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주의 AI 톡] 경력 사다리 첫 칸이 사라지면

입력 : 2026-11-03 18: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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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컴퓨터·인공지능공학부 교수
한국정보과학회 데이터소사이어티 회장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 문제는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지난 여름방학부터 4학년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면접이 어땠느냐고 물으면 예년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돌아온다. 신입사원에게 묻는 것인지 경력사원에게 묻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어려운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대규모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수많은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같은 질문, 그리고 IT 기술적인 측면에서 대중 마케팅을 더 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보라는 질문도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실무 경험이 없다면 답하기 어렵다.

최근 알고 지내는 회사의 대표들과 나눈 대화에서 이런 변화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신입 개발자를 더 뽑기보다 기존 직원에게 AI 서비스 구독을 지원하고 할당하는 업무량을 늘리는 편을 택한다는 것이다. 신입이 맡던 자료 조사, 보고서 작성, 단순한 코딩을 경력자가 AI로 처리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과 교육에 드는 비용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첫 일터로 들어가는 문이 좁아지는 일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부산에서는 그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러한 현상은 컴퓨터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수습기관을 찾지 못해 정식 회계사 등록에 필요한 실무경력을 쌓지 못하는 청년들이 사회문제가 됐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5월 수습기관 확대와 수습처 배정 대책까지 마련했다. 회계업계의 불황과 합격자 수급 불균형 등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AI가 장부 대조와 자료 정리 같은 초급 업무를 대신하는 변화 역시 신규 인력 수요를 줄일 수 있다. 법률, 금융, 사무직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으리라는 전망은 오래됐다. 그러나 지금 관찰되는 모습은 기존 직원을 한꺼번에 내보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경력자는 AI를 활용해 더 많은 일을 맡고,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인다. 특히 기존 근로자의 퇴직보다 청년 신규 채용 감소가 두드러졌다. 물론 이를 모두 AI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런데 청년 실업보다 더 멀리 내다봐야 할 문제가 있다. 신입을 뽑지 않으면 초급 경력자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학은 프로그래밍 언어와 회계 원칙, 법률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고객의 모호한 요구를 해석하고, 예기치 못한 오류에 대응하고, 숙련자의 판단을 곁에서 배우는 능력은 실제 업무를 통해 다듬어진다. 개발자가 작은 버그를 잡으며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듯, 회계사도 장부와 증빙을 대조하며 기업의 거래와 위험을 읽는 안목을 쌓는다. 단순하고 사소해 보이던 초급 업무가 사실은 미래 전문가를 만드는 훈련 과정인 것이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기업은 신입 지원자에게 숙련자의 판단력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판단력을 키울 자리는 줄인다.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같은 선택을 하면 10년 뒤 기업의 운영을 책임질 전문가는 어디에서 나올까. 경험을 쌓을 첫 일자리가 사라지는데 ‘경력 있는 신입’만 찾는다면 결국 산업 전체가 인력 양성의 빈틈을 떠안게 된다. 사다리의 첫 칸을 치워 놓고 왜 위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 셈이다.

해법은 ‘AI 퇴출’이 아니다. 기업은 신입사원을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라 미래의 숙련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투자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AI가 생성한 결과를 검증하고, 실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며, 선배들의 경험과 판단을 배우는 방향으로 신입사원의 업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대학 역시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활용하는 학생이 아니라, 그 결과의 타당성을 판단하고 오류를 찾아 설명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 현장실습과 인턴십, 산학연계 교육 등 대학생들이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부산 지역의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기업들이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실습생 지도와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AI 시대의 전문가는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그 결과를 검증하며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을 맡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은 지식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업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따라서 AI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다음 세대의 전문가를 키워 낼 기회마저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진다면, 미래의 숙련된 전문가 또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