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 경쟁에 국내 제약사들도 뛰어들고 있다. 임상 성과 확보와 안전 관리, 두 개의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할 상황이다. 연합뉴스·클립아트코리아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위고비’. 연합뉴스·클립아트코리아
국내 제약사들이 100조 원 규모로 커지는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을 놓고 파이프라인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미약품이 근육 보존형 비만 신약 후보물질을 최대 23억 달러에 기술 수출하는 사이 대웅제약·JW중외제약·종근당 등도 다중작용·장기지속형·경구제로 개발 방향을 잡고 추격에 나섰다. 다만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이미 국내 시장을 양분한 데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달 중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오남용우려의약품 지정을 추진하고 있어, 국내 제약사들이 임상 성과 확보와 안전 관리 등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텍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비만치료제 개발 이력을 보유한 곳으로 꼽힌다. 자체 개발 계획인 HOP 프로젝트 아래 네 개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굴리는 다각화 전략이 강점이다. 이 가운데 HM17321은 인크레틴 계열이 아닌 UCN2(Urocortin-2) 유사체로, 체중 감량과 근육 보존을 동시에 구현하는 계열 내 최초 신약을 목표로 개발돼 왔다. 지난달 24일에는 로슈 그룹 자회사 제넨텍에 독점 라이선스 계약으로 이전됐다.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 1억 9000만 달러(약 2629억 원)에 향후 임상·허가·상업화 마일스톤을 더한 총 계약 규모는 최대 23억 달러(약 3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삼중작용제 HM15275는 GLP-1과 GIP, 글루카곤을 동시에 표적해 낮은 제지방 감소 대비 높은 체중 감소율을 노리는 후보물질로, 임상 1상 단회, 다회 투여 연구를 마치고 현재 미국에서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자체 기술로 개발한 GLP-1 계열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심혈관과 신장 질환 보호 효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상 3상을 마치고 연내 국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미국 관계사 메타비아를 통해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DA-1726을 개발하고 있다. GLP-1과 글루카곤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하는 옥신토모듈린 유사체 계열의 이중작용제다. 국내 자체 개발보다 미국 현지 관계사를 거점으로 삼아 글로벌 임상에 유리한 구조를 짰다는 점이 다른 국내 기업과 다른 대목이다. 지난 5월 유럽간학회에서 발표한 임상 1상 추가 데이터에서는 48mg 고용량 투여군이 8주 차에 평균 9.1%의 체중 감소를 보인 점이 눈에 띈다. 지방간 지표도 함께 개선돼 비만을 넘어 MASH 영역으로 개발을 확장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유한양행은 뇌의 식욕 억제 중추에 작용하는 GDF15 수용체를 표적하는 자체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동시에 외부 투자로 다중 타깃과 장기지속형 제형을 확보하고 있다. 프로젠과 300억 원 규모 투자계약을 맺어 GLP-1과 GLP-2를 동시에 발현하는 이중작용 후보물질 PG-102에 대한 우선권을 확보했다. 인벤티지랩과는 장기지속형 주사 제형 비만·당뇨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웅제약은 주사제가 아닌 알약을 겨냥했다. GLP-1과 GIP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저분자 경구용 이중작용제 후보물질을 발굴해 국내 특허 출원을 마쳤고, 저분자라 고분자 의약품보다 생산이 쉽고 비용이 낮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JW중외제약은 대사질환 포트폴리오의 퍼즐로 비만 분야에 뛰어들었다. 지난 4월 8일 중국 제약사 간앤리 파마슈티컬스와 GLP-1 성분 ‘보팡글루타이드’의 국내 독점 개발과 상업화 권리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계약금과 단계별 마일스톤을 합쳐 총 8110만 달러(약 1200억 원)이다. 2주 1회 투여하는 피하주사 제형을 택한 점이 특징이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경구제 대비 투여 편의성을 앞세우면서 기존 제형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프로젠은 자체 개발한 융합단백질 플랫폼 NTIG를 활용해 GLP-1과 GLP-2 이중작용 후보물질 PG-102를 개발하고 있다. 2024년 12월부터 국내 14개 병원에서 비만 환자와 제2형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앞선 임상 1상에서는 주 1회 총 5회 투약한 비만 환자에서 최대 10.7%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내장지방을 우선 줄이면서 근육량은 보존하는 체성분 선택적 감량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종근당은 자회사 아첼라를 통해 경구용 GLP-1 수용체 작용제 CKD-514를 개발 중이다. 경구용 GLP-1 제제의 고질적 약점인 낮은 생체이용률(통상 1% 미만) 문제를 용해도 개선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동물실험에서 일라이 릴리의 경구용 비만약 파운다요(성분명 오르포글리프론)보다 적은 용량으로 더 큰 체중 감소 효과(23%대 16%)와 혈당 강하 효과(63%대 54%)를 보였다. CKD-514는 앞으로 임상 1·2·3상을 거쳐야 하고, 출시까지 최소 3~5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자체 신약이 나오기 전까지는 위고비 공동판매로 비만 치료제 영업 기반을 다지는 전략이다.
케어젠은 비만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하는 이색 사례다. 코글루타니드는 일곱 개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펩타이드계 GLP-1 작용제이자 IGF-1R 작용제로, 전문의약품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하루 한 번 캡슐이나 포 형태로 복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국내 비만약 시장은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의 유통 경쟁이 치열하다. 노보 노디스크는 마운자로의 공세에 맞서 지난해 9월 종근당과 위고비 공동판매 계약을 맺고 국내 병·의원 영업을 함께 진행 중이다. 반면 마운자로는 한국릴리 단독 판매 체제다. 아이큐비아 기준 지난 6월 처방 건수는 마운자로가 33만 5306건으로, 위고비(6만 5410건)의 5.1배에 달했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오남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식약처는 지난 7월 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다이어트 약’으로 잘못 인식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써야 하는 전문의약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성장이 끝나지 않은 청소년은 특히 주의가 필요하고, 온라인 해외직구나 개인 간 거래로 구매한 제품은 위조·불량 의약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내놨다. 여기에 더해 식약처는 이달 중 삭센다와 위고비, 마운자로를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하는 고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제약사들의 이번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후속 파이프라인의 임상 성공과 안전성 데이터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중작용, 장기지속형, 경구용이라는 세 가지 기술 축을 둘러싼 경쟁이 앞으로 몇 년간 비만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