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목욕할 권리” 그 믿음에 박사 학위 대신 선택한 가업 [핫하다, 부산 온천]

입력 : 2024-07-03 2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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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 온천 지킴이

타일 몇 장 빼곤 60년대 그 모습
동래 만수온천 대대로 나눔 철학
‘물맛’ 자부하는 금천파크온천
레트로한 분위기에 촬영지 인기
해운대 첫 대중목욕탕 할매탕
이름처럼 어르신들 사랑방으로

부산 동래구 온천동 만수온천 대중목욕탕 외부 모습. 옛날 온천 목욕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온천 업계에서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 동래구 온천동 만수온천 대중목욕탕 외부 모습. 옛날 온천 목욕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온천 업계에서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정대현 기자 jhyun@

긴 세월 한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묵묵히 전국에서 몰려드는 욕객들을 맞으며 부산 온천 문화를 지키고 가꿔온 온천 지킴이들이 있다. 부산 온천의 한 축이기도 한 그들이 대를 이어 가며 지켜온 것은 무엇일까. 강산도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그들이 온천 욕장 첫 모습을 거의 고스란히 유지하게 한 힘은 어떤 것일까.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목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3일 오전 9시 동래구 온천동. 꼼장어 골목을 지나 온천시장으로 들어서니 골목길 사이로 단층짜리 나무색 건물에 걸린 ‘만수온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적갈색 벽돌 건물 외관에서 오랜 시간과 역사가 느껴졌다. 개업 이래 타일 몇 장 빼고는 거의 바뀐 게 없을 정도로 옛 모습 그대로다.

만수온천은 1967년이 시작이었다. 만수온천 이기희 대표의 어머니는 1966년 재일교포에게 온천공을 인수했다. 이 대표는 “어머니께서 잠시 일본에 살았는데, 그때 일본 온천을 너무 좋아하셔서 한국에서도 온천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고 전했다.

만수온천 욕장 입구도 재래식 일본 온천 형태인데, 중앙에 카운터를 두고 좌우로 여탕과 남탕 입구가 나 있다.

이 대표는 1988년 운영을 이어 받았다. 34살 때였는데 부산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던 중이었다. 어머니 건강이 악화되며 이 대표는 ‘집안이냐’ ‘학위냐’ 기로에 섰다고 했다. 그는 집안과 만수온천을 택했다.

오래된 온천 운영은 쉽지만은 않았다. 역사는 시설도 낡게 한다. 물을 덥히는 속도도 느렸고, 손님 맞을 시설도 부족했다. 입구에서 욕탕까지 10걸음이면 닿는다. 내부는 6~7평 정도에 락커는 20여 개 남짓이다. 이 대표는 “온도를 맞추고 유지하는 시스템도 수동으로 하고 있어서 겨울에는 손님 한 명을 받기 위해서 열었다가 물이 금방 식어버리니 다시 덥히는 일도 있었다”며 “종업원을 둘 수 없었고 손님도 뜸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온천협회 지인이 “목욕은 하고 싶지만 대중탕을 이용하기 어려운 손님 상대로 영업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이후 프라이빗하게 목욕을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온천 문을 열고 있다. 목욕 문의가 오면 예약 시간에 맞춰 문을 열어 탕을 개방하는 식이다. 요즘엔 장애인들, 피부병이 있는 손님이 주로 찾는다.

이는 ‘나눔이라는 만수온천 운영 철학에서 비롯됐다. 불심이 강했던 이 대표 어머니는 양로원, 고아원에 무료 목욕 봉사활동을 자주 나갔다. 이 대표는 “어머님은 생전에 사람들을 깨끗하게 씻겨 주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여기셨다”며 “목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영화 ‘보안관’ 촬영지였던 사실을 알리는 동래구 온천동 금천파크온천 입구 앞 입간판. 금천파크온천 제공 영화 ‘보안관’ 촬영지였던 사실을 알리는 동래구 온천동 금천파크온천 입구 앞 입간판. 금천파크온천 제공

■전통 온천, 레트로 성지로

동래구 온천동 금천파크온천도 부산 온천의 한 역사다. 이곳은 1966년 ‘금천탕’으로 시작했다. 금천파크온천 김성국 대표의 부모님은 처음엔 온천보다는 목욕탕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온천 하면 동래 온천이라는 생각에 온천을 택했다. 금천탕과 2층 여관, 바로 옆 건물까지 매입하면서 어느 정도 규모가 갖춰졌다.

‘물맛’을 고집하는 손님도 생겼다. 아토피가 심한 손자를 기르고 있다는 어르신이 양해를 구하고 온천물을 말통에 일주일에 2~3차례 받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금천파크온천 김성국 대표는 “동래 온천 효능에 자부심이 들었고, 이곳을 계속해서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금천파크온천 인기도 높아졌다. 2011년엔 부산에서 열린 국제여자배구대회에 참가한 김연경 선수를 포함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곳에 묵기도 했다. 선수들이 몸을 푸는 연습실로 온천 시설 내 헬스장이 제공됐다. 특유의 레트로한 분위기에 영화 ‘보안관’ ‘레드카펫’ 촬영지로도 이용됐다.

레트로 열풍 속 온천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상도 해 본다. 김 대표는 “금강공원 등 온천장 근처도 함께 발전해 일대가 볼거리 먹거리를 갖추면 레트로를 즐기는 젊은 층이 찾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온천은 약국이자 사랑방”

해운대에도 역사를 자랑하는 온천이 여럿 남아 있다.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온천센터의 전신은 1936년에 문을 연 ‘할매탕’이다. 해운대 온천 최초의 대중 목욕탕이었다. 현재도 해운대에서 탕 기준 가장 규모가 큰 온천이다.

옛 이름처럼 이곳은 동네 할머니들 약국이자 사랑방이었다. 근육통과 관절염으로 고생하다 할매탕을 찾은 손님 사이에서 온천 ‘물 빨’이 좋다며 입소문이 퍼졌다. 지금은 아흔이 넘은 어르신들도 물이 좋다며 찾는 온천이 됐다. 해운대온천센터 김미향 이사는 “매일 같이 이 장소를 찾는 분들에게 온천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다시금 느낀다”며 “어르신들이 이곳에서 온천을 하며 대화를 나누다 맺은 인연이 오랜 시간 이어지는 걸 보면 여전히 해운대 온천이 동네 사랑방의 한 축을 맡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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