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氣流]바 機構 결속노린「告解」

입력 : 1990-04-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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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카틴虐殺」첫 시인의미

최근 동독이 2차대전중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 등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를 표명한데 이어 소련도 폴란드군 장교의 집단살해를 시인하고 나선 것은 동유럽 국가들간에 결속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소련당국은 2차대전 당시인 1940년 소련남서부 카틴숲속에서 발생한 폴란드 장교 1만5천명 집단학살사건은 스탈린의 비밀경찰 NKVD의 소행이었음을 50년만에 최초로 공식시인하고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소련 관영 타스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소련 관리들이 옛 기록을 검토한 결과 이 사건은 KGB의 전신인 당시 BKVD의 총책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하고 관련 기록들을 현재 訪蘇중인 야루젤스키 폴란드대통령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동안 이 학살사건은 나치 독일의 소행이라고 주장해온 소련이 사건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39년9월1일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전격침공, 2차대전의 와중으로 enLDJ들었으며 같은 달 17일 히틀러 스탈린간의 밀약에 의해 소련도 폴란드의 서부 국경내로 돌입해 두 대국의 군대는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다.

소련군은 당시 약13만의 폴란드군을 포로로 잡아 이중 1만5천명의 장교를 본국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이들 거의 전원이 행방을 전해주는 문서하나없이 지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이다.

3백94명을 제외한 장교 전원이 1940년 4워로가 5월에 각각 NKVD에 신병이 인도돼 모스크바 서북부의 카리닌과 우크라이나 동부 보로시로프그라드 및 스몰렌스크의 3개 수용소로 분산, 수용됐었으나 그 후 이들의 소식은 완전히 끊긴 것이다.

이들의 시신은 1942년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군에 의해 소련 남서부 스몰렌스크 부근의 카틴숲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 후 계속된 발굴 작업으로 모두 4천명이 확인됐으나 그 나머지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찾을 길이 없다.

이들은 모두 등에 총을 맞은 채로 집단으로 매장돼 있었다.

독일은 자신들이 이 학살사건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대부분의 폴란드인들도 이를 인정했으나 이들을 암송해간 소련은 나치독일의 소행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왔다.

소련이 카틴 숲 학살 50주년에 즈음해, 그것도 공산당 출신의 야루젤스키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에 맞춰 이 같은 발표를 한 것이 일단 정치적으로 야루젤스키에 대한 지원사격같이 비친다.

소련의「고해」는 또 바르샤바 조약기구라는 엉성한 군사동맹을 보다 결속력 있는 정치동맹으로 변화시킬 것을 희망하는 고르바초프와 개혁파 지도부의 의도로도 보인다.

동독과 소련의 과거청산은 2차 대전과 그 후의 냉전체제를 벗어나 서방과 새로운 협조적 미래를 건설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소련은 13일 폴란드군 장교가 자국 비밀경찰에 의해 학살됐음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사진은 카틴숲사건 50주년 위령식 광경.

(모스크바外信綜合聯合)(바르샤바AP電送聯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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