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세대 테일러로 불리며 반세기 동안 매년 취약계층과 장애인에게 후원과 기부를 해 온 부산 부산진구 ‘당코리테일러’ 이영재 회장이 국민포장을 받았다.
이 회장은 지난 6일 서울 KBS 아트홀에서 열린 ‘제14회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시상식에서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이번 행사는 보건복지부·KBS·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 주최하며, 일상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들을 발굴해 포상하는 자리다.
보건복지부는 “이 회장이 50년 넘게 꾸준히 봉사와 기부를 실천하며 나눔문화를 확산시킨 공로가 크다”고 밝혔다.
이영재 회장은 평생을 ‘남의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단순한 재단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에게 옷은 생업이자, 사람을 잇는 사랑의 수단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등 사회복지단체를 후원했다. 지난 9월에는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에 AI 교육용 컴퓨터 10대를 기증했고, 지난 3월에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에 1억 원을 기부,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381호 회원이 됐다.
“남의 옷을 만들어주면서 정작 자신은 벗고 있는 바늘처럼, 이제 나보다 남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제 옷보다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수상 소감이다.
이 회장의 삶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는 중증 호흡장애를 가진 고도 장애인으로, 세 차례의 대수술과 만성질환, 통증 속에서도 일과 나눔을 멈추지 않았다.
22살의 나이에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고향 김해를 떠나 부산 광복동의 양복점으로 들어갔다. 낮에는 재단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수면 대신 바느질 연습을 반복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양복점에서, 그는 온몸으로 테일러의 길을 배웠다. 하지만 혹독한 수련 끝에 얻은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건강 악화로 세 번의 폐 수술을 받으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기적처럼 살아난 그는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살겠다”며 봉사와 나눔의 길을 택했다. 이후 청년회의소(JCI), 라이온스클럽, 로타리클럽 등에 가입해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를 50년째 이어오고 있다.
1969년, 이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건 양복점 ‘당코리 테일러’를 창업했다.
‘당코리’는 ‘단골이’의 변형으로, 오랜 인연과 신뢰를 상징한다.
그는 단순히 옷을 만드는 기술자에 머물지 않았다. 사람의 체형, 습관, 마음까지 읽어내는 ‘인체 맞춤 미학’을 추구했다.
그는 “좋은 옷은 몸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신사복 미학’, ‘옷은 사람이다’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과 방송국, 언론사 등에서 의복 예절과 착장 에티켓을 주제로 강연과 칼럼을 이어왔다.
그는 “외면의 품격이 내면의 태도를 완성한다”며 “청년들에게 옷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의 공로는 이미 여러 차례 인정받았다.
2008년 부산시 모범선행상과 부산시장 표창, 2018년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애향 본상, 2019년 부산시 백년장인 브랜드 ‘백년이어가(家)’ 선정, 2015년에는 부경대학교 디자인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부경대는 당시 학위 수여 이유에 대해 “국내 남성복 산업의 산증인으로서, 디자인·재단·봉제·가공·착장 의전 등 전 분야에서 기술 발전과 후학 양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부산양복협회와 디자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국제기능올림픽(양복 부문) 출제위원, 2002 부산아시안게임 유니폼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패션쇼에 참여하며 부산의 영화도시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일조했다.
반세기 동안 재단 가위를 쥔 손으로 그는 옷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듬었다.
그에게 인생은 여전히 ‘수선 중’이다.
“최고의 명품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달리다 병을 얻었지만, 다시 생명을 얻어 감사할 뿐입니다. 남은 인생은 어려운 이웃과 장애인,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베풀며 살겠습니다.”
이영재 회장은 오늘도 부산의 작은 양복점에서 손끝으로 세상을 꿰매고 있다.
그의 삶은 옷 한 벌보다 따뜻한, ‘사람의 온도’로 완성된 예술이다.
강성할 미디어사업국 부국장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