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리 망언 강경대응 배경

입력 : 1995-10-13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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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日역사관 바로잡기



정부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일본총리의 망언을 비난하는 국민여론에 힘입어 한일역사관계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을 재정리하도록 요청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임에 따라 이 문제가 한일양국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金泳三대통령이 일본총리의 망언과 관련, 직접적으로 『역사의식을 외면한 채 망언을 자주해 우리국민을 자극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서는 등 어느 때보다 일본에 단호한 태도를 보여 향후 이 문제가 양국간 마찰을 불러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 무라야마총리가 국회답변을 통해 발언한 것인 만큼 일본이 이를 철회하거나 사과를 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조항은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大일본제국과 대한제국 사이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무효로 확인됐다」는 기본조약 2조.

51년부터 시작된 양국간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65년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 벌써 15년간 양측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초래한 한일합방조약이 불법인지 여부로 지루한 샅바싸움을 벌여왔다. 경제협력 자금 조달에 목이 탔던 한국정부는 일본측이 자기 식으로 법을 해석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미 무효로 확인됐다』는 말로 매듭을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협정이 체결된 직후부터 일본측은 이 조항에 대해 『1910년 조약이 체결됐을 때에는 당시 국제관계 등 역사적 사정으로 볼 때 국제법상 유효하게 체결, 실시됐으나 1948년 한국의 해방으로 무효가 됐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반면에 한국측은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전에 양국이 맺은 모든 조약은 불법 점령으로 인한 식민지 하에서 체결된 것으로 체결 시점부터 무효』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물론 해석에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영어 본문에 따른다는 부기가 있으나 영어표기도「ALREADY NULL AND VOID」(이미 무효)라고 되어 있어 양쪽 모두의 주장을 원천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즉 과거에 체결된 조약을 구체적으로 집어내서 불법으로 체결됐다는 점을 관철하지 못한 당시 정부에 상당한 정도의 책임이 귀속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동안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항의표시 등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측이 먼저 무라야마 총리의 이름을 들어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오자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등에 업고 일본정부가 문제의 기본조약 2조의 해석을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측의 문제 제기로 불거진 이 문제가 30년 만에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셈이다.

일본 정부는 수교를 위해 막대한 양의 쌀을 지원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는 북한이 나서는 바람에 대응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0년 동안 계속돼온 정부해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과 국교정상화 회담에서 북한이 이 문제를 호락호락 넘기지 않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일본은 난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단순히 조약의 해석을 바로잡는데 그치지 않고 일본이 대북 접근전략을 펴고 있는 사실과 관련 지어 일본의 對한반도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기까지 했다. 金대통령은 남북이 분단된 책임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한 일본에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한일관계에 대한 역사인식 바로잡기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또 하나의 정치적 역학구도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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