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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랭이 배낚시] 짬낚시로 손맛 입맛 보기엔 최고
봄이었다. 바다 건너 제주에서 유채꽃 향기가 솔솔 풍겨 왔다. 그래서 모임 약속을 잡았다. 한 달 전이었다. 그런데 가기 전날 날씨를 보니 2박 3일 여정 동안 하루만 빼놓고 비가 온다고 해서 뭘 할지 막막했다.
같이 가는 사람 중에 열혈, 찌낚시 마니아가 있어 '이번에 낚시 장비 챙겨 갑니까?'하고 여행 가서 뭘 할지 물었는데 대답은 '아니오!'였다.
나머지 일행은 낚시는 하지 못하니 포기했고, 만약 낚시하려면 장비가 또 한 짐이라 이번에는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출발 하루 전 일정을 제안한 카톡이 왔다. '첫날에는 간단하게 배낚시 체험하는 거 어때? 고기 잡으면 숙소에 가져가서 술안주로 하고, 못 잡거나 양이 부족하면 시장에서 회를 더 사면 되고.'
이번에 모이는 일행은 각각 회사는 다르지만 예전에 언론 관련 단체에서 함께 활동한 인연이 있었다. 십수 년 전에도 배낚시 체험을 한 기억이 있는데 그 당시 서너 명은 멀미로 바다에 밑밥만 주고 나왔다.
이번에는 멀미에 취약한 대구 출신 한 사람은 자기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또 하루 일찍 도착한 다른 사람은 열심히 올레길을 걷다가 파크 골프라는 신세계를 체험하는 중이라고 했다. 결국 낚시에 도전하는 조사 3명만 배를 탔다. 초보자도, 어린이도 할 수 있는 체험 배낚시다.
남이 낚은 어랭이에 의욕 충만
배낚시를 체험할 배는 이호테우해수욕장 남쪽의 현사포구에 정박하고 있었다. 이곳에 현사어민회의 체험배낚시 사무실도 시골 버스터미널의 대합실처럼 마련돼 있다. 조랑말 등대로 유명한 이호항도 지척에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호테우해수욕장은 예전에 제주~해남 바다 카약 도전자들을 취재하러 들렀던 기억도 있어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 이곳에서 출항해 해남까지 1박 2일 만에 도착해 미션을 성공했다. 물론 기자는 지원 선박에서 이들을 지켜봤다.
어쨌든 현사포구 배낚시는 시간만 맞으면 수시로 이루어지는데 최소 5명 정도는 되어야 출항하는 모양이었다. 인원이 적으면 안 나갈 수도 있는데 꼭 나가겠다면 1인 요금 2만 원에 웃돈을 더 내야 한다고 안내해 주었다.
마침 우리가 예약한 시간대에 2명의 예약자가 더 있어 5명이 함께 나갈 수 있었다.
우리 팀 3명과 따로 예약한 젊은 커플이 한 배를 타게 됐다. 현사포구에서 이들을 기다리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새 먼저 체험한 다른 일행이 배에서 내렸는데 제법 바구니가 묵직했다. 고기를 담는 바구니는 플라스틱 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것이었다. 잡아 온 물고기들을 보니 주로 쏨뱅이와 용치놀래기(경상도에서는 술뱅이)였고, 어랭이라는 덩치 큰 제주 놀래기도 있었다.
제주 출신 선배가 "제주 어랭이는 육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물고기로 맛도 참 좋다"고 자랑했다. 몇 해 전 제주에 정착한 지인이 제주항 근처에서 어랭이물회를 사 줘서 먹었는데 참 맛이 좋았다.
우리 앞 순번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낚시꾼이 한 바구니 조과를 챙겨왔고, 개중에 어린이가 제일 많이 잡았다고 체험 배낚시 사장님이 귀띔해 준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오는 그 아이에게 "꼬마야 손맛 많이 봤니 다음에 또 와"라고 멀리서 말했더니 그 꼬마는 수줍은 듯 자기 엄마에게 "저 아저씨가 이호털 아저씬가 보다"고 하는 말했다.
부캐로 얻은 이름 '이호털'
꼬마가 하는 소리를 낚싯배 사장님도 들었던지 깔깔 웃었다. 영문을 몰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옆에 서 있는 입간판을 가리킨다. '이호털보배낚시'라고 쓰여 있다. 받아 든 명함에는 배라는 단어가 독립적으로 빨갛게 강조돼 있다. 그러나 입간판은 띄어쓰기 없이 돼 있다. 꼬마는 이호털 보배낚시로 읽었고, 말을 거는 아저씨가 주인이겠거니 생각하고 '이호털' 씨를 호명한 것이다. 이 배낚시 가게 선장님은 실제 수염이 덥수룩한 털보로 가게 안에 걸린 사진을 보니 제주 앞바다에서 거대 물고기 청새치를 잡은 적이 있는 전문 낚시인이었다.
때맞춰 예약자 2명이 도착해 현사포구에 정박한 털보 선장 배에 올랐다. 포구는 꽤 작은데 낚싯배는 여러 대 정박돼 있었다. 우리가 탈 배는 6톤 이상으로 큰 배였다. 그 큰 배를 능숙하게 포구에서 빼 내 마침내 먼바다로 나간다. 선장의 배 모는 솜씨가 대단하다.
낚시 포인트는 포구에서 멀지 않았다. 조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지, 항을 떠난 배는 북쪽 제주 방향으로 배를 한참 몰았다. 이호방파제에는 붉은 말과 흰말로 형상화된 말등대가 있었다. 육지에서 보면 늘 말의 옆면과 앞면만 볼 수 있는데 바다에서는 말 궁둥이가 보인다. 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미세먼지가 좀 있는 날씨였다. 멀리 한라산이 위풍당당하게 우리를 배웅해 준다.
포인트에 도착해 털보 선장이 풍닻을 내린다. 아무래도 조류가 좀 세서 배를 천천히 떠내려가게 할 모양이다. 낚싯대는 짧은 릴대인데 이미 난간에 비치돼 있다. 바늘이 두 개 달린 묶음추 채비다.
2시간 동안 긴장 또 긴장
나중에 검색해 보니, 초보자들은 지렁이도 선장님이 끼워주고, 고기가 잡히면 바늘을 빼주기도 한단다. 무려 9짜 참돔을 낚은 조사가 그런 것을 부탁할 일이 없다. 함께 갔던 선배도 자칭 찌낚시 전문가라 혼자서 잘했다.
요령은 일단 바닥을 찍는 것이다. 봉돌이 바닥을 찍으면 30cm 정도 채비를 띄워서 살짝살짝 고패질하면 된단다. 오늘 잡을 어종은 용치놀래기와 붉은쏨뱅이인데 다 바닥에서 생활하는 물고기라 그렇다. 갯지렁이도 길게 늘어뜨리지 말고 바늘 끝에서 1~2cm 정도만 길게 해야 챔질이 잘 된다고 선장이 알려주었다.
신호가 왔다. 기분 좋게 걸어 올린다. 용치놀래기다. 어랭이라고 특별히 부를 만한 큰놈이 물어줘야 하는데 씨알이 아쉽다. 찌낚시 전문 선배가 쌍으로 걸었다. 용치놀래기와 쏨뱅이다. 경쟁심이 발동한다. 더욱 손끝에 집중한다.
30분 동안 입질이 쉼 없이 들어온다. 한 바구니로는 모자랄 것 같아 바구니를 나눴다. 찌낚시 전문가 선배가 마릿수로 훌쩍 앞서간다. 우리 바구니는 둘이 낚는데 마릿수가 혼자서 잡는 것보다 못 미치는 것 같다. 예전에 한 번 차귀도 앞바다에서 찌낚시 전문가 선배와 뱅에돔 보트낚시를 한 적이 있는데 그가 대물 긴꼬리벵에돔 몇 마리를 낚을 동안 한 마리도 못 낚은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쏨뱅이, 놀래기, 심지어 보리멸까지 낚았다. 선배는 쥐치를 잡아내며 기를 죽이고는 희희낙락하고 있다.
잘 물던 고기가 갑자기 입질을 멈춘다. 조류가 너무 세 채비를 아무리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 순간 그는 쥐치를 낚았다. 입질 한 번 못 받고 망연해 있는데 선장이 조류가 겉과 속이 달라 오늘은 낚시가 잘 안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낚은 고기에 손이 젤 많이 가
젊은 남녀 조사는 몇 번 채비가 끊기더니 한 대만 하겠다고 하다가, 나중엔 아예 낚시를 멈춘다. 고기가 안 무니 재미가 없어진 것일까. 바닥이 암반층인 곳은 밑걸림이 심했다. 밑걸림이 발생하면, 낚싯대가 아니라 줄을 잡고 걸린 채비를 끊으라고 선장이 다시 알려주었다. 낚시하는 사람에게는 기본이지만, 초보자에겐 장비를 보호할 중요한 지침이다.
채비에는 바늘 두 개가 달렸는데 밑에 바늘엔 갯지렁이 위 바늘에는 오징어살을 뀄다. 오징어살은 몇 번의 입질도 견더준다. 덩치 큰 제주 어랭이 한 마리 낚고 싶었는데, 잘 물어주지 않는다. 채비를 잽싸게 풀어 드디어 바닥을 찍고는 용치놀래기 한 마리를 더 잡았다. 용치놀래기와 어랭이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물고기라는 제주 현지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굳이 오래 검색하지 않아도 제주 어랭이와 용치놀래기가 다른 종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입질도 시들해지고, 시간도 어느덧 2시간이 된 모양이다. 선장이 10분만 더 하겠다고 한다. 살펴보니 잡은 고기가 작지는 않다. "조류 때문에 입질이 더 많이 없었다"고 선장이 위로해 준다. 포구로 돌아온 배에서 의기양양하게 조과를 들고 내린다. 멀미 때문에 주변 관광을 한 일행이 놀라는 모습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잡은 고기는 2만 원의 수고비를 주고 인근 횟집에서 회를 떴다. 매운탕 양념은 추가 5000원을 더 받는다. 회가 모자랄 것 같아 제주 동문시장에서 긴꼬리벵에돔 1kg을 8만 원을 주고 사고, 물항식당에서 갈치회 4만 원어치를 사서 푸짐하게 펼쳤다. 게다가 혼자 우겨 제주 사람들이 아직 맛이 들지 않았다며 말리는 자리회도 1만 원어치 샀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우리가 잡은 자연산(?) 회 접시가 가장 먼저 바닥을 드러냈다. 손맛 입맛 최고의 제주도 어랭이 배낚시. 부캐도 하나 얻었으니 비싼 항공료 본전 이상을 건졌다.
제주도 현사포구/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