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은 에어 컨디셔너(Air Conditioner)의 줄임말이다. 이름만 보면, 에어컨은 찬바람이 아닌 쾌적한 공기를 만드는 기계다. 1902년 미국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는 인쇄소의 습도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고심 끝에 수증기를 이슬로 바꾸는 기계를 만들었다. 이슬이 만들어지는 만큼, 공기 중의 습도는 낮아졌다. 공기가 차가워지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였다.
캐리어의 발명품 덕분에 인쇄소는 습기로 종이가 변형되거나 잉크가 번지는 문제를 해결했다. 습도와 온도가 통제되자 제약사나 방직 공장 등의 불량률이 떨어졌다. 백화점, 극장 등에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더위를 날리는 기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살린 생명은 셀 수가 없다. 가정용 에어컨이 널리 보급된 1960년대를 기점으로 폭염 사망률이 80% 이상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습도와 온도가 통제된 수술실에선 박테리아 증식과 2차 감염률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신생아 생존율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습하고 더운 환경에선 버티지 못했을 아기들도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매년 여름이면 “캐리어는 노벨 의학상을 받았어야 했다”는 오래된 농담이 나온다.
정작 에어컨은 지구를 덥게 한다. 선풍기에 비해 약 20~30배 많은 전력을 써, 상당한 탄소 배출을 유발할 수 있다. 에어컨 속 냉매가스도 문제다. 이산화탄소보다 수백 배 이상의 온실효과가 있어, 조금만 누출되어도 문제가 된다. 냉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숨은 주범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17일 프랑스에선 55만 명이 참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한 달 전 시작된 학생 시위가 커져 버린 것이다. 지난여름 기록적인 폭염 속 에어컨 없는 교실에서 더는 못 버티겠다며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한 학생들의 단체 행동이 시작이었다. 따지고 보면 프랑스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지구온난화가 촉발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유럽 안에서도 유독 에어컨 보급률이 낮다.
지구가 너무 더워졌다. 유럽이든 우리나라든, 에어컨 없이 여름을 버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전력 소모가 심하니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자”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차라리 탄소 배출이 없는 발전을 늘리고, 냉매 수거율을 올리거나 친환경 냉매를 확산하는 등의 대안으로 온난화 걱정 없이 마음껏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현명해 보인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