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부산항 개항 150년의 올바른 마무리

입력 : 2026-10-20 18: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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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개항 이후 관세 문제로 일본에 홍역
올해 수출로 일본 넘어서 감개 무량
그동안의 성취·정신 정리 필요한 때

동북아시아에서 근대는 대체로 개항을 전후한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견해에 큰 이견은 없는 것 같다. 19세기 중반 중국이 먼저 영국에 의해 문을 열었고, 일본은 미국의 압박을 받고 개항을 하였다. 한국만은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 의해 개항이 되었지만 동북아시아 3국 모두 외부의 힘에 의해 문을 연 것은 동일하였다.

동북아시아 3국의 조약문들도 놀랄 만큼 유사하였다. 조약문 안에는 관세 자주권의 제약과 같은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3국 모두 그 조약이 불평등하다는 인식을 당시에는 별로 갖고 있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적 질서의 냉엄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조약의 불평등성은 곧 드러났다. 특히 조선은 일본과의 교섭에서 관세 얘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기 때문에 무역 상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 없었다. 관세 자주권의 심각한 침해는 근대화를 위한 재정 확보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뒤늦게 무관세 무역의 부당성과 관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부산의 두모진 변찰소 내에 해관을 설치하여 수세하도록 하였다.

조약에 따라 일본 상인에게는 관세를 부과할 수 없었기에 조선 상인을 대상으로 1878년 9월 28일부터 각 화물에 세액을 정하여 수세하도록 하였다. 세금 이야기에서 자주 나오는 것이지만, 세금은 공급자에게 부과하든 수요자에게 부과하든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수요와 공급의 작용을 거쳐 조세의 전가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두모진에서의 해관세 수세가 시작되면서 무역 거래 물품의 가격은 순식간에 급등하였다. 결국 함포를 동원한 일본의 무력 시위에 조선이 굴복하면서 세금 부과를 정지하고 해관을 닫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우리나라 무역사에서의 큰 치욕이었다.

한국정부가 수립되고 경제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면서 수출은 국가경제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이 되었다. 1964년 11월 30일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것을 기리어 수출의 날을 정한 것이 그 예이다. 그 해 부산의 수출액은 한국 수출의 15.2%에 달했다. 1990년부터는 이름을 무역의 날로 바꾸었다. 이후 2011년 12월 5일,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하자 2012년부터는 12월 5일로 변경하였다.

그러던 한국의 수출이 마침 개항 150년이 되는 올해 상반기에 처음으로 일본의 수출액을 넘어섰다. 상반기 수출액에서 한국은 4963억 달러, 일본은 3844억 달러로 한국이 무려 1100억 달러 이상 많았다. 1878년 관세 부과만으로도 곤욕을 치러야 했던 한국이 개항 150년 만에 무역으로 일본을 앞선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4번째로 월 수출 1000억 달러를 달성한 국가가 되었다. 미국과 독일 그리고 중국만이 이 기록을 갖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추세라면 연간 기준으로 수출 1조 달러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역시 연간 수출액 1조 달러를 달성한 국가도 미국과 독일, 중국 세 나라뿐이다.

개항 150년을 맞아 부산의 각 학술단체들이 11월 첫 주에 이틀간의 학술대회를 연다. 모두 개항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룬다. 개항이라는 단일한 주제를 가지고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한편 지난달 한국 최초로 설치되었던 두모진 해관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다짐이 있었다. 두모진 해관은 지금의 부산진세무서 앞에 있었다.

이 두모진 해관터에서 관세청이 지난 9월 28일 ‘두모진 해관 기념석 제막식’을 가졌다. 노후화로 훼손된 기존 기념석을 정비하면서 역사적 고증을 거쳐 새로 설치한 것이다. 그러면서 기념석의 문구도 새로 바꾸었다. 기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관 터’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두모진 해관 터: 1878년 관세주권과 경제국경 수호의 숭고한 뜻을 세우다’라는 문구로 바꾸었다. 역사적 의미를 보다 명확히 담은 셈이다.

해양수도를 향한 부산의 그림도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해운회사들도 부산으로 오고 있다. 며칠 전에는 북극항로를 시험항해한 팬스타 아크로호가 무사히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부산시가 마무리해야 할 것이 있다. 개항 150년을 온전히 돌아보면서 그 속에 담겨있는 지난 150년의 부산의 성취와 정신을 정리하여 미래세대에 전해주는 것이다. 한 시기가 마무리 될 때는 언제나 제대로 된 기록을 남겨 후대로 이어지게 하여야 한다. 개항 150년을 특별하게 맞으려는 시민들의 열의를 부산시가 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