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핀랜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육십구개국의 오천이백여선수가 참가하여 거행된 제십오회 「올림픽」대회에는 동란중이었으나 싸우는 한국의 청년들의 불굴의 정신을 자랑하면서 축구, 농구등 다수의 선수가 요하는 단체경기참가는 중지하고 육상, 역도, 권투, 「레슬링」, 자전거등 5종목의 선수 이십일명과 임원까지 삼십구명의 선수단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조직되어 수영비행장을 출발하여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의 입상은 다음과 같다.
◇육상경기=▲4위=최윤칠(마라돈)
◇권투=▲3위=강준호(반탐급) ▲4위=한수안(플라이급)
◇역도=▲3위=김성집(웰트급) ▲4위=김해남(반탐급) ▲4위=김창희(라이트급)
◇1956년 십일월 호주「멜본」에서 개최된 제십육회 「올림픽」대회에의 참가는 우리나라로서 세번째 참가였다. 육십팔개국의 사천여선수가 참가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농구선수 십명과 육상, 권투, 역도, 「레슬링」, 자전거, 사격등의 선수 이십오명 도합 삼십오명, 본부임원, 보도진등 육십여명의 대선수단을 KNA기로써 호주까지 수송했다.
이대회는 해방후 앞서 거행된 「런던」, 「헬싱키」대회때보다 더욱 치열한 경기를 보였진만 우리선수들 중 송순천군이 권투「반탐」급에서 은「메달」, 김창희군이 역도「라이트」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각각 태극기를 올렸다. 또한 유인호, 김해남군이 역도에서 4위, 김성집군은 5위로 각각 입상했으며 「레슬링」 이상균군이 4위, 「마라돈」에서 이창훈군이 4위로 입상하는 등 비교적 우수한 전적을 남겨 한국체육계의 앞날을 축복하게시리 되었다. 이 대회에서 한가지 특기할 것은 자전거도로경기에서 김호순군이 비록 삼십칠위를 차지했으나 「아시아」지역에서 백팔십칠「킬로」를 완주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이 대회 한국선수들의 전적은 다음과 같다.
◇육상=▲이창훈(마라돈) 4위=2시간28분45초 ▲최충식(마라돈) 12위=2시간36분53초 ▲임화동(마라돈) 도중기권 ▲송교식(투함마)낙선=53M54(예선통과선54M) ▲최영○(삼단도 21위=14M65 ▲서영주(주폭도) 낙선=7M9 (예선통과선 7M15) ▲심상옥(800M) 낙선, 4조에서 6위=1분55초5 ▲심상옥(일천오백M)낙선, 13위=4분9초
◇권투=▲표현기(플라이급) 2회전서 패배 ▲송순천(반탐급) 2위 ▲정동훈(페터급)2회전서 패배 ▲백도선(라이트급) 2회전서 패배 ▲황의경(라이트·웰트급) 5위
◇역도=▲김해남(반탐급)5위=합계 307.5K ▲유인호(반탐급) 4위=합계 320K ▲이경섭(페터급) 9위=합계 312.5K ▲김성집(라이트급)3위=합계 380K ▲박동철(미들·헤비급) 15위=합계 120K 추상서 실격
◇「레슬링」=▲이정기(플라이급) 2차전서 패배 ▲이상균(반탐급) 4위 ▲오태근(라이트급)2차전서 패배
◇자전거=▲김호순(도로경기) 37위=187K(5시간34분37초) ▲임상조(도로경기) 2구간서 기권
◇사격=▲김윤기(자유권총) 30위=463점 ▲추화일(자유소청)19위=899점
◇농구=14위(KJ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