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역사 왜곡에 대한 무기'

입력 : 2006-11-03 00:00:00 수정 : 2009-01-30 0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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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작가 이환경 씨

북방이 심상찮은 이즈음이다. 동북공정과 북한 핵은 북방의 하수상한 소식이다. 때맞춰 국내의 안방에서는 '고구려 바람'이 거세다. '안방 민족주의'라는 일부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TV 드라마 '주몽''연개소문''대조영'은 상한가를 친다. '고구려 바람'의 한가운데에 있는 '연개소문'의 작가 이환경(56)을 만났다.

"오래 전에 중국의 티베트 공정을 보지 않았습니까. 공정으로 티베트를 자기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동북공정에는 중국의 숨은 전략이 있습니다. 북한정권이 망할 때,그걸 먹겠다는 것이죠. 따라서 고구려 역사를 지우겠다고 나선 겁니다. 북한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거기에 맞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드라마를 통해 고구려의 정체성을 보여주자는 것이 '연개소문'의 제작 의도입니다. 역사 드라마는 시대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죠."

부산영상작가교육원(원장 최인수)이 최근 부산일보사 강당에서 마련한 강연회 참석차 부산을 찾은 SBS 드라마 '연개소문'의 작가 이환경은 '드라마는 왜곡된 역사에 대한 유효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안방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에 "사극은 근본적으로 민족주의를 나타낼 수밖에 없으며,또한 드라마를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용의 눈물' '태조왕건' '야인시대' '영웅시대' 등 선 굵은 드라마로 한국 정통사극의 장을 펼쳐온 이환경은 "연개소문을 5년 준비했다"고 밝혔다. "고구려 관련 서적을 읽고,중국을 방문하여 경극도 보고,고구려의 현장도 찾았습니다. 경극에는 당 태종이 연개소문에게 쫓겨가는 대목이 있어요. 역병이 돌면 대문에다 연개소문의 얼굴을 붙여놓을 정도로 중국과 중국인에게는 연개소문이 두려운 존재입니다. 수나라가 4번,당나라가 4번 고구려를 침략했는데,판판이 연개소문에게 쫓겨났습니다. 고구려의 영역은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까지 육박했지요."

고구려에 대한 역사가 별로 없다고 했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바탕으로 현지 답사를 했고 마침 중앙대에서 은퇴한 모 교수가 중국의 '자치통감'을 번역해 날개를 달았다고 한다. "드라마 '주몽'은 정사(正史)가 아니며,두 줄밖에 안되는 역사에다 상상력을 덧입힌 퓨전 드라마입니다. '대조영'은 유현종 선생의 소설을 극본으로 만든 것이고요. SBS에서 원래 유현종 선생의 소설을 고려했는데,제가 조사해보니 실제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연개소문'을 쓰게 된 겁니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노동판을 전전하며 문학에의 길에 들어선 이환경은 외가가 있는 경남 양산과 부산에서도 습작의 세월을 살았다. 부산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등 몇년을 지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31세의 나이로 등단한 그는 "작가가 공부 안하고 드라마를 쓰면 자기 무식한 것 드러낼 뿐 아니라 사람들 바보 만들게 된다"며 "작가는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아서는 안되며,과거 고물상에서 일 하면서 헌책을 본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역사 드라마에 천착해온 이환경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정사를 쓰라고 강조하기 위해 서울에서 이곳 부산에 내려왔다"며 "지금은 역사 드라마의 위기 시대"라고 진단했다.

"요즘 드라마에는 우리의 정신과 뿌리가 없고 그저 재미와 환락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통해 명성도 얻었고,돈도 벌었습니다. 이제 좀 쉬고 싶고,드라마에서 떠나고 싶은데,내가 떠나면 누가 올까 싶었어요. 붕괴된 사회상만을 보여주는 작가는 쓰레기이며,공부 안하고 3류 대중잡지만 뒤적여서는 제대로 된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문학에는 주제가 있는데,요즘 드라마를 보면 주제가 없어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나의 사관을 얻으려면 산 꼭대기에 올라 산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고 함석헌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어려운 일입니다."

이환경은 "보석이 빛나는 것은 연마 때문"이라며 "작가(作家)는 자기의 세계,철학,우주를 갖고 있어 하나의 집을 짓는,그리하여 일가를 이루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한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느냐,이 시대의 고민은 무엇인가,국가와 사회가 지금 절실히 요청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문제의식에 드라마는 출발하며,그리하여 역사적 맥락 속에서 관련 모델을 찾게 되는데,이즈음은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이 시대정신으로 다가왔다"며 '연개소문'의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임성원기자 forest@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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