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건 결국 이란전이다. 이란을 향한 미사일은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왔다. 석유 공급 부족은 전세계의 물가를 자극했고, 미국민도 디젤가 급등에 시달렸다. 미 상·하의원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참패는 성난 민심을 짐작하게 해준다.
지난해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은 핵 문제를 두고 이란과 대립했기에, 전쟁을 예상한 전문가는 많았다. 다만 전쟁 스케일은 예상을 벗어났다. 2월 시작된 미군의 공습은 전면전 수준에 가까웠고,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국지전이 아니라, 체제 전복을 목표로 한 공습이었다. 트럼프는 자신 있게 이란 정권을 교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이란 국민에게 공습으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죽었으니 들고 일어나 혁명을 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11월 지금 트럼프는 전쟁에서 빠져나올 명분을 찾으며 이란과의 종전 협상을 진행 중이다. 선거에서도 패했다. 이란은 경제적으로 피폐해졌지만, 오히려 체제는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명백하게 트럼프는 오판했다.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특정 국가의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건 과도한 자신감이었다. 올 1월 미국은 군사작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했다. 베네수엘라의 작전 성공이 자신감을 더 키웠을 수도 있다. 국가 수장 체포와 전쟁은 별개지만, 자신감이 붙으면 뭐든 쉬워 보이는 법이다.
이란에 타격을 입히는 것과 체제를 붕괴시키는 건 전혀 다른 레벨의 문제다. 어떤 공동체든 근본적인 변화는 내부에서 촉발되기 마련이다. 외압으로 바뀌어야 한다면, 오히려 반발만 키우는 게 일반적이다. 전쟁 전엔 이란 안에서도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컸고, 반정부 시위도 상당히 거셌다. 막상 미국이 공습을 하자 이란의 내부 결속력은 더 단단해졌고, 죽은 하메네이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트럼프가 되레 이란 반정부 시위를 말살한 셈이다.
전세계 최고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이미 비슷한 헛발질을 여러 번 반복했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베트남전은 미군의 악몽으로 끝났다. 이라크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당장의 전투, 전쟁에선 이겨도 결국 상대를 완전히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비슷한 역사가 반복되는 건 결국 지도부의 자만심으로 설명 가능하다. 막강한 군사력에 취하면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 마련이다. 원래 힘을 오래 지니고 있다 보면, 상대가 약골로 보이는 법이다.
과도한 자신감으로 상대를 얕잡아 보는 건 미국 지도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싸움이 있는 곳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신문 정치면을 읽다 보면, 특정 이슈가 터졌을 때 상대가 끝났다는 확신에 차 맹렬히 공격하는 정치인과 정치 세력을 종종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은 공격을 잘 버텨냈다. 정치 세력과 정치인의 생명은 밟는다고 쉽게 끊기지 않는다. 2023년 이재명 당 대표의 체포결의안이 가결됐지만, 민주당은 오히려 이듬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2024년 12월 계엄 이후 국민의힘은 벼랑 끝에 몰렸지만, 여전히 거대 정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념적 이슈에서도 진영별로 거친 말들이 오가지만,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다. 진보가 아무리 공격해도 국민의 상당한 비중은 보수적 가치를 높게 평가할 것이다. 우파가 아무리 단결한다고 해도 국민의 상당수는 좌파의 가치가 나아갈 길이라고 믿는다.
쓰러뜨릴 수 없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 하면, 남는 건 진흙탕 싸움이다. 궁지로 몰리는데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인질로 잡듯, 공격과 반격 속에 모두가 패자가 되기 십상이다. 쓰러뜨릴 수 없는 상대와는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대화, 협상, 토론 등이 중요하다.
물론 상대가 무너지거나 흡수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동독과 서독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경제적 우월성에 동독은 서서히 흡수돼 동화됐다. 오히려 서독의 예상보다 더 빨리 무너져 문제가 됐다. 현대 사회에서는 힘으로 제압하는 것보다 상대를 자발적으로 변화시키는 게 시간이 걸려도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일상의 공간에서도 비슷한 일들은 자주 목격된다. 회사, 학교 심지어 집에서도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직장동료가 혹은 배우자 등이 만만해 보인다고,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십중팔구 서로 상처만 남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승리의 자신감이 차오른다면, 오늘 트럼프가 어떤 심정일지를 떠올려 보기를 권한다.
김백상 디지털콘텐츠 부장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