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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美 자동차 25% 관세 부울경 주력산업 발등에 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 수입되는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다음 달 3일부터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현지시각 26일 공식 발표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어 개별 품목으로는 세 번째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고에 따라 앞으로 제약, 반도체 등 미국의 개별 관세 부과 품목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대한민국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들이 줄줄이 나열되고 있지만 동남권 입장에선 이번 외국산 자동차 관세 부과가 유달리 아프게 다가온다. 제조업 기반이 붕괴되다시피 한 동남권에서 조선·수리조선업과 함께 제조업의 양 날개를 이뤄왔던 자동차·차부품업 때문이다. 벌써부터 해당 업계에서는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까지 우려하고 있다.
동남권의 대표적인 완성차 업체는 부산의 르노와 창원의 GM이다. 이 가운데 르노는 일본과 국내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지만 북미가 주요 시장인 GM은 이번 관세 조치의 직접 영향권에 들 가능성이 크다. GM은 국내 생산량의 80% 이상을 북미에 수출하고 있으며 이들 물량은 미국에서 외국산 자동차로 분류돼 관세 부과 대상이 된다. GM 측은 이미 올해 1~2월에 북미 수출 물량을 많이 처리해 당장 힘들지는 않으리라 보고 있지만 관세에 따라 발주량이 줄어들면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 GM에 동남권의 80여 업체가 1·2차 벤더로서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GM의 타격만으로 이들 업체는 회사 명운이 갈릴 수도 있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는 현대차가 미국에 30조가 넘는 투자를 약속한 것처럼 직접 미국에 진출하는 방법도 있지만 동남권 자동차 부품업체로서는 그것도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다. 부산지역 자동차 부품업체의 절반 가량이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어도 이들 대부분이 기업 규모가 작아 현대차를 따라 미국을 진출할 수 있는 여력은 기대할 수가 없다. 지역 업체들은 오히려 당장 부품 조달처를 바꾸기 어려운 완성차 업체가 부품업체에 비용을 떠넘기지나 않을지를 더 걱정하는 형편이다. 미국 진출 이전에는 관세 부담을 떠넘기고 미국 진출 이후에는 추가 발생 물류비를 떠넘기는 방식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비용 절감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게 지역 업체들이 느끼는 공포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부과 공식 발표가 있기 전부터 정부 대책은 완성차 업체에 주로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현대차의 미국 투자 약속에서 보듯 행보가 가벼운 완성차 업체에 비해 지역 부품업체가 받을 타격이 훨씬 큰 상황이다. 특히나 완성차 업체의 미국행 이후에는 현지 부품업체들로 부품 공급체인을 바꿀 가능성도 크므로 지역 부품업체는 궤멸적 타격이 우려된다. 정부와 지자체, 지역 상공계 등이 혹시라도 있을 완성차 업체의 비용 전가를 감시할 체계를 구축하고 자동차부품업체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지원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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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의대생 복귀 본격화로 의정 갈등 해결의 길 열어야
정부가 의대 증원 등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들에게 제시한 복귀 시한이 임박하면서 이들의 복귀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부산 지역 의대도 27일 부산대를 시작으로 고신대 28일, 인제대 내달 5일까지 등 줄줄이 복귀 시한을 맞는다. 동아대도 사전에 수강 신청을 하지 않은 의대생에게 추가 수강 신청 기회를 주고 있다. 부산 지역 대학들은 막판 복귀 설득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지난 21일 복학 등록을 마감한 연세대와 고려대 의대생 80% 이상이 복귀 의사를 밝혔다. 서울대 의대 학생회도 설문 조사에서 65.7%가 ‘등록 후 투쟁’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생들의 복귀 움직임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와 전국 의대 측은 의대생들이 이달 말까지 복귀한다는 것을 전제로 내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렸다. 1년 동안 계속된 의대 교육 파행과 의료 대란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대생들도 의대 복귀를 거부할 명분은 없다. 그럼에도 강경파 의대생들의 도를 넘은 복귀 방해 행위는 심각하다. 연세대와 고려대 일부 의대 학생 단체들은 온라인상에서 ‘등록금 미납 실명 인증’을 요구하며 복귀 학생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미복귀 의대생의 휴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제적·유급에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후배 의대생을 볼모로 잡고 기득권을 주장하는 이러한 행태는 더는 없어야 한다.
의대생 휴학이 내년까지 지속하면 의대 교육을 정상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3월 말이 지나면 학교로 돌아온다고 해도 2025년 1학기를 수료할 수 없다. 만약 2학기에 복귀를 하는 등 복귀가 늦어지면 내년에 1만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1학년 교육을 같이 받는 ‘트리플링’ 현상이 벌어진다. 이러면 대학 측이 실질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 이번에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의료교육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우려가 크다. 의대생들도 의사가 되기 위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스스로 상실하는 것이다. 의대 교육 정상화나 정부 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명분도 의료 교육 시스템이 붕괴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료계 스스로 자폭하는 꼴이다.
상당수 의대생이 복귀하더라도 의대 교육과 의료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복학생들의 수업 참여 여부, 복귀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처분 등으로 인해 의정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년도 의대 정원 동결로 정책의 큰 틀을 마련한 만큼 정부와 의료계는 대화를 통해 갈등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학도 의대생들의 복귀 설득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의대생이 하루빨리 복귀하고 의료 교육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의대생 복귀 본격화는 의정 갈등 해결의 길을 여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이를 동력으로 삼아 필수·지역의료 강화 정책 등 의료 개혁을 원점에서 논의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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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위험하고 위태롭고 불안한 나라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잇단 어선 침몰, 무안공항 제주항공기 추락, 부산 반얀트리 리조트 공사장 화재, 사상 최악의 동시다발적 대형 산불 등등. 12·3 계엄령 이후 불안정한 탄핵 정국과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속에 소중한 생명을 마구 앗아가는 참사와 재난 발생이 잦다. 언제 어디서 또다시 인명 피해를 부르는 사고가 터질지 몰라 국민들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삼권분립에 입각한 국가 시스템도 위태롭기 짝이 없다. 국회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정파적 이익을 앞세운 정쟁 탓에 제 역할을 못한 지 오래다. 여야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는 아예 거리로 뛰쳐나와 헌재를 압박할 의도로 지지층 선동과 결집에 혈안이다. 여야 간 대화는커녕 대치가 격화해 경제와 민생의 안정을 위한 각종 현안 처리는 하세월이다. 특히 민주당은 당리당략이 농후한 쟁점 법안 통과를 강행하는 입법 독주와 정략적 탄핵 남발로 여권을 뒤흔든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24일까지 90여 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미국 트럼프발 관세정책에 제대로 손쓰지 못하는 등 곳곳에서 국정 공백을 빚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마저 불안하다. 사법부는 윤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극단적인 보수·진보 세력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정치 사건 재판을 담당한 일부 법원이 최근 보안시설을 강화하려고 법원행정처에 추가 예산 6억 5300만 원을 요청한 데서 사법부의 불안감은 감지된다. 이는 올 1월 19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극우 세력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력 사태의 영향이다.
지난 26일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주변에서도 각각 유·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양 진영 지지자들의 시위가 벌어져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더욱이 이날 판결은 정치 논쟁을 심화하며 사법부 불신까지 가중한다.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을 내린 1심을 완전히 뒤집는 무죄가 선고된 것. 1·2심의 전혀 다른 판결은 재판부가 자신들 정치 성향에 맞춰 판결한 ‘사법의 정치화’란 게 여당 평가다. 야당은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 억지 기소가 드러났다고 반박한다. 법원이나 재판부, 판사마다 들쭉날쭉한 ‘고무줄 잣대’는 오래전부터 국민의 사법 불신을 키워 온 주된 요인이다.
2018년 6월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재판 결과를 불신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당시 재벌과 국회의원 같은 기득권층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 정권 편향적이거나 보수·진보 성향 판사에 따라 다른 판단,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쇄신 의지 부족 등이 사법부 불신이 쌓이고 확산하는 이유로 꼽혔다. 그리고 서민들 사이에 진리처럼 여겨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인식이 사법 불신의 심화에 한몫했을 테다.
앞으로는 사법 불신이 깊다 못해 법원 결정에 불만을 품고 불복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서부지법 군중 난동 사건이 단적인 예다. 존엄성이 생명인 사법부의 권위가 위협받는 꼴이다. 신뢰도가 더욱 높아야 할 광의의 사법부인 헌재에 대한 불신 역시 심각한 문제다. 코리아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의 지난 17~19일 조사 결과,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앞선 조사보다 9%포인트 상승한 36%,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42%로 나타났다. 탄핵 선고가 이뤄진 후 어느 한쪽 진영의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거센 저항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자기 요구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헌재를 박살 내겠다는 험악하고 위협적인 발언이 터져 나올 정도라 걱정스럽기만 하다.
사법의 신뢰 추락과 사법부 위협 행위는 정말 위험하다. 국가를 지탱하고 국민 권리를 보호하는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따라서 사법부에 신뢰 회복을 위한 대오각성과 자정 노력, 독립·중립성 확립이 요구된다. 이런 차원에서 판사들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해야 마땅하다. 헌재는 이의가 없을 만큼 엄정하고 신속한 심판을 통해 탄핵 정국의 국가적 혼란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정치권은 법치의 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야와 국민 모두 탄핵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후폭풍을 자초해 공멸할 수 있다. 여야는 나라가 무법천지로 전락하고 진영 갈등이 내란 수준으로 치닫는 걸 원치 않는다면, 당장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쟁을 접고 국가 및 사회 안정화와 국민 통합을 꾀하는 본연의 임무 수행에 나설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국내외 악재와 중대 현안에 대해 시의적절하고도 실효적인 총력 대응이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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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밑빠진 미분양에 세금 붓기
‘악성 미분양’으로 손꼽히는 부산의 준공 후 미분양이 2009년 이후 16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일반 미분양이야 입주 전까지 해소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파트가 다 지어졌는데도 들어와 살 사람이 없는 준공 후 미분양은 지역사회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시행사는 빚더미에 앉고, 건설사들은 공사대금을 받을 길이 묘연해진다. 지역 경제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업이 휘청인다는 건 서민들의 밥벌이가 위협받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지난달 대책을 내놨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000세대를 매입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건설업계는 정부의 대책에 시큰둥하다.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나 지방 스트레스 DSR 3단계 유예 등 실질적인 수요 진작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사 보증 기준 완화나 개발 부담금 한시 감면 등 업계에서 줄곧 요구해 왔던 규제 완화책이 빠져있다고도 한다.
원자잿값 인상이나 고금리 장기화 등 건설사들이 어찌할 수 없는 외생 변수가 시장 악화에 큰 원인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건설업계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준공 후 미분양이 쌓이는 단지를 살펴보면 좋지 않은 입지에 소비자의 눈높이를 훨씬 웃도는 분양가를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매출원가율 등을 이유로 분양가는 내리지 않으면서, 정부에 고강도 대책만 주문하는 오래된 방식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탈피하기 어렵다.
LH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한다는 건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민간 기업의 재고 소진을 돕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입주하는 아파트 대다수는 부동산 경기가 정점을 찍었던 2020년 전후 추진된 개발 사업의 산물이다. 제대로 된 수요 분석 없이 경기에 휩쓸리듯 사업에 뛰어들어 발생한 투자 리스크를 정부가 전적으로 대신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건설 경기는 10년 사이클을 돈다’며 앞으로 3~4년 뒤를 바라보고 주택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 적지 않다. 여기에는 건설업 위기 때마다 정부가 업계 입맛에 맞는 대책을 내놔왔던 학습효과와 이에 따른 막연한 기대감도 한몫한다.
건설업계도 변화를 꾀해야 할 때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과 플랜이 필요하다. 허허벌판에라도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값이 오르던 시대는 어쩌면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기형적인 수준으로 높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레버리지를 정상화하고,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시의적절하게 시행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봐야 소용이 없듯, 건설업계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특단의 ‘수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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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칠성 신앙과 북극전
하늘의 별들은 인간의 삶과 깊숙이 매개한다. 어떤 이에게는 길잡이가 되어 주고, 또 다른 이에게는 복을 가져다주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해와 달, 별들이 인간의 탄생과 죽음, 수명, 길흉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일월성신과 천지신명 속에 세상 만유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이러한 별자리 신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속 신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이른 새벽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자식, 손자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칠성님께 빌었다. 여기서 칠성님은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불교의 칠성여래불, 기독교 요한계시록의 일곱 별, 도교의 칠원성군 모두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한민족에 있어 북두칠성은 오랫동안 전통 신앙의 중심에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 위에 누이는 것도 칠성 신앙의 한 모습이다. 청동기시대 고인돌의 뚜껑돌에도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북두칠성의 자손으로 여겨 왕릉이나 무덤 벽화에 북두칠성을 즐겨 그렸다.
절에 가면 통상 대웅전 뒤편에 칠성각(혹은 북두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물로 본래 불교와는 관련이 없다. 이 전각은 한민족의 칠성 신앙이 불교와 융합돼 사찰 내에 수용됐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부속 암자가 많다. 통도사에서 500m 정도 거리에 있는 안양암도 그중 하나다. 〈통도사 사적기〉에 따르면, 안양암은 1295년(고려 충렬왕 21년)에 찬인대사가 창건 또는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현재 사찰 건물들은 대부분 근래에 지어진 것이다.
안양암은 북극전으로 유명하다. 북극전은 칠성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칠성각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각(閣)’ 대신 ‘전(殿)’을 사용해 격을 높였다. 북극전은 안양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865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네 귀퉁이를 받치는 활주와 연꽃무늬를 새긴 화강석 주추는 절의 품격을 더한다. 최근 이 북극전이 국가유산청의 올해 보물 지정 추진 대상으로 선정됐다. 너무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북두칠성은 사람의 수명과 풍요, 재물을 주관하지만 비도 관장한다. 비를 내리는 게 하늘을 상징하는 칠성님의 주된 역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국이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안양암 북극전으로 발걸음을 옮겨 건물도 감상하고, 더불어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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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성장통
최근 들어 아이가 발목과 무릎, 사타구니 주변의 통증을 자주 호소했다. 심할 때는 서 있지도 못하겠다면서 갑자기 주저앉아버렸다.
정형외과에 가서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소견은 없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성장통 같다면서, 뼈가 자라는 속도에 비해 근육이나 인대가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그로 인해 통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기에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찜질과 마사지를 해주었다. 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일이니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면서.
극심한 통증으로 매일 괴로워하는 아이를 계속 지켜보는 일은 나에게도 고통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방도가 있다면 뭐라도 해볼 텐데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통증은 통증으로만 그치지 않고 무기력과 짜증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그 짜증이 통증 때문인지 아닌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아파서 그렇다는 아이에게 야단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다 받아주자니 내 마음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정형외과에는 다시 가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통증의학과를 찾아갔다. 증상을 들은 의사가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니 몇 학년이고?” 아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중2요.”
그러자 의사가 다시금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중2병인가.” 어쩐지 정확한 진단명을 들은 것만 같았다. 의사는 아이가 아프다는 부위를 눌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중2가 제일 무섭다.”
그래, 이 아이는 중2다. 그걸 잊고 있었다. 아이는 중2답게 의사의 질문에 매번 표정 없이 단답형으로 대답했고, 주사를 맞고 나와서는 이까짓 것 별 거 아니라는 듯 갑자기 으스댔다.
주사가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다시 주사를 맞기가 싫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새 근육과 인대가 좀 더 자라났던 건지, 다행히도 아이의 통증은 나아졌다.
그렇지만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은 수시로 나타날 것이다. 조금 놀리듯이 중2병이네 뭐네 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마음의 성장통이다. 뼈가 자라는 속도를 근육과 인대가 따라잡지 못해 온몸이 아팠던 것처럼, 정신의 어떤 부분이 자라는 속도를 다른 부분이 따라잡지 못하니 감정은 들쑥날쑥하고, 송곳처럼 튀어나온 감정들에 찔려 아플 수밖에.
예컨대 독립심과 비판적 사고력은 쑥쑥 성장하는데, 절제력이나 포용력은 그에 미치지 못함에서 오는 불균형이랄까.
결국 성장통이라는 것은 자라나는 속도의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성장통이 오로지 성장기 아이들에게만 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의 정신은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다. 육체는 쇠락해도 정신은 그 육체의 틀을 깨고 높게 뻗어나갈 수 있다. 성인이라고 해서 그 성장의 과정이 늘 안정되고 균형 잡혀 있는 것도 아니니, 성장하려는 이들에게는 언제든 마음의 통증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인기몰이를 했던 자기계발서 중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그러나 청춘만 아픈 것은 아니다. 중년도 아프고 노년은 더욱 아프다.
실은, 아프니까 사람이다. 진정 살아 있으니까 아프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자라려니까 아프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아파왔다. 통증 때문에 서로를 찔러대기도 했다. 이것이 성장통이라면, 어긋난 것들의 균형이 맞춰질 때 비로소 통증은 멎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통증의 시간 동안 더욱 단단하게 자라난 우리의 정신은 위기의 순간마다 굳건한 힘을 보여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통증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성장통이었기를. 곧 다시 만나게 될 세계에서는 따뜻한 봄날 오후의 햇살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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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위기의 부산, 문화도시로 대전환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동북아를 대표하는 환적항을 보유한 국제물류 중심지다. 하지만 부산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도시임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청년층 유출로 인해 인구 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다. 인구 330만 명은 이미 무너졌고, 2024년 12월 기준 부산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3.9%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한때 부산 경제를 떠받쳤던 제조업이 약화된 지 오래고, 양질의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현재 부산의 고용률은 전국 평균보다 낮으며, 남아있는 일자리마저 대다수는 자영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 중심 경제 전략에서 벗어난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문화·예술·관광’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 전략 구축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도 보여주기식 개발과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는 일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시 경쟁력은 단순한 인프라 건설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 정체성과 브랜드 구축에서 나온다.
부산과 같이 환적항을 가진 싱가포르는 중국 상하이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한다. 물류 허브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시 경쟁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물류와 금융 중심도시에서 문화 콘텐츠와 관광을 강화해 ‘아시아 문화 허브’로 자리 잡은 싱가포르는 중요한 메시지를 알려준다. 특히 싱가포르 예술의 중심지인 ‘에스플러네이드’는 지역 및 국제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고, 관광객들에게도 큰 매력을 발산한다. 싱가포르 최초의 공연예술 전문도서관을 비롯해 1600석의 콘서트홀과 2000석 규모의 극장에서는 음악, 무용, 연극 등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무료 행사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공연 전후로 식사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부대시설은 방문객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며, 건축물의 역사와 음향 시설 탐방을 위한 가이드 투어도 마련되어 있다. 도시의 문화 콘텐츠에 관광을 결합해 도시 경쟁력을 높인 성공적인 모델이다. 적극적인 정부 주도 예술정책으로 싱가포르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단순한 물류도시가 아니라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부산이 환적항으로 위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5년에 발생한 고베 대지진이다. 당시 일본의 대표 무역항이 지진 피해로 그 기능을 상실하면서 부산항이 고베항을 대체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핵심 항만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행운은 노력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 더욱이 중국의 상하이항, 닝보항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부산항 환적물량이 줄어들고 있다. 환적항이라는 물류 허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싱가포르처럼 문화·관광을 융합하는 도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부산시는 부산의 위기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화예술계 예산 또한 정치적 홍보나 이벤트성 행사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6000억 원에 가까운 시민 혈세를 낭비했고, 가덕도 신공항, 북항 재개발, 부울경 메가시티 등 대규모 프로젝트는 부산 시민의 삶을 위해 어떻게 운영할지 그 실행 계획을 제대로 알 수조차 없다. 산업은행 본사 이전의 실질적 경제 유발 효과도 꼼꼼하게 따져 검토해야 한다.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에 예산을 쏟아붓기보다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클래식 전용홀이나 오페라하우스는 지역 문화예술회관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독자적 공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문 인력인 예술단을 부산시가 직접 고용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가능해진다. 이런 것이 제작극장이다. 실기 중심 교육에 머물러 있는 지역 대학의 교육도 콘텐츠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개편해야 한다. 문화예술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전문적으로 길러내고, 지역 내 공연장과 연계한 현장 중심의 실무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투자 대비 수입이 극도로 적은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적 삶을 꾸릴 수 있는 주거 지원 정책과 자녀 교육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 지역의 많은 예술가나 예술단체는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생존을 고민하고 있고, 우수한 예술가들조차 예술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수도권이나 해외 공연예술 단체에 의존하는 일회성 문화 소비도시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시설물만 넓히고 짓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예술가들을 직접 고용하는 데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위기에 직면한 ‘부산 살리기’는 더 이상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도시의 미래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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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고미술과 명화가 거래되는 마스트리흐트 테파프
프리즈(Frieze)가 2022년 국내에 상륙하면서 아트페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과 동시에 한국 시장도 주목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아트부산, 부산국제화랑 아트페어(BAMA) 같은 지역 아트페어도 십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트바젤, 프리즈와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테파프(TEFAF)가 열리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마지막 날 행사장을 찾았다. 생경한 지명인 마스트리흐트시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국토의 남쪽 끝자락 국경이 반도처럼 돌출되어 있는 곳에 있어 독일, 벨기에와 국경이 맞닿아 있다. 좌우로 브뤼셀, 뒤셀도르프, 쾰른 등의 주요 도시와의 거리가 불과 100km. 한 시간이면 닿는 교통의 요지이다.
유럽미술박람회(The European Fine Art Fair)의 약자인 테파프(TEFAF)는 마스트리흐트에서 1988년 처음 문을 열었다. 아트바젤, 프리즈와 가장 큰 차별점은 고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망라한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도 마스터피스, 즉 거장들의 명화를 거래하는 시장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올해 가장 화제가 되었던 구스타프 클림트,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같은 작품이 거래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구매자가 개인 컬렉터 뿐 아니라 주요 미술관, 박물관인 경우도 있다. 이밖에 고서, 골동품, 보석, 가구 등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참가 화랑들이 작품 설치를 마친 직후 바로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작품 이력을 검증받고 또 작품성까지 인정된 후에야 비로소 전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팝업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전시 부스도 테파프만의 특징이다. 혹자는 아트바젤, 프리즈가 마치 시장과 같은 분위기라면, 테파프는 명품 백화점이라고 비유하는데, 그만큼 고급스런 분위기는 페어와 출품작을 돋보이게 했다.
마지막 날 방문했기에 작품 상당수가 판매 완료돼 있었다. 마침 안내 데스크에서 귀띰해준 곳도 각각 5000만, 4000만 달러에 낙찰된 피카소와 헨리 무어의 작품이 있는 한 갤러리였다. 이들 작품은 미술관에서나 만날 법한 작품이어서 가격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올해의 경우 국내 갤러리는 가나아트와 페이지 갤러리가 테파프에 참가했다. 디자이너 정구호씨가 직접 부스 디자인을 하고 출품까지 했다는 페이지 갤러리의 경우 12세기 고려시대 연회에서 사용된 청자 사자형 향로, 한국의 전통 목기인 반닫이를 플렉시 글라스로 재해석한 투명 반닫이 등을 선보였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해외에 알리는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테파프는 해마다 3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5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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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양대학의 ‘글로컬대학30’ 선정은 국가 안보 위한 결단
바다는 인류 경제 발전과 안보를 지탱하는 핵심 공간이다. 세계를 연결하는 동맥으로 언제든 항행의 자유와 물류가 보장되어야 한다. 역사는 한 나라가 이 바다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갈린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항해시대, 서방 해양강국들은 바다로 진출하며 국운이 융성했다. 16세기 유럽에서 막대한 세력을 떨치며 세계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필자는 40여 년간 해군에 몸담아 바다를 지켰다. 전역 후에는 해양강국 구현을 기치로 해양산업총연합회장과 해양연맹 총재직을 맡고 있다. 해양산업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해운이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 국가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과거 미국이 전시 상황에서 국적 상선대 부족으로 전쟁 물자 수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외국인 위주로 구성된 미국 상선대 선원들은 위험이 닥치자 모두 배를 떠났다. 이후 많은 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국적 상선대를 지원하며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국적 전략 상선대가 없다. 동원 선박이 지정되어 있으나, 임무를 수행할 국적 선원이 크게 부족하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수출입의 대부분을 해상에 의존하는 무역 국가인 우리에게 전략 상선대의 존재는 국가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전략 물자를 수송할 해상수송로의 안전 확보와 이를 수행할 해군과 국적 상선대이다. 무엇보다 유능한 국적 선원을 안정적으로 양성하고 유지할 체계 마련이 시급하며, 이를 위한 범국가적 공감대 형성과 정책적 지원 역시 절실하다.
해상수송로의 안전과 관련해 우리는 오랜 기간 미국 주도의 국제 해양 질서에 의존해왔다. 냉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안보 체계에 무임승차한 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은 국제 경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위협 인식이 낮아지면서 조선·해운 능력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미 해군마저 위협을 느끼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해양 팽창 정책을 펼치는 중국의 영향이다. 미국 주도의 국제 해양질서가 흔들리는 지금,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상황은 심각하다.
이처럼 위중한 상황 속에서 우리 해운산업이 당면한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해기사 인력 부족 현상은 2008년을 기점으로 심화되어, 2023년 기준 누적 부족 인원은 5007명에 달했으며, 2032년이 되면 8601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부족한 인력을 동남아 등 외국인 선원으로 채우고 있지만, 이들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숙련되면 근로 조건이 더 나은 유럽 선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국적 해운사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은 부족하다.
그런 가운데 국내 최고의 해기사 양성 교육기관인 한국해양대학교가 ‘글로컬대학30’ 선정에서 누락될 위기에 처해 있다. 유사시 국적 전략 상선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가관과 사명감을 갖춘 해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접목된 상선 운용을 위해서도 우수한 해기사 양성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고가의 첨단 교육 훈련 설비를 갖추어야 하나 정책적 지원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행히 한국해양대학교와 목포해양대학교가 연합해 2025년 ‘글로컬대학30’ 선정에 ‘해양특성화대학’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폭적인 배려와 지원이 절실하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며 언제 전쟁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급히 전략 물자 수송 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지만, 안보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부산시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해양수도 부산시의 자존심이자 책무이다. 대한민국은 바다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해양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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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2심 엇갈린 이재명 판결 대법원 결론 중요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피선거권 상실형을 받았던 판결이 완전히 뒤집히면서 대선 가도에 걸림돌이 제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 6-2부는 26일 “공직선거법 250조 1항에서 정한 후보자 행위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피고인은 무죄”라고 선고했다. 지난해 11월 15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지 131일 만이다. 아직 대법원 판결과 다른 사건에 대한 재판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 대표는 대선 가도로 가는 데 있어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어깨를 짓누르던 사법 리스크에서 한 걸음 벗어나 대권 도전에 탄력을 받게 됐다.
이날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이 대표의 발언 모두를 무죄로 판단했다. 1심은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과 관련한 ‘국토교통부 협박’ 발언과 ‘고 김문기와 골프를 친 사진 조작’ 발언을 유죄로 봤으나, 2심은 이를 모두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토부 협박 발언에 대해서도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은 이 대표의 발언을 정치적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발언을 폭넓게 인정했다. 하지만 1·2심의 엇갈린 판단은 법적 일관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소위 선거법 적용의 일관성 문제, 정치적 발언에 대한 해석 등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 대표는 2심 무죄로 향후 대선 출마에 더욱 유리한 상황을 맞았다. 그런데도 이 대표의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법원 판결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대선 출마를 위한 자격 문제는 법적 논쟁을 넘어 국민의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후보자가 선거법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면, 이는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만약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정치적 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무죄 판결을 내린다면 대선 출마에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그만큼 대법원의 결론이 중요해졌다.
이 대표에 대한 법원 판단이 엇갈림에 따라 대법원의 공정성과 신속한 판결 필요성은 더 커졌다. 특히 대선이라는 중요한 국가적 이벤트를 앞두고 정치권의 불안정성이 커지면 국민들의 신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예상되는 조기 대선 시점과 이 대표의 대법원 확정 판결 시점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 상황과 상관없이 결론을 내겠다는 대법원 의지만 있다면 대선 전 판결 확정도 가능하다. 대선 과정에서 벌어질 논란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이 대선 전 유무죄 판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하고 민주주의의 법적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대법원의 신속한 결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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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가적 재난으로 번진 산불, 인명 피해 총력 저지해야
좀비처럼 되살아나기를 반복하는 ‘괴물 산불’의 기세가 닷새를 넘게 이어지면서 인명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진화대원에서부터 민간인까지 이번 산불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만 20명을 넘어섰다. 26일에는 산불을 끄던 헬기까지 추락해 조종사가 숨지는 등 인명 피해는 점점 커지는 추세다. 이 같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산불의 완전 진압을 위해서는 27일부터 예보돼 있는 비소식만 기다려야 할 정도로 우리의 산불 현장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재난 앞에서 고스란히 치부를 드러내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이 이번 산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각종 예산을 비롯한 사회적 가치가 정작 필요한 곳에 배분되지 못하는 데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중앙재난안전본부는 26일 오후 4시 기준 이번 산불로 숨진 사람이 모두 24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경북에서만 20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으며 경남에서도 4명이 숨졌다. 중경상자도 경북 15명, 경남 9명, 울산 2명 등 26명에 달한다. 체계적이지 못한 주민 대피 조치가 민간인들의 인명 피해를 키운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는 가운데 26일 경북 의성에서는 산불 진화 작업 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산림청 보유 진화헬기 중 8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어 투입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헬기 추락 사고까지 겹쳤다고 하니 진화 여건은 더욱 열악해졌다.
이번 산불은 피해면적으로만 따져도 1만 2000ha를 넘는 역대 세 번째 규모의 대형 산불이라는 의미 외에 진압 현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산불로 기록될 듯하다. 산불 진압을 맡은 산림청·지자체 소속 산불진화대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는 말할 것도 없고 고용 형태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라 전문성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처우가 열악하니 진화대원의 새로운 수급은 언감생심이라 평균 나이가 60세를 훨씬 웃돈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나라 곳간에서 아낌없이 뿌려지곤 하던 국가 예산이 정작 재난에서 사회를 마지막으로 지켜내는 필수 안전망의 수선에는 미치지 못하는 이 같은 현실을 언제까지 개탄만 해야 하는가.
그나마 이번 산불을 계기로 여야 정치권이 발빠르게 피해 복구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며 손잡고 나선 것은 다행이다. 국민의힘이 제시한 여야정 국정협의회 재가동 제안에 더불어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적극 호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관 임명 등을 놓고 끝없이 반목하면서 민생을 뒷전으로 밀어냈던 정치권이 산불을 계기로 민생 논의 물꼬를 튼 것이다. 논의는 피해 복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서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어렵사리 시작한 여야의 이번 논의가 근본적인 산불 대비책 마련을 위한 예산 편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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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동생은 그날 이후 수시로 문자를 보냈다. 일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며 휴대폰을 열어보면 시시각각 뒤집고 또 뒤집히는 뉴스에 불안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언니야, 법이 왜 이래. 검찰은 또 왜 그래. 헌재는 믿을 수 있나. 그런데 언론은 왜 이러지. 그 때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란은 정리될 것이라고, 상식적인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계엄의 밤에 모두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른 송년회를 하다가 맨몸으로 국회의사당 앞에 달려간 사람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속옷과 양말을 챙겨 하루아침에 계엄사 통제 대상이 된 직장으로 야밤 출근을 했다. 넉 달 가까이 지났지만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그사이 여객기가 추락하고 산불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일상은 회복되지 않고 국민들의 마음도 재난이 됐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최종변론에서 국회 측 한 변호사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을 인용했다. ‘세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가사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전에서 ‘제자리’는 ① 본래 있던 자리 ② 위치의 변화가 없는 같은 자리 ③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라는 뜻이다. 본래 있던 자리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 하나가 원상 복귀라면 다른 하나는 옳고 바르다는 판단이 개입된다. 각각 사실과 당위의 영역이다.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자리는 당연히 저마다 다르다. 여기에서 갈등이 생긴다.
탄핵심판은 비상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계속 대통령직에 있는 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맞는지 살피고 그 결과 복귀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제자리 찾기’라고 할 만하다. 탄핵을 찬성하는 쪽은 국민을 상대로 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직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파면만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하는 쪽은 복귀가 마땅하다고 확신한다. 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이자 거대 야당의 횡포에 맞선 대국민 호소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노래 ‘풍경’ 속의 제자리는 이상향에 가까운 것 같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 노래가 실린 1986년작 음반 ‘푸른돛/사랑일기’를 소개하면서 가수가 이 앨범을 낼 당시 줄담배와 위스키에 기댈 만큼 행복하지 않았고, 동화 같은 단어와 밝고 차분한 멜로디 밑에는 괴로움이 깔려있다고 썼다. “가사의 행간에는 지금은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이 숨어있다”는 글에 비춰보면 ‘제자리’를 ‘지금은 없는 희망’에 대입해볼 수 있겠다.
헌재의 결정이 지연되는 동안 갈등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심판 선고 자체보다 선고 이후가 더 중요하다. 어쩌면 더 큰 혼란이 닥칠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든 누구도 계엄이 선포되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거꾸로 우리 사회의 다음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꺼내놓고 논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지금은 없는 희망이라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광장에는 이미 목소리들이 넘치게 모였다. 제각각의 시민들이 대통령 한 사람의 퇴장을 넘어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한 각 분야의 개혁 의제들을 외친다. 이른바 ‘사회대개혁’이다. 물론 음모론을 불씨로 차별와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차별과 혐오가 제자리일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8년 만에 반복된 탄핵에서, 어떤 계절보다도 길었던 지난 겨울에서 하나도 배운 것이 없게 된다.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콘클라베’ 이야기다. 콘클라베는 추기경 108명이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에 갇힌 채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계속하는 방식이다. 영화에서는 두 번의 연설이 투표에 파동을 일으킨다.
콘클라베 전날 선거 단장인 로렌스 추기경은 “하느님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의심 없는 확신은 통합과 관용의 적”이라고 강변한다. 두 번째는 마지막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베니테스 추기경이 하는 연설이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를 두고 “종교전쟁”을 말하는 테데스코 추기경에 맞서 “편을 가르는 대신 모든 남자와 여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교회는 권력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에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교황청은 굴뚝 위에 흰 연기를 피워올린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의미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소의 문이 열리기를, 이제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늦더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신호가 되기를, 모두가 일상을 되찾고 다음에 해야 할 일로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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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위스키 전쟁
캐나다와 덴마크의 국경 분쟁은 술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여유 가득한 분위기였다. 1980년대 캐나다 엘즈미어섬과 덴마크령 그린란드 사이 무인도 한스섬을 둘러싸고 영유권 갈등이 발생했다. 캐나다가 한스섬에 국기와 캐나다산 위스키로 영토 표식을 하면, 덴마크도 국기와 슈냅스를 놓아 맞대응했다. 슈냅스(schnapps)는 북유럽식 진(gin)이다. 자국산 증류주 자랑으로 흘러간 바람에 ‘위스키 전쟁’으로 불린 이 분쟁은 2022년 섬의 중앙에 국경선을 긋는 것으로 흐뭇하게 종결됐다. 무승부를 통해 모두 승자가 된 셈이다.
위스키는 전쟁통에 부침을 겪었다. 버번(bourbon) 위스키는 미국의 대표 수출품이다. 그 이름은 영국을 견제하려 미국 독립 전쟁을 지원한 프랑스 부르봉(Bourbon) 왕조에 연원을 둔다. 프랑스 도움으로 영국군을 물리친 켄터키, 테네시에 버번이라는 지명이 남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옥수수가 버번의 재료가 된다. 아일랜드 위스키가 스코틀랜드에 뒤처지는 계기도 전쟁이다. 아일랜드가 반영 감정 탓에 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에 불참했고, 유럽에 주둔한 미군 PX에는 스코틀랜드산 위스키만 보급됐다. 미군이 보리로만 만든 몰트 위스키에 반해 귀국한 뒤에도 즐기면서 ‘스카치’의 입지가 굳어졌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버번과 몰트 위스키를 서로 가장 많이 수입·수출하고 있다.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는 위스키가 최전선에 섰다. 인도는 불공정 무역 국가로 지목되자 지난달 정상회담 하루 전 버번 관세를 150%에서 100%로 전격 인하하며 바싹 엎드렸다. 반면 철강과 알루미늄 고율 관세에 반발한 캐나다와 EU는 버번에 각각 25%, 50% 보복관세로 반격했다. 버번이 타깃이 되는 이유는 옥수수와 위스키 생산지인 남부 켄터키, 테네시가 공화당의 아성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지지 기반, 즉 아픈 손가락을 공격하는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 때문인데, 캐나다와 EU의 반격 이후 미국이 유예를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버번 보복관세는 아직은 협상 카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미국은 ‘더티 15’, 소위 ‘지저분한 15개 나라’를 콕 집어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면서 긴장 강도를 높이고 있다. 위스키 전쟁은 시계제로다. 상대의 취약점을 공격하는 무역 전쟁의 특성상 전면에 서게 된 버번 위스키. 그 향방을 보면 미국발 통상 전쟁의 한 단면이 읽힌다. 관세냐, 건배냐! 모두가 패자가 되느냐, 모두가 승자가 되느냐의 갈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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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트럼프의 디지털자산 전략과 한국의 기회
미국이 디지털자산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배치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 아래, 비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국가 부채 해결과 글로벌 금융 패권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 이는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 미국의 경제 주권을 재정의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근본 목적은 천문학적 국가 부채 해결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창의적인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첫째, 비트코인의 전략적 비축이다. 미국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 정책 차르 데이비드 색스는 “국가 차원의 비트코인 보유 계획이 디지털자산 정책 중 최우선 과제”라고 선언했다. 백악관 디지털자산 실무그룹은 미국의 금 보유량을 현재 시세로 재평가해 확보한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대량 매입할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둘째,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미국 국채 수요 확대 전략이다. 미국 공화당 빌 헤거티 상원의원이 발의한 ‘스테이블 코인 법안’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보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테더와 같은 주요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이미 상당량의 미 국채를 보유 중이다.
중국이 미중 갈등으로 미 국채를 대거 매도하는 상황에서,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제2의 큰손’으로 국채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며,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향후 수조 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흡수할 잠재력을 가진다.
한때 세계 디지털자산 시장의 중심 국가로서 암호화폐 거래량 세계 1위를 기록했던 한국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격상시키고, 일본이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 코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동안, 우리는 규제에 막혀 정체되고 있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는 한국형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의 최적지다. 대한민국 제2 도시로서, 세계적인 항만과 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미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어 다양한 블록체인 서비스를 실험할 수 있는 법적 기반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미국의 비트코인 비축 전략이나 중국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중심 전략과는 다른 ‘제3의 길’을 걸어야 한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통화체계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CBDC를 적극 추진하며,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기존 금융 패권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려 한다.
한국은 실사용 중심의 블록체인 도시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를 중심으로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블록체인 기반 ‘동백전’을 도시 페이먼트 시스템으로 재설계한다. 지역화폐인 동백전을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하여 시민들의 일상 경제활동이 투명하게 기록되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는 이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며, 유동성 공급과 안정적인 가치 보장을 담당한다. 둘째, 블록체인 기반 시민 커뮤니티와 투표 시스템을 구축한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로 시민들의 의견이 왜곡 없이 도시 정책에 반영되는 참여 민주주의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시민들이 도시 예산 집행과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셋째, 첨단 보안 기술을 활용한 프라이버시 보호 시스템을 구축한다. 의료기록은 보험사, 환자, 병원 등 이해관계자에 따라 접근 권한을 차등화하고, 행정문서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영지식 증명 기술은 원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도 정보의 진위만 검증할 수 있어,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부산이 블록체인 도시로 진화한다면, 시민들의 일상에서 생성되는 실증 데이터는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대규모 블록체인 실증 사례는 기술의 성능과 확장성, 보안성을 검증하고 개선하는 데 필수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도시 운영 과정에서 쌓이는 노하우는 블록체인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솔루션으로 발전한다.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과는 다른, 실생활에 블록체인을 접목한 도시 모델을 통해 디지털자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디지털자산을 국가 전략으로 활용하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디지털자산은 단순한 투기 수단이 아닌, 국가 경쟁력과 금융 주권이 걸린 전략적 영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암호화폐를 통해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금, 우리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전략을 세워야 한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를 중심으로 과감한 디지털자산 진흥 정책을 펼칠 때, 한국만의 제3의 길이 열릴 것이다. 미래를 위한 선택, 그 중심에 부산 블록체인 특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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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조용히 조금씩 회복되는 세계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지만 적막과 고요로 가득 차 있는 숲속은 어딘지 오묘하다.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는 세계. 눈에 보이는 건 동물뿐이다. 개들이 강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들을 서로 먹겠다며 으르렁거린다. 그때 근처에서 상황을 몰래 보고 있던 검은 고양이가 땅에 떨어진 물고기를 낚아채 달아난다. 눈앞에서 먹이를 빼앗긴 개들은 고양이를 뒤쫓기 시작한다. 한바탕 추격전이 벌어질 찰나 숲이 요동친다.
모든 것이 쓸려가고 난 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재난이 어느 날 우리 앞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라트비아에서 온 영화 ‘플로우’는 대홍수가 세상을 덮친 이후 살아남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호기심은 많지만 매사 경계하는 검은 고양이,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는 골든 리트리버,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행복해하는 여우원숭이, 모든 일에 관심 없는 듯 보이는 카피바라, 무리에서 쫓겨난 뱀잡이수리까지 대홍수가 아니었다면 접점이 없었을 인연이 모인다.
동물들의 대홍수 생존기 '플로우'
인간의 '말' 없을 뿐 소통은 충분
'흐름'에 몸 맡기고 즐기기만 하면
이미 한 차례 모든 것이 쓸려간 듯한 숲에 다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고양이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높은 곳을 찾아 헤맨다. 고양이가 보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지만 물은 코끝까지 차오르고, 발을 버둥거려 보지만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을 뿐이다. 그때 낡은 배 한 척이 고양이 앞으로 다가온다. 겨우 배에 몸을 실은 고양이는 한숨 돌리지도 못한 채 항해를 시작한다. 얼마 후 비슷한 사정으로 배에 탑승하는 동물들과 만나고 그들 나름 경계하고 날을 세우지만 생사가 걸린 여정 앞에서 서로를 구해주고 또 어느 때는 작은 위로를 보낸다.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든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땅에서는 끝없이 물이 차오를 때 어디선가 나타난 낡은 배는 노아의 방주와 닮아있다. 하지만 이 배가 나타난 이유를 지구 온난화나 종교적인 이유로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물로 가득 찬 세계에 떠 있는 배 한 척과 거기 타고 있는 동물들의 이미지에는 보다 깊은 고민과 은유가 담겨 있을 뿐이다. 더불어 재난을 그리는 영화라고 해서 파괴만을 다루지 않는다. 무너지고 사라진 자리에서 조용히 조금씩 회복되는 자연의 모습도 담겨져 있다.
또한 ‘플로우’는 대사가 없는 영화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교감(말)한다. 동물이 하는 대사를 인간이 알아듣지 못할 뿐이다. 인간의 말을 하는 동물들에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 영화가 시작하고 동물들이 ‘말’을 하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생각임을 깨닫게 만든다. 동물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동물들의 몸짓이나 표정을 통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동물들의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들 또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만난 동물들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은 행동과 표정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한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동물이 동물답게 행동할 수 있는 연출에 공을 들였다. 이를 위해 동물들의 이야기를 공부하고, 동물들의 실제 소리를 녹음했다고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플로우’는 낯선 감각을 일깨울지 모른다.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다. 설명하지 않지만 이해 가능하고, 은유와 비유로 채워졌으나 어렵지 않다. 의미를 찾지 않고 그저 영화의 흐름(flow)에 몸을 맡긴다면 영화가 주는 낯선 감각이 무척 즐거울 것이다. 더불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3D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블렌더’를 사용해 만든 영화는 CG가 화려하진 않지만 사실적이다. 특히 동물들의 움직임은 사랑스럽고 자연 풍경은 신비로워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