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계박람회를 부산에 유치하고자 하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역사·문화적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식민 지배를 벗어나자 마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고, 민간·군부의 독재를 30년 넘게 겪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신생 개발도상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길입니다. 하지만 동족 간 전쟁까지 겪고 영토가 나뉜 현실까지 살피면 훨씬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독일은 패전국이지만 전쟁 없이 승전국 협의로 분단됐고,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분단을 한반도로 미루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이런 불운 속에서도 우리는 독립 이후 독재 30여 년을 딛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궤도에 올린 지구상 거의 유일한 신생 독립국으로 분류됩니다.
2030세계박람회는 한국전쟁 80주년에 치러집니다. 그 80년 사이 피, 땀, 눈물 흘려가며 산업을 일으키고 민주주의의 모범을 일궈낸 한국, 특히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의 진행 과정에서 그 첨병이자 역사의 현장이었던 부산에서 박람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자유주의 후기 자본주의의 쇠퇴로 정치·경제적 양극화가 극대화 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혐오와 배제, 자국 이기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다면 공존과 조화, 연대와 질서를 모토로 해야 할 2030엑스포의 화두를 던지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지난 80년의 고통을 이겨낸 경험을 가진 한국, 부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엑스포 행사의 주요 거점은 수탈과 이별, 상봉, 무역의 현장이던 부산항 1부두를 비롯한 부산항 북항 일대입니다. 엑스포가 여기서 열리면 앞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피란수도 유산을 보러 대청로 일대로 관람객이 몰릴 수도 있겠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부산 피란수도 유산이 등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최종 등재까지 부산시와 문화재청이 관심과 역량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에 정부와 부산시, 재계와 시민단체의 역량이 총결집되는 마당에 한국관광공사 부사장이 “부산 촌동네에서 엑스포 홍보를 왜 하느냐”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이재환 관광공사 부사장은 “제2의 한동훈이 되겠다”, “나도 낙하산” 등의 발언으로도 이미 야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는 인사입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유치하려는 국가적 이벤트에 주무 부처 산하기관에 어떻게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을 임원으로 앉힐 수 있었는지 기가 막힙니다. 엄중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제 한 달여 뒤면 국제박람회기구(BIE)의 투표가 열립니다. 범시민적 유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를 어물쩍 넘기고 어떻게 다른 나라에 부산 유치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정부에서 성의 있는 조치를 할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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