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유학생

입력 : 2026-09-20 18: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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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대학에는 외국인 유학생이 해마다 늘고 있다. 내가 속한 한국어문학과 학부와 대학원 모두에서 유학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내 수업에서 그들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쓰는 수업이라, 한국 학생들에게도 쉽지 않은 까닭이다. 지난 학기, 처음으로 세 명의 석사과정 유학생이 수강 신청을 했다. 그 가운데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비나’라는 학생이 있었다.

직장인 학생들이 있어 수업은 초저녁에 시작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수업은 학생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관련 도서를 읽어 집필 계획을 발표한 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박사과정 학생이 많아 수업의 수위도 만만치 않았다. 유학생들이 끝까지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그 우려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간고사 무렵이 되자, 오히려 내가 놀라기 시작했다.

한국어문학 석사 과정 유학생

언어 서툴러도 깊은 사유 돋보여

책은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 매개

청춘의 독서 다시 배울 수 있어

저녁 일곱 시, 수업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학생들이 제출한 계획서를 하나씩 넘기다 사비나의 것에서 손이 멈췄다. 잭 런던의 〈마틴 에덴〉,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 젊은 날, 밤을 지새우며 탐독했던 작가와 작품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발표 주제는 ‘사랑은 성장인가, 파멸인가’와 ‘성공이라는 이름의 속박’이었다. 제목만으로도 그가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수업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으나, 피로 대신 반가움이 먼저 밀려왔다. 밤공기를 맞으며 귀가하는 길, 가슴속에서 오래된 문장들이 다정하게 불을 밝혔다. 사람은 같은 노래, 같은 영화를 사랑한 이에게 쉽게 마음을 연다. 책도 마찬가지다. 같은 문장을 오래 붙들고 같은 인물을 깊이 생각했던 사람은 처음 만나도 낯설지 않다. 나는 이것을 ‘책연(冊緣)’이라 부른다. 같은 책을 사랑했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럼없이 이어지는 인연이다. 사비나의 한국어는 유창하지 않았지만, 문장은 우아했다. 생각을 서두르지 않고 단어 하나를 오래 고르는 사람의 문장이었다. 드라이저의 작품은 영어 원서로 읽었다고 했다. 일본어와 중국어도 공부 중이며, 학기 중에는 통역 일을 맡게 되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수줍음 많고 신중한 사비나는 좀처럼 먼저 말을 건네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가 수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복도에서, 내 책을 찾아 읽었다며 수줍게 한마디를 건넸다. “교수님, 책이 참 좋았습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오래 잔상을 남겼다. 사비나가 들고 온 책에서 내 청춘의 감동을 되찾았듯, 그 역시 내 문장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가르치는 사람은 나이고, 배우는 사람은 학생이라는 구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비나가 건넨 목록과 나지막한 고백은 그 익숙한 구도를 흔들었다. 독서의 기쁨이 되살아났고, 사비나를 거쳐 온 오래된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책은 늘 국경을 가볍게 넘어왔다. 잭 런던, 피츠제럴드, 시어도어 드라이저, 에밀 졸라 등 서로 다른 언어로 남긴 문장들이 한국의 교수와 우즈베키스탄의 학생을 한 강의실에서 만나게 했다.

학기가 끝난 뒤 나는 우즈베키스탄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사비나의 나라가 품고 있을 낯선 지명과 오래된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그가 건넨 목록을 처음 읽던 밤의 설렘이 되살아났다. 〈마틴 에덴〉도 다시 펼쳐 들었다. 오래전 그 책을 읽으며 사랑과 성공을 생각했던 청춘의 시간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한국어로 문학과 글쓰기를 배웠고, 나는 그에게 청춘의 독서를 다시 배웠다. 지난 학기,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책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비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