수급 불균형 등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AI가 장부 대조와 자료 정리 같은 초급 업무를 대신하는 변화 역시 신규 인력 수요를 줄일 수 있다. 법률, 금융, 사무직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으리라는 전망은 오래됐다. 그러나 지금 관찰되는 모습은 기존 직원을 한꺼번에 내보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경력자는 AI를 활용해 더 많은 일을 맡고,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인다. 특히 기존 근로자의 퇴직보다 청년 신규 채용 감소가 두드러졌다. 물론 이를 모두 AI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런데 청년 실업보다 더 멀리 내다봐야 할 문제가 있다. 신입을 뽑지 않으면 초급 경력자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학은 프로그래밍 언어와 회계 원칙, 법률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고객의 모호한 요구를 해석하고, 예기치 못한 오류에 대응하고, 숙련자의 판단을 곁에서 배우는 능력은 실제 업무를 통해 다듬어진다. 개발자가 작은 버그를 잡으며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듯, 회계사도 장부와 증빙을 대조하며 기업의 거래와 위험을 읽는 안목을 쌓는다. 단순하고 사소해 보이던 초급 업무가 사실은 미래 전문가를 만드는 훈련 과정인 것이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기업은 신입 지원자에게 숙련자의 판단력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판단력을 키울 자리는 줄인다.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같은 선택을 하면 10년 뒤 기업의 운영을 책임질 전문가는 어디에서 나올까. 경험을 쌓을 첫 일자리가 사라지는데 ‘경력 있는 신입’만 찾는다면 결국 산업 전체가 인력 양성의 빈틈을 떠안게 된다. 사다리의 첫 칸을 치워 놓고 왜 위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 셈이다.
해법은 ‘AI 퇴출’이 아니다. 기업은 신입사원을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라 미래의 숙련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투자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AI가 생성한 결과를 검증하고, 실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며, 선배들의 경험과 판단을 배우는 방향으로 신입사원의 업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대학 역시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활용하는 학생이 아니라, 그 결과의 타당성을 판단하고 오류를 찾아 설명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 현장실습과 인턴십, 산학연계 교육 등 대학생들이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부산 지역의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기업들이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실습생 지도와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AI 시대의 전문가는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그 결과를 검증하며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을 맡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은 지식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업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따라서 AI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다음 세대의 전문가를 키워 낼 기회마저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진다면, 미래의 숙련된 전문가 또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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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산지등대
바람이 허락하는 높이를 가진다면
가장 먼 곳의 바다가 되겠지
달빛 아래 잠시 교차하는 두 손, 서로의 이름을 바꿔 달고
밀물과 썰물
그러다 당신이 가진 어둠을 알게 되겠지
여전히 부글거리는 작은 칼데라처럼
탄산기 많은 공기로 가득한 검은 모래벌판
그 속, 고둥처럼 혼자인 사내
-시집 〈야생화와 혁명가 사이〉 (2026) 중에서
인간은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로 비유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등대는 우리가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어주고, 위기를 피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존재입니다. 산지등대는 제주시 제주항에 있는 등대인데, 부산의 영도 등대처럼 100년이 넘은 등대입니다. 달빛 아래 세상 모든 등대가 보이고 그 등대 불빛들 아래 밀물과 썰물의 철썩임이 보입니다.
산지등대가 가고자 했던 가장 먼 곳의 바다는 지금 내 눈앞의 바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혼자인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나의 어둠 혹은 누군가의 어둠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시기와 상황에 따라 마음속에 품는 등대는 다르겠지만, 어떤 유혹이나 시련에 흔들릴 때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는 일, 내면에 서 있는 그 등대가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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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눈] 포장을 줄이면 지구가 웃는다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 집하장을 마주할 때마다 과소비가 남긴 불편한 현실과 마주한다. 내용물보다 몇 배나 큰 포장재가 산처럼 쌓여 있고, 택배 상자 속에는 에어캡과 비닐이 가득하며, 제품마다 겹겹이 둘러싸인 포장재가 버려져 있다.
이처럼 우리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한 과대 포장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심각한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러 겹의 불필요한 포장과, 재활용이 극도로 어려운 복합 재질의 플라스틱·비닐 등은 폐기물 처리 부담을 가중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늘려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발생한 포장재 폐기물량은 약 234만t에 달한다. 이는 2019년 대비 약 22%나 증가한 수치로, 특히 코로나19 이후 배달 문화 확산과 온라인 쇼핑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중 재활용률은 여전히 60%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플라스틱 포장재의 경우, 복합 재질과 이물질 등의 문제로 인해 실제 재활용률은 30% 미만으로 추산되어 폐기물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되고 있다.
불필요한 포장 하나를 줄이는 일은 비록 작은 실천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모여 자원을 아끼고 지구의 부담을 덜어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정부가 함께 손잡고 과대 포장 없는 지속 가능한 소비문화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우리는 병든 지구를 되살리고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과대 포장 뒤에 숨어 지구의 비명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모두 행동에 나설 때이다. 포장을 줄이면 지구가 웃는다.
김동석·부산 부산진구 부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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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간과 산업, 미래를 연결하는 해양의 잠재력 주목해야
올해는 해양 접근권과 관련한 갈등이 유난히 크게 불거졌던 해다. 미국과 이란 사이 전쟁으로 빚어진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힐 터이다. 해양 접근권 갈등의 반대편에는 미국을 필두로 한 조선 산업 부활과 해양 패권 회복의 몸부림도 두드러졌다. 그 사이 어딘가에는 부산 출발 북극항로로 상징되는 새로운 공간의 모색도 활발하게 전개됐다. 그 움직임 한가운데에는 해양이 있고 결국 이 같은 시도들은 해양을 어떻게 이을 것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부터 사흘간 일정으로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해양포럼(WOF)이 ‘해양, 잇다’를 주제로 삼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이번 WOF의 ‘해양, 잇다’라는 주제는 바다를 경쟁의 장이 아니라 연결 플랫폼으로 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는 공간적 연결을 필두로 산업과 기술, 지역과 세계, 과거와 미래까지 연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공간적인 연결은 북극항로가 상징적 존재로서 부각된다. WOF은 북극항로만으로 하나의 세션을 구성해 시범운항의 성과와 경제성 분석, 전망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세션은 다시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운항 기술의 변화와 친환경 에너지 접목 가능성 등을 살피며 해양 산업과 기술의 연결성 강조로 발전한다. 마지막으로는 해양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등의 가치를 담은 부산 선언 발표도 예정돼 있다.
2007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WOF은 올해 20회째를 맞는 부산의 대표적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올해 행사는 지난해 말 해수부의 부산 이전 이후 부산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 해양포럼으로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이번 포럼은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부산의 위상에 걸맞은 인사이트를 선보이는 자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때마침 지난 5월엔 WOF이 유네스코 정부간해양학위원회가 주도하는 ‘유엔 해양 과학 10년’의 공식 프로젝트로 승인되는 쾌거도 있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또 하나의 국제행사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유엔 체계의 해양과학과 지속가능성 의제에 직접 연결된 글로벌 협력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다.
WOF이 제시한 주제는 단순히 바다를 잇는다는 의미를 넘어 해양에 대한 부산의 대응 방식을 제시하려는 데 있다 할 것이다. 해양을 둘러싸고 벌어져 온 그동안의 움직임은 항로와 기술, 에너지 등의 지배를 둘러싼 경쟁이었다. 이번 WOF은 부산이 이런 경쟁에 편승하는 도시가 아니라 연결성을 서비스하고 협력을 주도하는 허브가 될 수 있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 선언은 단발성 학술회의를 넘어 진정한 글로벌 해양협력 플랫폼 구축 가능성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간뿐만이 아니라 산업과 미래까지 연결할 수 있는 해양의 잠재력은 해양수도 부산 현실화의 당위성을 웅변한다. 남은 숙제는 그에 걸맞은 정책과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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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방 주도 성장 내년도 예산, 지속 가능한 실행력 관건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역대 최대 규모인 820조 9000억 원으로 편성된 2027년도 정부 예산안 설명에 나섰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의 세 가지 원칙 중 하나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지방 우대를 천명한 것은 바람직하다. 모든 지역과 모든 국민이 성장의 기회와 성과를 고르게 누리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지방을 15회, 지역을 10회 언급하면서 새로운 성장의 발판은 지역이 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수도권 일극 체제와 양극화가 심화하는 ‘K자 성장’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방 주도 성장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이 대통령이 지방을 국가 운영과 성장 발전의 한 축으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시의적절하다. 국토대전환과 지방 주도 성장에 올해의 두 배가 넘는 33조 원을 투자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산업 생태계 형성의 핵심인 앵커기업이 지방에 대규모로 투자하면 설비 투자액의 최대 50%를 지원하는 성장엔진특별보조금 신설도 눈길을 끈다. 지방미래성장지원금 3조 5000억 원으로 지방정부의 자율적인 성장 전략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지방 국립대 등록금 전액 지원,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신설, 거점 국립대병원 중점 육성 방안은 환영할 일이다. 서울·수도권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지방도 함께 잘 사는 나라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62조 3000억 원 규모로 신설되는 미래대응기금에 대해 청년, 미래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개 축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성장 발전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미래 성장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는 타당하지만, 문제는 재원의 지속 가능성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1일 기금 재원인 추가세수가 2029년부터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정연설 내내 피켓시위를 한 국민의힘은 2027년 예산안을 선심성 예산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삭감을 예고했다. 미래대응기금 운용이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훼손하고 미래 세대의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며 엄격한 심사를 벼르는 상황이다.
지방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다. 진정한 미래 대응은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고 지역이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 고르게 발전하는 지방 주도 성장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인 지방 주도 성장을 위해 재정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예산안은 지방의 자립적 토대를 만드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현금 살포나 선심성 복지 예산이 아니라 지방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지속 가능한 실행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가 본격화한다. 여야 모두 지방 주도 성장이란 대의를 위해 초당적 협력과 건설적 경쟁을 펼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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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양산의 계란, 축제가 되다
언제부턴가 TV를 켜면 셰프들이 앞다퉈 등장한다. 낯선 식재료는 물론 집 안 냉장고에 있는 평범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고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리하는 모습 자체가 볼거리가 되고, 셰프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처음엔 1~2년이면 사라질 유행인 줄 알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음식은 허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방송에서 소개된 식당을 찾아가고 요리법을 따라 하는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 유명인들이 SNS를 통해 음식 콘텐츠를 소개하면서 요리도 누구나 배우고 즐기는 문화가 됐다.
이런 변화는 지역 축제의 모습도 바꿨다. 특산물 전시·판매에 그쳤던 행사들이 먹고, 체험하고, 즐기는 미식 축제로 진화하고 있다. 전주비빔밥축제와 광주김치축제가 지역 전통 음식과 식문화를 알린다면, 김천김밥축제와 구미라면축제는 평범한 먹거리도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축제의 경쟁력은 음식에 지역의 이야기를 입히고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기획력에 달린 것이다.
경남 양산에서도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축제가 있다. 지난해 처음 열린 ‘에그야 페스타’다. 양산의 특산물인 계란을 주제로 한 이 축제에는 첫해부터 5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다. 평범한 식재료를 축제 중심에 세워 호응을 끌어낸 것이다. 양산의 먹거리도 기획력에 따라 사람을 불러 모으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오는 7~8일 열리는 올해 축제는 ‘가족’과 ‘아날로그 감성’을 더했다.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맛보고 사진을 찍으며 잔디밭에서 게임과 체험을 즐기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음식을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이 함께 추억을 만드는 축제로 꾸민 것이다.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에 출연한 ‘제일번’ 곽동훈 셰프를 푸드 디렉터로 해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계란 요리를 선보인다. ‘중식 마녀’ 이문정과 ‘철가방 요리사’ 임태훈 등 유명 셰프도 참여한다. 우리 식탁에서 흔히 접하는 계란에 세계 여러 나라의 조리법과 셰프들의 전문성을 더해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계란은 아침 식사부터 간식, 각종 요리와 디저트까지 쓰임새도 다양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친숙한 식재료이지만, 너무 흔하다는 이유로 관광 자원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에그야 페스타는 이 평범한 식재료에 요리와 체험, 볼거리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지난해 방문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계란말이 퍼포먼스가 올해는 선거법 관련 문제로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지 못하게 됐다.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계란이라는 축제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고 방문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다른 지역에서는 초대형 회비빔밥이나 김밥을 만드는 장면이 행사나 축제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모습은 축제의 흥겨움을 더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되면서 홍보 효과도 거둔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법으로 축제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다만 올해는 지방선거도 이미 마무리된 만큼, 법의 취지를 존중하면서도 지역 축제의 참신한 기획이 위축되지 않도록 보다 합리적이고 유연한 적용 기준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축제의 성과가 방문객 숫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 농가와 소상공인의 참여를 확대하고 방문객이 인근 식당과 상점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유명 셰프와 지역 요리사가 함께 양산만의 계란 요리를 개발하고 SNS 등을 통해 꾸준히 알린다면 축제가 끝난 뒤에도 관심을 이어갈 수 있다. 지역 농업과 관광, 상권을 연결하는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산은 통도사 등 역사·문화 자원과 낙동강변 황산공원, 사통팔달의 교통망 등 관광 기반을 잘 갖추고 있다. 여기에 미식까지 더하면 관광객이 머무를 이유도 늘어난다.
음식 축제를 단순한 연례행사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지역 이름을 알리고 소비를 창출하는 관광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밥과 라면, 국수가 지역 축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양산의 계란이라고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
음식이 문화가 되고 축제가 되는 시대다. 에그야 페스타는 지난해 미식 축제의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올해는 콘텐츠를 차별화하고 지역 경제와 연결해 양산을 대표하는 미식 브랜드로 키워야 한다. 평범한 계란 한 알이 양산을 알리는 특별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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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부산의 얼굴이 오락실이어야 할까?
“부산을 처음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보여줄 모습이 바다 다음으로 오락실, 가챠숍이라면 너무 씁쓸하지 않을까요?”
광안리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만난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지난달 〈부산일보〉 취재진이 직접 광안리 해변 1.4km 구간의 1층 상가 200여 곳을 살펴보니 오락실과 인형뽑기·가챠 전문점은 21곳이었다. 카페 17곳보다 많았다. 가챠는 돈을 넣고 기계를 돌리면 무작위로 장난감이 담긴 캡슐이 나오는 기계다. 해운대와 서면 등 부산 주요 번화가에서도 비슷한 업종이 빠르게 늘고 있다.
부산 관광의 중심은 과거 태종대와 해운대를 거쳐 최근 광안리로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관광지는 바뀌어도 거리를 채우는 가게들은 오히려 비슷해지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는 업종에 자본이 몰리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유행이 지나간 뒤다. 기자가 사는 동네에 3~4곳이나 있던 탕후루 가게는 모두 사라졌다. 없어서 못 팔던 ‘두바이 쫀득 쿠키’의 열기도 어느새 식었다. 오락실의 인기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유행이 지나도 쉽게 내려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임대료다.
광안리에서 만난 한 상인은 “재료비와 인건비 등이 많이 드는 식음료 업종 특성상 해변가에서 수천만 원대 임대료를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월세가 5000만 원 안팎인 해변 상가 4곳 가운데 3곳은 대형 오락실이었다.
한 공인중개사는 한 번 올라간 임대료는 건물 가치와 연결돼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행 업종이 떠나도 다음 가게는 수천만 원의 월세를 감당해야 한다. 개성 있는 식당이나 카페 대신 또 다른 유행 업종이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다. 유행은 바뀌지만 거리의 모습은 점점 획일화되는 되는 것이다.
걱정은 광안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서울 홍대나 수도권 번화가에서 유행한 매장들이 부산의 대표 관광지까지 똑같이 들어온다면 부산만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광안리에서 만난 한 미국인 관광객은 “10년 만에 다시 방문했는데 예전에는 전통적인 상점이나 식당이 더 많았다”며 “오락실도 재미있지만 지금은 너무 많다. 현지인과 교류하기보다는 관광객이 돈을 쓰도록 만든 곳처럼 느껴져 아쉽다”고 말했다.
지금 부산 관광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올해 1~9월 부산 방문 외국인 관광객은 약 393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을 불러들인 힘은 어디에 있을까. 바다와 항구, 부산의 역사를 간직한 개성 있는 골목과 음식, 그리고 인정 넘치는 사람들.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의 매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매력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이어지려면 민간의 개성 있는 시도도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새로운 문화행사를 제안할 때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행정 풍토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한 대표는 서울에서는 새로운 기획을 실현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지만, 부산에서는 “하던 거 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행사 하나를 성사시키려 하면 진취적인 주무관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상권이 침체하면 빈 점포가 눈에 띄지만, 호황기에는 무엇이 사라지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10년 뒤에도 광안대교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때도 외국인 관광객에게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부산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kk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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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요산 타계 30주기
문학계 큰 별인 요산 김정한 선생은 1908년 부산 금정구에서 태어났다. 일본과 서울 유학 시절을 제외하면 생애 대부분을 부산과 경남, 울산에서 보냈다. 〈사하촌〉 〈모래톱 이야기〉 〈수라도〉 등 그의 소설에 천마산과 구포 등 동남권의 지명과 구수한 사투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요산 선생은 궁핍한 농촌의 현실이나 부랑자 수용시설 등을 주제로 현실 참여 성격이 강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사회 활동도 활발했다. 조선문학가동맹, 조선예술연맹, 조선문화단체총연맹, 부산문필가협회(부산문인협회 전신) 등에 참여한 데 이어 전국지방국립대학 교수협의회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74년엔 유신 반대 개헌 서명에, 1987년엔 호헌 철폐 촉구 서명에 각각 동참했다. 남해공립보통학교와 부산공립중학교 교사를 거쳐 1950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민주화 운동 경력 때문에 파면과 복직을 경험하기도 했다. 바쁜 집필 일정에도 부산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칼럼 등도 다수 선보였다.
요산 선생은 1996년 11월 28일 향년 89세로 영면에 든다. 올해는 그가 떠난 지 3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그를 기리는 각종 기념사업이 이어졌다. 2003년 생가 복원에 이어 2006년엔 요산김정한문학관이 개관했다. (사)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주도로 고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문학상 시상식과 문학축전도 해마다 열린다. 지난달 24~31일 열린 제29회 문학축전에서는 묘소 참배를 시작으로 백일장, 소설 낭독대회, 문학콘서트, 심포지엄 등이 다채롭게 개최됐다.
특히 기념사업회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선생의 시 44편을 수록한 〈먼동이 튼다〉와 기존 산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을 엮은 〈역시 길은 하나다〉 등 전집 2권을 새로 선보였다. 2008년 소설 전집 5권을 출간한 이후 18년 만이다. 이 두 권의 전집은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힘으로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는 고인의 진취적 세계관을 오롯이 보여준다는 게 사업회 이사장인 이재봉 부산대 교수의 설명이다. 사업회가 올해 축전 슬로건을 ‘우리의 앞길에 무한이 열린다’로 정했던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요산 선생이 강조한 ‘인간과 미래에 대한 믿음’은 요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절실한 화두다. 요산 정신이 더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자료 디지털화 등 향후 추진할 다양한 기념사업에 대해 부산시 등이 한층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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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AI 금융 시대, 부산의 핵심 인프라는 사이버보안
지난달 말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63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 상당의 자산이 탈취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북한의 소행으로 지목했다. 바이낸스는 엔지니어의 노트북이 해킹됐을 가능성을 언급했고, 다른 곳에서도 침입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돈을 움직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돈을 지키는 장치도 더 정교해져야 한다.
사이버보안은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상품을 고르고 결제하는 ‘AI 에이전트 경제’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구글과 비자도 이를 위한 기술과 결제 체계를 공개했다. AI에 결제까지 맡긴다는 것은 돈을 쓸 권한도 내준다는 뜻이다. 회사에서 거래처에 물품 대금을 보내는 일을 AI에게 맡겼다고 해보자. ‘입금 계좌가 바뀌었다’는 사칭 메일을 믿은 AI가 송금했다면, 금액과 지급일을 맞췄어도 돈은 사기범에게 간다. 확인되지 않은 메일 한 통으로 회사가 승인한 지급 조건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아시아 금융허브를 꿈꾸는 부산의 기회도 AI 시대의 금융보안에 있다. 금융기관과 자본이 모이려면 안심하고 거래할 기반이 있어야 한다. 사이버보안은 그 신뢰를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다. 문현금융단지의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보안 문제를 부산 기업이 풀어낸다면, 금융서비스의 신뢰와 부산 기업의 경쟁력을 함께 높일 수 있다.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지 7년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3~2025년 부산 블록체인 특구의 신규 실증 사업은 0건이었다. 이제는 그동안 쌓은 실증 경험을 바탕으로 AI 금융서비스의 사이버보안을 강화할 새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사용자가 승인한 내용과 실제 거래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기술부터 시험해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은 그 지시와 승인 기록을 함부로 고치기 어렵게 남겨, 사고의 경위를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런 과제를 정할 때는 금융기관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부터 살펴야 한다. 여러 기관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라면 다른 금융기관에도 판매할 수 있다. 개발 초기부터 금융기관과 기업이 무엇을 고칠지, 효과는 어떻게 평가할지 함께 정해야 한다. 기술을 만든 뒤 고객을 찾기보다 누가 무엇을 위해 사용할지부터 살피자는 것이다. 부산시는 도입 계획이 구체적인 과제부터 지원하고, 필요한 규제 특례는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검증할 때는 실제 이용자의 입장도 살펴야 한다.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면서도 정상적인 거래는 불편 없이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신속하게 대응해 피해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부산시가 지원하는 금융보안 기술은 전문가의 성능 검증과 금융기관의 현장 평가를 함께 받아야 한다.
이렇게 검증한 AI 금융보안 기술은 금융기관의 구매와 도입으로 이어져야 한다. 실증에 참여한 기업에는 개발과 검증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고, 부산에서 쌓은 실적을 바탕으로 국내외 고객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지원이 시제품 제작에서 끝나면 기업은 기술을 개선하고 인력을 계속 고용할 기반을 갖추기 어렵다. 특구의 성적표에도 실제 도입 실적과 매출, 부산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일자리를 담아야 한다.
AI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이를 안전하게 설계하고 운영할 사이버보안 전문인력의 역할도 커진다. 부산이 이 분야를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하는 이유다.
이를 뒷받침할 연구와 교육의 거점도 생겼다. 지난달 13일 부산국제금융센터에 ‘부산 블록체인·AI 디지털금융 혁신 연구센터’가 문을 열었다. 부산대 연구 인력이 상주하는 이곳에서는 내년 2월부터 융합보안대학원 석박사 과정도 운영될 예정이다. 부산대의 융합보안 핵심인재 양성사업에는 2031년까지 국비와 시비를 합쳐 60억 5000만 원이 투입된다.
이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부산시·대학·기업·금융기관이 ‘AI 금융서비스의 보안 취약점 점검과 개선’을 공동 과제로 추진하자. 부산시는 실증 비용과 시험 환경을 지원하고, 대학 연구진과 학생은 부산 기업과 함께 해법을 개발한다. 금융기관은 현장에서 효과를 확인하고 도입 여부를 판단한다.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이 부산 기업에서 실무를 배우고 취업할 수 있도록 현장 교육과 채용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금융도시의 신뢰는 위험을 미리 찾아 막고, 사고가 나면 책임 있게 수습하는 데서 나온다. AI가 거래를 대신해도 이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가 믿고 쓰는 사이버보안 기술을 부산에서 만들어낼 때다. 부산 기업이 그 기술로 성장하고, 부산에서 나고 자라고 배운 청년이 부산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허브라는 부산의 꿈도 그때 시민의 삶을 바꾸는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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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시-BPA 북항 돔 아레나 개발 방향 한뜻으로 뭉쳐야
북항 돔 아레나의 성패를 가를 부지 확보 문제가 여전히 안갯속이다. 오는 12월 8일 정부의 복합형 돔구장 공모 마감을 앞두고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BPA)가 시설 규모뿐만 아니라 부지를 놓고 구상이 엇갈린 것이다. 시는 민간 투자자를 찾지 못해 표류하던 북항 1단계 랜드마크 부지를 통매입해 5만 석 돔과 업무·상업시설을 짓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BPA는 랜드마크 부지에 중소형 아레나와 고층 업무시설을 배치하고 대형 돔은 자성대로 돌리자는 입장이다. 땅의 소유자와 개발자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공모 시한은 한 달여 앞으로 닥쳐왔다. 통매입 방안까지 나온 만큼 공론을 통해 결론을 내야 한다. 기준은 북항의 공공성과 도시 경쟁력이다.
시와 BPA는 각자의 구상에 대해 실행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 시가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제안은 협상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5만 석 돔 추진에 동력이 실리려면 토지 매입비와 기반 시설 비용, 국비·시비·민간 자본 구성 계획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투자 유치 지연과 운영 적자 때의 책임 그리고 공연·경기 유치를 포함한 수요 분석과 운영 전략도 제시해야 한다. BPA는 중소형 아레나와 수변 문화·상업시설, 고층 업무시설을 결합하는 안의 장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사업성은 중요하지만 과거 두 차례 매각이 유찰된 만큼 투자 유치 가능성 입증이 필수적이다.
북항 랜드마크의 가치는 5만 석이냐 1만 석이냐 하는 시설의 크기나 토지 매각 수익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북항 랜드마크의 개발 방향은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와 직결된다. 해양기업이 모이는 업무 거점이자 시민과 방문객이 문화와 여가를 누리는 공간으로 조성할 수 있는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사업 제안서 제출 마감이 임박한 지금, 각자의 제안을 고집하며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평가 기준과 합의 시한을 정하고 신속하게 공동 검증을 진행해야 한다. 큰 틀의 방향이 정해지면 이미 운영 중인 실무 협의체가 부지의 적정성과 사업성, 재원 조달 방안을 함께 검토해서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시와 BPA는 문체부 사업 제안서 제출 전까지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일정에 쫓겨 비용과 책임을 뒤로 미루는 합의는 또 다른 사업 지연을 낳을 뿐이다. 합의 이후의 실행을 담보할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토지 확보와 도시계획 변경, 공모 역할 분담도 명확히 하고 주요 협의 결과와 추진 일정은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속도와 과정 모두 중요하다. 실무 협의에서 풀리지 않는 쟁점은 기관장 간 협의로 해결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한편 시민사회와의 숙의에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북항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해양수도의 경쟁력 강화를 우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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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끝나지 않은 부산형 전세사기 구조적 문제 해결책 절실
2023년 6월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이후 부산에서는 전세사기 피해 건물의 13%에 피해자 절반 이상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가 2023년 6월부터 지난 9월 8일까지 집계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 결정 현황’을 보면 부산 전역의 주택 476개 동에서 3934건의 전세사기 피해가 인정됐다. 피해 주택 중 한 건물에서 피해 기록이 20건 이상인 곳은 전체의 13%인 63개 동에 불과했지만, 이들 건물에서 전체 피해 기록의 53%인 2088건이 쏟아졌다. 기존 빌라를 대량 매입한 무자본 갭투자가 많은 서울과는 전혀 다른 유형이다. 부산형 전세사기는 소수 임대인이 여러 세대를 한꺼번에 위험에 빠뜨리며 집단적 피해를 유발한 것이다.
부산의 전세사기 피해가 일부 건물에 집중된 이유는 특정 임대인이 구분 등기된 주택의 호실을 상당수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산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임차인들의 피해 구제를 더디게 하는 ‘공동담보’와 연계돼 있다. 공동담보는 집주인이 여러 채의 집을 한꺼번에 담보로 묶어 대출받는 방식이다. 경매에 넘어가면 여러 집의 경매 대금과 은행의 채권 회수액 등을 따져야 해 세입자가 돌려받을 보증금을 가늠하기 어렵다. 공동담보가 더 악성인 이유는 살던 집이 낙찰돼도 함께 묶인 다른 호실들의 경매가 끝날 때까지 지원금 수령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회복 시점을 알 수 없는 데다 금융 부담도 가중돼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부산 전세사기 피해 건물 상당수는 정비구역과 가까운 상업지역의 신축 비아파트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정비구역의 주택은 임대인의 소극적인 관리로 주거환경이 슬럼화돼 거주 불확실성이 크다. 이에 비해 정비구역 외곽에 소규모로 개발된 신축 오피스텔과 다세대주택 등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쾌적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피해자 대부분인 2030세대가 신축 다세대주택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공동담보까지 설정됐을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채 계약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법의 허점을 교묘히 악용한 일부 임대인의 악랄한 수법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빼앗긴 미래’의 고통에 여전히 갇혀 있어 너무나 안타깝다.
부산 전세사기를 일부 악성 임대인의 일탈로만 봐서는 안 된다. 건설·부동산 중심 지역경제에서 규제 완화와 개발 활성화의 부작용을 살피지 못한 행정·금융 시스템이 맞물려 빚어진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특정 법인이 대규모로 연속 개발에 나선다면 재무 상태와 대출 빈도 등을 점검할 장치가 필요하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한시법으로 내년 5월 종료된다. 후속 입법과 제도 정비가 늦어질 경우 피해 지원의 연속성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 피해 인정과 지원 절차를 개선하고, 새로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중심의 법률 정비 등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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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병역 특례, 이제는 폐지할 때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일부 구기종목 몇몇 선수들의 병역 특례 관련 발언과 행동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며 우리 사회가 오래 미뤄 온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체육과 문화예술 분야 병역 특례를 폐지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체육 분야 병역 특례는 1973년 도입됐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북한이 첫 금메달을 딴 것이 계기였다. 북한은 사격에서 금 1개를 비롯해 은 1개, 동 3개 등 5개의 메달을 땄다. 반면 한국은 은메달 1개에 그쳤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이 심화됐던 당시 국제대회 성과를 위한 당근책으로 병역 특례가 도입된 것이다. 올림픽은커녕 아시안게임 메달조차 귀했던 시절, 우수 선수의 기량을 유지하고 국제무대에서의 성취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국제적 성과를 인정하고 창작 활동을 장려한다는 명분으로 특례가 운영돼 왔다.
현행 제도에서 체육인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에 오르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다. 예술 분야는 병무청이 지정한 국제 음악·무용경연대회 입상자와 일부 국내 경연대회 우승자, 국가무형유산 전수교육 이수자 등이 대상이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당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국 스포츠의 위상은 크게 높아져 다양한 종목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뛰고 있다. 반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크게 낮아졌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방식은 다양해졌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 영화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다. 반도체와 휴대폰, 자동차 등 첨단기술 기업 역시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병역 특례가 도입되던 시절의 논리를 지금까지 유지해야 할 이유가 거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병역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과되는 공동의 의무다. 물론 건강과 신체 조건, 법률이 정한 사유에 따라 복무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이나 체육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는 이유로 병역 의무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특정 분야의 성취를 병역 특례의 근거로 삼으려면 그만큼 분명하고 보편적인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방탄소년단(BTS)이다.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K팝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린 BTS는 한때 병역 특례 논의의 중심에 섰다. 세계적 성과를 고려해 병역 의무를 유예하거나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BTS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인 문화예술계 인사가 있었냐는 말이 설득력을 얻어 ‘BTS 병역특례법’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기도 했으나, 형평성 논란 등으로 통과가 무산됐고 결국 7명 멤버 모두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BTS의 사례는 병역 특례를 둘러싼 논쟁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클래식 음악이나 무용 분야의 일부 수상자에게만 혜택을 주고 미술 등 다른 예술 분야나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대중예술 분야를 제외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무엇보다 저출생으로 인한 병역 환경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징집 대상자가 충분했던 과거의 제도를 병역 자원이 크게 줄어든 지금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특정 분야의 사람만 병역 부담을 덜 지는 것에 대해 이제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문제가 해결된 이후엔 한 번도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은 추신수 등의 사례에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축구 대표팀 몇몇 선수들의 도 넘은 발언과 행동에 국민들의 공분은 임계점을 넘었다.
이에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는 단순한 기준 조정을 넘어 단계적 축소와 궁극적 폐지를 검토하는 국면으로 들어섰다. 국방부는 예술·체육 병역특례를 점진적으로 축소해 폐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병역 특례 폐지가 선수와 예술인의 노력을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성취에 대한 보상과 병역 의무를 분리하자는 것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에게는 포상금과 연금, 훈련 지원으로 보상할 수 있다. 군 복무가 선수 생애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복무 중 훈련 여건을 개선하고 전역 후 경기 복귀를 지원하는 방안, 군 복무를 더 늦추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다. 예술인에게도 창작 지원과 국제 활동 지원, 수상 성과에 대한 별도 포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적 성취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갑작스러운 폐지는 이미 병역 특례를 전제로 진로를 준비해 온 청년들에게 큰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이에 몇 년 정도의 유예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강희경 부국장 겸 문화스포츠부장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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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부활 예고한 싸이월드
1999년 세상에 나온 싸이월드는 대한민국 1세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사람들은 미니홈피에 일상을 글귀나 사진으로 기록했고, 친구나 지인 미니홈피를 넘어가며 구경하는 이른바 ‘파도 타기’에 열광했다. 방문자 수가 매일 표시돼 얼마나 많이 미니홈피를 다녀가는지, 은근한 경쟁도 벌였다.
2000년대 중반, 국민적 인기로 누적 가입자가 3200만 명까지 치솟았다. 산정 기준이 다르지만 월간 활성 사용자가 750만 명 내외인 페이스북이나 2800만 명인 인스타그램도 여전히 싸이월드를 넘어서지 못했다. 영유아나 고령층을 제외하면 국민 대부분이 ‘일촌’으로 묶여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젊은이들은 재치 넘치는 일촌명을 정하거나 기분과 감성에 따라 배경음악(BGM)을 바꾸는 게 트렌드였다. ‘ㅋㅋ’ ‘ㅠㅠ’ ‘ㄱㄱㅅ’ 등 자음이나 모음만 사용하는 초성체, ‘했슴돠’ ‘했음요’ 같은 말투가 인터넷에 자리 잡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지금 3040 세대에게 싸이월드는 추억과 감성을 담은 ‘디지털 타임캡슐’이다.
싸이월드 인기는 2010년 전후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시들해졌다. 미니홈피 시스템은 PC 웹 환경에 맞춰져 있었고 스마트폰에 맞춘 모바일앱을 제때 내놓지 못하면서 가입자 이탈이 가속화됐다. 동시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개방성과 확장성을 자랑하는 경쟁자의 부상도 또 다른 추락 이유였다. 일종의 디지털 화폐인 도토리와 BGM 판매 등에 의존한 수익 구조도 성장을 막았다. 이후 경영이 급격히 악화됐고, 2019년 사실상 폐업에 이르렀다.
싸이월드 지적재산권을 사들인 한 블록체인·IT 기업이 이르면 이달 말 모바일앱 베타서비스 출시를 예고하면서 국민적 기대와 함께 논란을 부르고 있다. 3040세대 중심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열린다’며 어린 시절 모아둔 기억과 사진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수차례 회사 주인이 바뀌는 동안 방대한 가입자 데이터를 임의 보관하거나 이관해 온 점에 법적 쟁점과 논란도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기록이나 흑역사가 들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전·현 운영사 간에 사업권 및 자산 양수도 과정을 두고 법적 공방도 마무리되지 않아 기업 가치 띄우기나 주가 부양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싸이월드 서비스가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며 관련 기업들이 테마주로 묶여 주가 급등락을 반복한 일도 있었다.
김영한 논설위원 kim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