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음식의 맛을 완성하는 조미채소다. 간혹 스테이크에 파를 모양을 내서 곁들일 정도로 파는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단, 미역국을 끓일 때는 맛과 영양 효율을 위해 파를 넣지 않는다. 그러나 라면을 끓일 때 파를 넣지 않으면 그 얼마나 맛이 맨송맨송할까. 파는 심지어 결혼식장에도 들어간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면서….' 그런데 요즘 파뿌리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도 있단다. 파뿌리는 백발의 비유다. 식장에서 파뿌리를 운운하는 것은 백발이 되도록, 늙어서까지 사랑하라는 말이다.
파의 대명사는 부산 강서구 명지동에서 생산되는 명지대파다. 명지대파는 한국 최고 품질이다. 짭짤하게 소금기를 머금었던 낙동강의 퇴적 토양 덕에 이 명품이 빚어진다. 그래서 위쪽의 대저·강동동에서는 '짭짤이'라는 명품 토마토가 생산되고, 아래쪽의 명지동에서는 향이 좋은 명지대파가 나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낙동강 하구언에서 이어지는 2번 국도의 아래쪽인 명지에서 강서구 대파 생산량의 95% 이상이 생산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그래서 '명지대파'이다). 그것은 토양의 염분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명지의 퇴적 토양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대파 농꾼들 사이에서 "북을 친다" "북뚝을 친다"라는 표현이 있다. 파 주변의 흙을 북돋워주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게 북뚝을 쳐 놓으면 파 아래쪽의 흰 부분(연백부)이 점차로 길어지는 것이다. 흰 부분이 길수록 상품(上品)으로 친다. 명지의 한 농사꾼은 "파를 많이 생산하는 진도 자운도의 토질은 명지와 달리 뻘층이어서 명지대파처럼 북뚝을 많이 칠 수 없다"고 했다. 북뚝을 치는 시기는 파가 한창 크는 여름 한 달쯤이라고 한다. 토양뿐 아니라 이곳의 따뜻한 기온과 항상 불어오는 해풍이 명품 명지대파를 길러내고 있다고 한다.
파의 재배 기간은 일반 채소에 비해 아주 길다. 3년에 2~3번 수확할 수 있단다. 하우스 재배를 하면 빠르고, 노지 재배를 하면 14~15개월 걸릴 정도로 1년 이상의 힘든 농사다. 그런데 제값을 못받아 갈아엎을 때가 있다. 하기야 명지의 땅은 이제 농사의 땅이 아니라 투기의 부동산으로 전락했다. 명지대파가 1970년대 전국 대파 생산량의 60~7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10%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그 많던 명지대파의 밭들은 어디로 갔나. 과연 우리는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명지대파를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최학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