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을 보냈던 시간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게 느껴지는 선선한 계절이다. 역시 가을이 되니 공기가 마냥 청량하기만 하다. 땀 흘리며 살갗을 찌르는 뜨거운 태양 빛을 식히느라 서둘러 에어컨이 돌아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마음과 걸음걸이가 엊그제처럼 아득하다. 계절이 순환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를 리 없는 우리지만, 때로는 추위나 더위가 한정 없이 지속될 것처럼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지난 사건과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생겨나는 ‘사후적인’ 느낌과 겹치면서,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시간과 사건을 은근히 염려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흐르기도 한다는 점을 넌지시 던진다. 그러니까 하루하루 순간을 집중해서 살아가는 일과, 이미 지난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후회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얼마나 정신적인 성숙에 큰 차이를 주는지 생각한다.
그럴듯한 해설 난무하는 강연 범람
진정한 마음의 양식·가르침 구해야
삶의 본질 깨닫고 정신적 성장 이뤄
최근 몇 달 동안 하루 서너 시간 정도를 할애해서 듣는 유튜브가 있다. 고전 강좌다. ‘고전 강좌’란 말은 질릴 정도로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동서양의 고전을 강의하는 매체나 공간은 허다하다. 하다못해 동네 주민센터나 복지관 같은 데만 가더라도 고전 커리큘럼이 게시판에 내걸려 있을 정도로 우리와 ‘고전’은 밀접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진다. 고전을 읽는 일은 익히 아는 것처럼 우리에게 마음의 양식을 주고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오래전부터 고전을 강요하고, 읽고, 인용하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고통과 폭력과 상처로 얼룩져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거짓과 속임수, 힘 있고 가진 자들의 횡포와 농락, ‘진보’나 ‘보수’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소수 의견에 대한 무시와 배제, 그리고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나머지 인문학에 무지하거나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스타 저자나 강사의 번지르르한 말만을 숭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전’은 범람하지만 정작 그 가르침은 망각되고 마는 현실이다.
최근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로부터 본격적으로 뻗쳐 나왔던 서양철학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리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 여기에 사랑과 자비를 구현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기독교 및 불교 사상의 정수 등을 담은 고전의 말씀을 차례차례로 일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문학을 전공하고 비평 활동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틈틈이 읽었던 다양한 장르의 독서 편력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AI(인공지능)처럼,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지적·문화적 트렌드를 나타내는 개념이나 키워드와 관련한 책 읽기는 한시적으로만 유용할 뿐 시간이 지나면 증발하는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마는 경향이 잦다. 전공 분야인 문학, 미학, 예술 방면은 글쓰기와 관계없이 꾸준하게 읽고 있는 편이지만, 정작 고전으로 분류되는 분야의 탐색은 게을렀던 게 사실이었다.
하는 일이 늘 책과 가까이하는 업이지만, 어느 순간 지금까지 읽고 궁리했던 사유를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어딘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범주와 영역을 발견한 차 다양한 철학과 종교 관련 유튜브를 일별하다 지금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고전 강좌를 찾은 것이다. 알고 보니 십수 년 전 띄엄띄엄 들었던 강좌였다. 그때는 강좌 대표의 남다른 ‘아우라’와 어떤 ‘자명한’ 식견을 몰라보고 내용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금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강좌를 반가운 마음으로 구독하면서 일과 중 점심시간과 자기 전의 시간대를 할애하는 중이다. 동서양 철학과 경전을 일이관지로 꿰뚫는 강사의 지식과 혜안은 둘째로 치고, 고전을 단지 지식을 흡수해서 실천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와 목적을 경전과 철학에 등장하는 수많은 성인·성자들의 말씀으로 뒷받침하는 구성으로 강의 주제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에 빠지다 보면 얼핏 얼핏 ‘나’를 다시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곤 한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한국에서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1세대 강사뿐만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와 철학 관련 고전 강좌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자명한 인식과 지혜를 솟구치게 하는 매체를 만나게 되어 한없이 기쁜 날이다. 4대 성인이라 일컫는 석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숱한 성자들이 강조했던 말씀의 내용과 원리가 어디에서 하나가 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강사의 수련 체험과 개념의 일치를 통한 자명한 논리로 받아들이는 속에 내 정신의 양분도 새록새록 채워짐을 느낀다. 2000년이 넘는 세월에서 살아남은 말씀, 즉 고전이 고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함께 이 계절을 책을 넘기며 숙고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이런 속에 참다운 나를 더욱 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