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독자들은 여성잡지를 읽을 때마다 '난독증' 환자처럼 쩔쩔맨다. 서사적 흐름이 배제된 여성잡지들을 읽기 위해서는 '수다'라고 하는 독특한 독해법을 남성들이 익혀야 할지도 모르겠다. 강선배 기자 ksun@은행이나 우체국 등의 관공서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여성잡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광고가 전체 분량의 반을 차지하는 것이나 가십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정도는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것은 잡지의 목차를 찾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잡지의 목차가 목차로 보이지 않고 광고처럼 보이기도 해서 겉표지에 적혀 있는 유명인의 인터뷰나 사생활 따위를 희번덕거리며 읽으려고 해도 과장해서 말하면 시행착오를 거듭해야만 그 페이지를 읽어 볼 수 있다. 잡지의 기사나 정보 따위들도 '가독성'을 위해 배치되어 있지 않기가 일쑤여서 여성잡지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잡지를 천연덕스럽게 머리를 만지거나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읽는다 말인가.
물론 여성잡지는 '여성'을 주 독자로 삼지 '남성'을 잡지의 구매층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는 있다. 그렇더라도 왜 여성잡지와 마주할 때마다 '난독증' 환자처럼 쩔쩔매는지, 그 이유는 쉽사리 해명되지 않는다.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읽는 행위도 '성차'(gender)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가정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여성잡지를 읽기 위해서 여성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여성잡지가 여성의 관심사를 주로 다룬다는 바로 거기에 '여성'(의 독서)을 가십이나 사생활의 폭로나 고백에만 '관심'을 제한한다는 음험한 혐의도 지울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광고를 제외한 기사가 들어간 본문들은 논리적 일관성과 서사적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배치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잡지의 이 형식을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해 '순정만화'를 경유해 보자. 순정만화는 미약한 서사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이미지'와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활용하면서 칸과 칸을 엄격하게 분별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문장을 화면 곳곳에 배치하는 경향을 지닌다.
마치 여성잡지가 서로 다른 정보를 한곳에 모아두는 것처럼 순정만화에는 이질적인 내용들이 동시에 등장하여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어렵거나 서로 다른 맥락들이 겹치거나 서사의 흐름들이 중단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순정만화는 역사를 만화의 무대로 선택하더라도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지 않으며 현실을 그리더라도 현실은 '모호'한 현실로만 남게 된다. 요컨대, 순정만화는 여성의 자리가 현실로부터 지속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잡지와 순정만화는 바로 그러한 형식들 덕분에 남성적 혹은 지배적 읽기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들을 함축하고 있다.
디지털 다큐 '밥, 꽃, 양'(2001년)의 마지막 대목에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다'이다. 수다는 어떤 이야기라도 맥락과 관계없이 대화에 동참한 모든 사람과 교환할 수 있는 이야기 형식이어서, 현실과 달리 '배제'와 '예외'라는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다. 아니, 수다는 모든 이야기가 공존 가능함으로써 획일적인 방식이 지워버린 삶을 구제하고 보듬는 능력을 가진다. 하여, 수다 떠는 방법도 배워야 할지 모른다. 우리의 목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