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0회 세계해양포럼(WOF)’ 개막식에서 영국 뉴캐슬대 알라스테어 보넷(위) 교수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김지윤 객원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lwj@
‘해양, 잇다’를 주제로 막을 올린 제20회 세계해양포럼(WOF)의 개막 키워드는 ‘위기의 바다를 위한 협력’이었다.
3일 열린 기조세션 발제자들은 해양 패권 다툼이 심화하는 국제 현실 속에서 분절된 일방주의를 극복하고, 다자 규범과 다영역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해양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오후 3시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에서 열린 기조강연에는 영국 뉴캐슬대 알라스테어 보넷 지리학 교수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김지윤 객원교수가 연사로 나서 해양의 지정학적 현실을 짚고 해법을 제시했다.
■“해양은 쟁탈 대상 아닌 공동 유산”
먼저 발제에 나선 보넷 교수는 해수면 상승으로 자연 섬이 침수되는 반면, 개발과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한 인공섬 건립은 늘어나는 역설적 현실을 지적했다. 보넷 교수는 “두바이의 ‘더 월드’나 중국 하이난의 ‘피닉스섬’처럼 부동산 목적의 인공섬 개발이 잇따르고 있으나 미완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크다”며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향후 50~100년 내 해안선이 크게 바뀌고 기존 육지와 섬이 침수되는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기후변화는 물리적 지도뿐만 아니라 해양 지정학의 근간마저 뒤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넷 교수는 “그린란드의 빙하 융해와 뉴질랜드 수중 대륙 ‘질랜디아’의 발견처럼 고정돼 있던 해저 지형과 기반암이 움직이면서 해양 지도 자체가 빠르게 다시 그려지고 있다”며 “문제는 해저 지형에 이름을 붙이고 경계를 긋는 카토그래피(지도학)의 변화가 강대국 간 해저 영유권 분쟁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특히 인공섬 조성을 통한 국가 간 영토 확장 시도가 패권 경쟁을 부추긴다고 짚었다. 보넷 교수는 “1945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륙붕 기준 배타적 경제수역(EEZ) 권리 주장이 확산하면서 북극 등지에서 관할권 중복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며 “향후 새로운 경계 설정과 인공섬 건설을 둘러싼 국경 분쟁 및 강대국의 일방주의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과거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쟁탈전과 같은 해양 분할 경쟁을 멈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넷 교수는 “바다를 특정 국가의 소유가 아닌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바라보던 과거의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며 “영유권 주장에 매몰된 틀을 벗어나 공해 조약을 적극 활용한 해양보호구역 지정 등 환경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새 질서 주도해야”
이어 강연을 진행한 김지윤 교수는 해양이 단순한 해군력 대결의 장을 넘어 안보·산업·기술이 결합된 ‘총체적 네트워크 공간’으로 진화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해군전략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골든 플릿(Golden Fleet)’과 ‘골든돔’ 구상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김 교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발표한 골든 플릿 구상과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는 육상·해양·공중·우주·사이버 5대 영역을 하나의 망으로 엮는 전략”이라며 “덴마크와의 그린란드 기지 확장 협정에 우주 기반 요격체계와 이지스 시스템을 통합한 골든돔 구축 조항을 넣은 것 역시 해저 케이블과 해양 전선이 우주·사이버 안보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해양 제조업’과 ‘조선업 공급망’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최첨단 함정 기술을 보유하고도 건조 속도에서 중국에 밀리자 동맹국과의 조선업 재건 협력을 서두르고 있다”며 “쇄빙선 공동 개발, 마스가 프로젝트, 4자 안보 대화 ‘쿼드(Quad)’의 해양 영역 감시망 공유처럼, 국제 정세가 불안할수록 실질적 니즈에 기반한 산업·안보 다자 블록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해양 네트워크가 고도화될수록 취약성도 커진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처럼 핵심 수송로 하나만 막혀도 글로벌 유가 급등과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이러한 취약성 극복을 위한 대체 경로로 북극항로가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팬스타 아크로호’의 북극항로 시험 운항에 성공하며 항로 개척에 동참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안보와 산업 역량이 해양으로 집중되는 흐름을 짚으며 한국의 선제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사실상 해상로에 생존이 걸린 섬나라와 다름없으며, 기존 자유무역 질서의 단순 수혜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해양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자간 해양 안보·산업 네트워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추후 열릴 북극항로의 국제 규범 수립에서도 명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