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를 걸치고도 잔뜩 움추린 행인들의 어깨엔 벌써 한겨울이 완연하다. 말갛게 씻겨진 도시의 공간은 우리를 부르는 듯 사뭇 싱그럽기만 하다. 그날 나는 많은 길을 걸었다. 아름답고 밝은 일만을 그리면서 가로수의 마지막 잎새가 아직 지기 전에 나의 전신을 휘감던 가을의 아픔까지도 깊은 겨울의 호주머니 속에 성숙한 기다림으로 간직해야 하리라.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난 그만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시커먼 폐수가 흐르는 개천에 넓다란 스티롤폴 덩이를 띄워 놓고서 국민학교 4학년 또래의 두 남자 어린이가 그 위에 서서 각목을 하나씩 쥐고 열심히 상류를 향해 노를 젓고 있는게 아닌가. 돌아보니 나 뿐이 아니라 개천 건너편에서도 여러사람들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웃음띤 얼굴들이었다. 노를 젓던 어린이들도 구경꾼이 모여들자 신이 났던지 싱글벙글 더욱 세차게 팔을 눌렀다. 머리위에서는 전동차가 날쌘 여음을 남긴채 지나갔다.
폐수가 뿜어내는 악취도 겨울의 싸늘함도 해가 넘어가는 것도 깡그리 잊고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소년이 된듯 아주 열심히 그들은 노를 젓고 있었다.
100m 남짓 따라 갔을까. 그들은 그곳에서 노젓기를 멈추어야만 했다. 오물 덩어리가 한데 모여 더이상 그들의 장비로 그곳을 헤치고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퇴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걷는 나의 마음에는 착잡함과 함께 한 가닥꿈이 펼쳐졌다. 저렇게 지저분한 폐수가 아니라 맑은 물위를 저들이 저렇게 노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