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아래 더 푸른 정원이 있다?"
부산의 도심 빌딩 숲 한가운데에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비밀의 하늘정원'이 있다. 서구 부용동 H건설 13층 빌딩 옥상. 문을 열자 별천지가 펼쳐진다.
옥상 정원 관심 고조 … 정책 뒷받침 필요성 대두
옥상 한가운데에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나 볼 법한 2층짜리 하얀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다. 거실 앞에는 연못과 작은 폭포가 있고 각종 꽃과 나무가 살아 숨쉬는 아담한 정원이 펼쳐진다. 권도춘(57) 김은자(53)씨 부부와 다섯 딸의 보금자리다. 권씨 가족은 지난 2007년 5월 빌딩 옥상에 집을 짓고 이사했다.
도심 속 버려진 공간이었던 옥상이 '낙원'으로 탈바꿈했다. 조경을 통해 빌딩 옥상을 휴게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집을 짓고 사는 경우는 드물다. 이 특별한 공간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해 회사 근처에 집을 얻겠다는 한 가장의 평범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권씨 가족은 4년 동안 빌라에서 일곱 식구가 부대끼며 생활했다. 이사를 결심하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자기 회사 옥상이 눈에 들어왔다.
"빌딩 꼭대기에 집을 짓고 삽시다. 앞에는 잔디도 심고…." 권씨의 제안에 "옥상에 있는 집이면 옥탑방 아니냐"며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 살아 보고 별로면 다시 이사를 하는 조건으로 가족들을 간신히 설득했다.
30여년간 건설업체를 운영해 온 권씨는 직접 옥상 주택과 정원을 기획하고 설계와 시공에도 참여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가족들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번진다. 정원에는 여름이면 메뚜기가 뛰어다니고 가을에는 귀뚜라미가 운다. 1년 내내 물 흐르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철마다 꽃향기가 정원을 감싼다.
옥상 정원은 미관상 좋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 효과도 크다. 토층이 단열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옥상 아래층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연못까지 있으면 효과는 배가 된다. 관리라고는 여느 정원처럼 가끔씩 잔디를 깎고 연못 물을 갈아주는 정도다.
대신 처음 만들 때 유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흙과 각종 식재의 하중이 건물 구조에 무리를 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권씨는 일반 흙 대신 퍼미큘라이트, 펄라이트(인공토양의 일종) 등을 깔았다. 석재는 기포가 많아 무게가 적게 나가는 화산석을 가져왔다. 정원 토층이 얕기 때문에 식재도 위로 높이 솟는 나무 대신 옆으로 넓게 퍼지는 관목류와 초화류를 심었다. 연못을 위해 방수처리도 확실하게 했다.
최근 사무실 건물을 중심으로 옥상에 녹색 쉼터를 조성하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주택에 대해서도 건물 설계 때부터 옥상 정원을 갖추도록 정책적인 장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H건설 이강기 대표이사는 "최상층 슬래브 지붕의 경우 건축법상 단열재 두께를 두껍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흙과 나무를 이용해 옥상 정원을 조성하면 더 큰 단열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독일 등 몇몇 유럽국가들은 이미 수년 전에 법제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시는 건물옥상 녹화사업을 벌이기로 했으나 예산이 1억여원에 불과해 예산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각각 123억원과 31억원을 투입한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