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에 빠진 사람들] 정성 들여 쓴 나의 글씨…누구라도 받아 주세요~

입력 : 2012-09-28 09:42:03 수정 : 2012-10-02 09: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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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글씨'가 귀한 시대다. 이번 가을에는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은 어떨까? 사진은 캘리그래피를 이용한 컵(왼쪽)과 엽서.

요즘 들어 부쩍 사색에 잠기는 감수성 씨. 가을엔 편지를 쓰겠다는 어느 가수의 노랫가락 때문인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보내는 이메일이 아니라 정성 가득한 손 글씨가 담긴 편지를. 큰 결심 끝에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종이를 꺼낸다. '사랑하는 ○○ 씨'부터 써 보는데, 어? 글씨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초딩 글씨'가 무안해진다. 편지는 뒤로 하고 글씨 연습부터 해야겠다는 마음에 이곳저곳 찾아본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캘리그래피. 그런데 그게 뭐지?

글을 쓰는 사람의 개성 묻어나

캘리그래피는 보통 '손으로 쓴 그림 글씨'라 정의된다.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센터 이세연 이사는 단순히 '보기 좋은 글씨'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글의 내용과 글씨체의 느낌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 캘리그래피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래도 캘리그래피를 잘 모르겠다면 영화나 드라마 포스터의 글씨체를 눈여겨보자. 정형화되지 않고 글을 쓴 이의 개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씨체가 바로 캘리그래피다.

캘리그래피는 1990년대 초중반 영화 포스터에서 개성 강한 글자체가 눈길을 끌면서 주목 받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캘리그래피는 일부 디자이너들의 전유물이었다.

각종 상품에 캘리그래피의 사용이 늘면서 요즘은 취미로 배우려는 이들도 많아졌다.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향수도 한몫하고 있다. 취미로 배우는 이들은 캘리그래피 작품으로 액자를 만들어 집안을 꾸미거나 부채, 엽서 등을 장식해 선물을 주기도 한다.
 

'손 글씨'가 귀한 시대다. 이번 가을에는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은 어떨까? 사진은 캘리그래피를 이용한 컵(왼쪽)과 엽서.
아예 창업 목적으로 배우는 이도 있다. 주목도가 높아 가게 간판부터 광고 전단까지 상업적인 목적의 글씨에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컵이나 달력 등 공예품에 캘리그래피를 접목시킨 상품들도 늘었다.

이 이사는 "최근 개설한 강좌에 대학생들이 대거 몰려 정원 초과 사태를 빚기도 했다"며 "대중 매체를 통해 캘리그래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호기심에 입문 '힐링 효과'도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센터의 중급반 교실. 40대 여성들은 저마다 시의 느낌을 담은 글씨체를 만드느라 진땀을 흘린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같은 시 구절이지만 화선지 위에 쓰인 모양새는 제각각이다. 납작하게 드러누운 글씨, 길쭉하고 굵직한 글씨 등.
노래 가사를 캘리그래피로 표현한 작품. 이세연 씨 제공
울산에서 수업을 위해 매주 한두 번 부산을 찾는다는 장한숙 씨는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세상이 달라 보였다"고 했다. 간장통에 붙은 상표부터 동네 치킨집 간판까지, 알게 모르게 '글자 그림'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까무러치게 놀랍다나. 캘리그래피를 배우고는 글자만 도드라져 보이는 특이한 경험을 한동안 했다.

캘리그래피를 하면서 '힐링 효과'도 봤다.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를 보면 표시를 해 두고 반드시 다시 써 본다. "좋은 글을 마음속에 새기는 데도 도움이 되고, 글씨 모양에 내 감정도 담아요. 그러다 보면 차츰 마음이 고요해지죠."

주부 황서영 씨도 머릿속이 복잡할 때 글씨를 쓴다. 글 쓰는 행위에 집중을 하면 잡생각이 달아난다. "어젯밤에도 잠이 안 와서 글씨를 썼어요. 다른 사람들 뜨개질을 하거나, 수를 놓기도 하는데, 그런 건 배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글씨 쓰기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어 좋아요."

글꼴 해치지 않는 습관 중요

캘리그래피 수업을 받고 있는 주부 황서영 씨.
"악필도 가능한가요?" 캘리그래피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다. 경험자들은 크게 상관없다고 한다. 캘리그래피는 펜뿐 아니라 붓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글씨체가 달라질 수 있다. 또 글씨를 쓴다기보다 그리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악필이라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글의 조형적 특징을 이해하면 보기 좋은 글씨를 쓰는 데 도움이 된다. 한글의 글꼴을 해치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특정 글씨체가 손에 익으면 빠르게 쓰면서 글꼴을 많이 변형시키는데, 이때 잘못하면 알아볼 수 없는 글씨가 되고 만다. 처음부터 기본형을 지키는 연습을 하면, 흘려 쓸 때도 조형미가 살아있다.

만약 자신이 악필이라고 생각하면 자음과 모음을 쓸 때 빈 공간을 두지 않는지 살펴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ㅁ'을 쓸 때 가로와 세로획이 딱 붙지 않고 뜨여 있으면 보기 흉하다. 특히 획이 많은 'ㅂ' 'ㅍ' 'ㅖ'와 같은 자음과 모음을 쓸 때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런 유의 자음과 모음은 획을 붙여 쓰지 않으면 산만해 보이고, 가독성이 떨어진다.

글자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뒷글자의 초성이 'ㄴ' 'ㄷ' 'ㅁ' 'ㅌ'처럼 여백 없이 시작할 경우, 앞 글자와 간격을 살짝 벌려 준다. 반면 'ㄹ' 'ㅅ' 'ㅇ' 'ㅈ' 'ㅋ' 등 여유가 있는 초성은 앞글자와 붙여 주면 문장 전체가 훨씬 짜임새 있어 보인다.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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