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낑깡'과 '노깡'

입력 : 2013-09-24 10:46:50 수정 : 2013-09-24 14: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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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 봐요/….'

'들국화'의 최성원이 처음 불렀고 성시경이 다시 불러 유명해진 노래 <제주도의 푸른 밤>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낑깡'이라는 말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가 다시 놀랐다. 이 말을 제주 사투리로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

하지만, '낑깡'은 일본말 찌꺼기이다. '금감(金柑), 금귤(金橘)'을 일본에서는 킨캉(きんかん)이라 부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흔하던 '미깡(みかん·밀감(蜜柑))'이라는 일본말 찌꺼기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한데, '낑깡'은 이렇게 사투리인 척하며 질기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것.

'콩물 위에 노란 막이 뜨기 시작하면 적당히 식은 것이다. 강자수는 유바라고도 부르는 그 노란 막을 건져 먹을 적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포만감에 행복했다.'

조선 시대를 무대로 한 김진규의 역사소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데 두부 장수인 강자수가 좋아한다는 저 '유바(ゆば·湯葉)'는, 그냥 그대로 일본말이다. 우리말로는 '두부피'나 '두부껍질'.

'두레박줄이 걸려 있는 우물 둘레는 내 가슴까지 차는 시멘트 노깡이었다.'

박완서의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나오는 구절인데, 여기 나온 '노깡' 역시 일본말 찌꺼기다. 우물이나 굴뚝, 배수로 따위에 쓰던 '토관(土管)'의 일본말 '도캉(どかん)'에서 변한 말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만나는 일본말과 찌꺼기들을 보다가 갑자기 섬뜩해진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 207쪽에 '일본은 한국 병합을 실현하기 위해 의병들을 소탕해야 했다' '의병들을 토벌하기 시작했다'라고 나온다는데, 혹시 노래와 소설 속에 꼭꼭 박혀 있는 저런 말들 때문에 자기 나라 의병을 '소탕·토벌'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저렇게도 당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진원 기자 jinw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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