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고대 그리스,하면
우선 떠올리게 되는 철학자들이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그리스 철학사에
빛나는 이름들은 얼마든지 있다.
흙속에 묻힌 보석 같은
이름의 하나가 히파티아.
'신플라톤주의'를 완성했으며
암모니우스 다마스키우스 등
당대 유명 철학자들의 스승이었던
매혹적인 여성 철학자이다.
그녀는
고대 그리스 수학의 정수를 익힌
최초의 여성 수학자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선
뛰어난 지성 때문에
남성들의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한 첫 여성 순교자로
경배받고 있는 인물.
일단의 문학가들은
히파티아를 '플라톤의 정신과
아프로디테의 육체'를 지닌 채
처참하게 살해당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추앙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가 사랑한 여인 히파티아'(마르자 드스지엘스카 지음/이미애 옮김/우물이 있는 집/1만1천원)는 역사와 문학이 뒤엉키면서 신화적 인물이 되어버린 그녀를 최대한 역사적 진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구성한 책. 히파티아를 국내에 처음으로 본격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히파티아'의 모습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걷어낸 지은이는 폴란드 야기엘로니안 대학의 여성 역사학자. 그는 관련 문헌을 꼼꼼히 살펴 근대유럽문학이 어떻게 '히파티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했는지,그 이전의 '히파티아'가 어떠했는지를 재구성해 냈다.
'히파티아'가 근대 유럽문학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신구교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던 작가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에서 빚어진 '히파티아'의 죽음을 가톨릭의 탄압을 받는 계몽주의자들의 모습과 동일시했다. 사상가 볼테르는 '히파티아의 죽음은 광신적인 무리를 이끌고 다니던 키릴루스의 삭발한 사냥개들이 저지른 야수적인 살인'이라고 썼을 정도.
'전설'은 19세기 중반 정점에 달해 '히파티아'는 '서구인의 상상 속에서 육체적 아름다움과 정신의 불멸성을 구현한 존재'로 이어졌고 19세기 후반 실증주의자들은 '히파티아'를 '종교에 대항하는 과학의 용감한 옹호자'로 찬양했다. 심지어 20세기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조차 '히파티아가 죽은 이후로 알렉산드리아는 더 이상 철학에 시달리지 않게 됐다'라며 그녀를 신화화했다.
그러나 지은이가 고전 문헌을 살피고 비교해 찾아낸 진실은 사뭇 다르다. 문학 속에서 '최고의 아름다움과 미덕을 갖춘 젊은 여성의 죽음'으로 표현됐던 그녀의 피살시기는 415년. '370년께 출생'을 근거로 한 주장에 대해 지은이는 '355년께 출생'설을 제시하며 피살 당시엔 이미 예순이 된 노철학자였다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또 여성주의자들이 그녀를 결혼 뒤에도 자유연애를 구가했던 인물로 생각하지만 실제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특히 육체의 관능성을 멀리한 금욕적 여성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그녀는 유대교인이 아니었고 이는 그녀의 제자 중 상당수가 기독교도였음을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
그런데 왜 히파티아는 기독교인들에게 죽임을 당했을까? 그녀는 당시 강력한 교권주의자였던 대주교 키릴루스와 온건한 기독교도였던 알렉산드리아 행정관 오레스테스의 대립구도에서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었고,이를 못마땅히 여긴 키릴루스파가 '천문학'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던 그녀를 '검은 마술'을 쓰는 마녀로 몰아 죽였던 것이다.
러셀의 말처럼 그녀의 죽음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이 종말을 고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제자들을 중심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신플라톤철학은 더욱 꽃을 피웠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
'신화'를 걷어낸다고 해도 그녀가 철학,수학,천문학에서 당대 최고의 위치에 있었고 수많은 인재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수많은 사료들은 한 목소리로 그녀의 공정함,정직함,시민적 헌신,그리고 지적 용기를 기록하고 있다.
김아영기자 yeong@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