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에어부산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동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을 둘러싼 지분 경쟁이 격화하면서 산업은행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호반그룹은 한진칼의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2대 주주에 올라선 뒤 최대 주주 지위를 넘보고 있다. 호반 측이 기업결합을 신고하자 한진 측은 추가 매입 계획으로 맞서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우호 지분이라는 변수 때문에 경영권 향방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산은이 보유한 10.58%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산은은 약속 불이행과 책임 회피 논란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항공산업 재편을 이유로 한진칼에 8000억 원을 투입한 결과가 지역 LCC 공중분해와 대형 국적사 몸집 불리기에 그쳤다는 비판을 되새겨야 한다.
산은은 ‘1국가 1국적사’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2020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필요한 유상증자, 사채 인수에 참여했다. 또 두 항공사의 LCC 계열사 3사를 합쳐 지방에 제2 허브를 구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문제는 서울에 본사를 둔 진에어 중심으로 LCC 통합이 이뤄지면서 에어부산이 사라질 처지라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인기 단거리 노선 확대와 지역 영업·운영 기능 분담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부산 본사와 노선·투자 결정권을 갖춘 실질적인 허브와는 거리가 멀다. 이대로라면 가덕신공항은 거점 항공사도 없이 개장해야 할 판이다. 산은 주도의 항공산업 재편이 수도권 집중을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산은은 국정감사에서 “본사 소재지는 기업 자율”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공분을 샀다.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 업계를 재편해 놓고 가덕신공항의 활성화에 필요한 거점 항공사 존치 요구에는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는 이율배반적이다. 산은은 한진칼 경영권 경쟁 국면에서 정책 금융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특정 대주주에 편파적이거나, 반대로 팔짱을 낀 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공공 재원으로 확보한 지분인 만큼 항공산업의 경쟁력과 지역 균형발전을 함께 뒷받침하는 것이 산은의 책무다. 본사와 경영·노선 기획, 항공기 배치·정비 등 핵심 기능을 부산에 집적하는 방안을 공식 의제로 올려 공개 검증을 주도해야 한다.
통합 LCC 부산 허브는 항공편 몇 편을 더 배정받는 문제가 아니다. 남부권의 항공 수요를 바탕으로 새로운 노선을 개척하고 가덕신공항을 성장시킬 항공산업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본사와 의사결정 기능이 있어야 지역의 관광·물류·기업 수요를 장기적인 투자 전략에 반영할 수 있다. 정부의 항공산업 재편이 수도권 집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산은은 한진칼 지배구조 경쟁 국면에서 통합 LCC 부산 허브 구축에 실질적인 힘을 실어야 한다. 산은이 지켜야 할 원칙은 분명하다. 어느 대주주의 지분이 늘어나는지가 아니라 국민의 돈으로 추진한 항공산업 재편이 국가와 지역에 무엇을 남기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