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포커스온] 극장으로의 귀환

입력 : 2026-09-17 18: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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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관객 수 1100만 명 육박
‘대형 스크린서 만족도 높아’ 입소문

원형적 서사 아날로그 촬영 공감
영화와 원전 비교 인문학적 관심

숏폼 콘텐츠 확산·플랫폼 다변화
‘극장 관람’ 명분 있어야 관객 붙잡아

올 하반기 극장가 흥행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5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 수는 17일 기준 1092만 명을 기록하며 11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놀런 감독은 2014년 블랙홀 열풍을 일으킨 SF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어 한국에서 ‘쌍천만’ 감독으로 등극했다.

‘오디세이’가 국내에서 흥행한 이유로는 놀런 감독이라는 브랜드, 아이맥스 촬영, 고전의 재발견이라는 화제성이 꼽힌다. ‘인셉션’ ‘인터스텔라’ ‘오펜하이머’ 등을 통해 놀런 감독은 국내 관객에게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오디세이’는 아이맥스 전용 카메라로 영화 전체를 촬영한 첫 영화다. 아이맥스는 일반 영화관보다 훨씬 큰 화면과 높은 해상도, 특화된 음향 시스템을 통해 관객이 영화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거대한 자연과 전투, 신화적 세계를 압도적인 화면과 사운드로 구현하면서 대형 스크린에서 볼수록 만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퍼졌다.

특히 부산 CGV 센텀시티 아이맥스관,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 등 특별관을 중심으로 예매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영화 관람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됐다. 아이맥스 티케팅 전쟁조차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는 2030세대의 분위기도 흥행에 한몫했다. 여기에 일반 상영관 관람 후 아이맥스관을 다시 찾아 관람 경험을 비교하는 ‘N차 관람’ 열기는 ‘오디세이’가 낳은 진풍경이다.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분도 돋보였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원작에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의 면모가 부각됐던 오디세우스가 영화에서는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문명의 몰락을 초래한 인물이자 전쟁으로 고통받는 인간으로 그려졌다. 놀런은 원작을 과감하게 비틀어, 동시대 문제 의식을 담아냈다. 영웅의 모험담이 아닌 전쟁의 상처와 문명 붕괴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 집중한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 속 인종 대립이나 전쟁의 야만적 행태에 대한 해석을 통해 현재 벌어지는 이란-이스라엘 전쟁과 이민자들에 대한 폭압 등 시대적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영화와 원전을 비교해 보려는 관객의 ‘지적 호기심’과 인문학적 관심은 스크린셀러 열풍으로 이어졌다. ‘오디세이’ 관련 완역본, 해설서, 입문서, 만화책 판매량이 급증한 것이다. 영화에서 시작된 관심이 관람을 넘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문화적 행위로 이어진 셈이다.

극장가는 최근 수년간 침체를 겪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억 2668만 명이던 연간 극장 관람객 수는 2020~2021년 연간 6000만 명 내외로 줄었다. 이후 2023년 1억 2514만 명까지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1억 609만 명으로 감소했다. 숏폼 콘텐츠가 보편화하고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관객의 소비 패턴이 달라지면서 영화가 극장에 가야 할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야 관객이 시간과 돈이라는 적잖은 비용을 들이는 시대가 됐다.

놀런 감독이 컴퓨터그래픽 사용을 최소화하고 아날로그적인 촬영 기법을 고수한 필름 신봉자라는 점은 인공지능(AI)과 컴퓨터그래픽(CG) 만능 시대에 지친 관객들에게 ‘디지털 디톡스 효과’를 줬다. 인류의 원형적 서사를 아날로그적인 기술의 영화로 본다는 것이 향수를 일으켰다. 시각적 효과와 현장감 등 극장에서만 온전히 체감할 수 있는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올 3월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수 1692만 명을 기록했고, ‘오디세이아’가 천만 영화로 등극하면서 극장가가 지난해의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신호다. 다만 기록적인 흥행작이 나오는 것과 영화 시장 전반에서 다양한 작품이 고르게 관객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단순히 거장 감독의 이름값, 화려한 출연진, 막대한 제작비만으로는 관객을 붙잡긴 어렵다. 반드시 극장에서 관람해야 한다는 확실한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플랫폼 다변화 시대에 극장 영화가 살아남을 핵심경쟁력이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들이 진검승부를 펼친다. 한국판 영화 ‘인턴’이 16일 개봉했고, 23일엔 시대극 ‘암살자(들)’과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선보인다.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23일부터 2주간 극장 개봉한다. 올여름 대형 외화에 집중됐던 관객의 선택이 한국 영화로 반드시 이어져 극장가의 회복세가 지속하기를 바란다. 10월 6~15일 열리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도 관객들의 극장 귀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