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립스틱, 짙은 마스카라. 헤어스프레이. 이것들은 예쁜 얼굴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화장품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동물실험'과 관련이 있다는 것.
화장품 원료가 인체에 무해한지 알아보는 동물 실험에는 토끼와 기니피그, 쥐 등 체구가 작은 동물이 주로 쓰인다. 토끼 실험에서는 눈꺼풀을 고정해 놓고 자극에 민감한 안구에 화장품 원료를 바른다. 토끼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지만 눈을 감을 수조차 없다. 발이 닿지 않는 목이나 등에 상처를 낸 뒤 화장품 원료를 발라 염증이 일어나는지 보기도 하고, 토끼를 우리에 가두고 헤어스프레이를 계속해서 뿌리는 자극성 실험도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행한 실험 내용이 사람에게 실제 적용되는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것은 그만큼 불필요한 과잉실험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원래 동물실험이란 '동물을 사용해 의학적인 실험을 통해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일'을 이른다. 즉 의학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이나 관찰을 행하는 대신 동물을 사용해서 될 수 있는 대로 같은 조건에서 행하는 실험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물학·농학·축산학·수의학·약학·치의학·의학의 연구나 교육을 위해 널리 쓰이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클로드 베르나르가 체계화한 동물실험은 생물의 기능 해명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잔혹함 때문에 의학에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자료에 의하면 2011년 한 해 국내에서 의약품과 화장품 실험에 희생된 동물이 150만 마리에 이르며, 그중 기니피그·쥐 등의 설치류가 138만여 마리, 토끼가 4만여 마리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개·고양이·돼지 등의 포유류, 조류인플루엔자와 관련해 새도 있으며 원숭이를 포함한 영장류도 동물실험으로 죽어 갔다. 세계적으로는 연간 1억 마리의 실험동물이 희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화장품 동물실험에 대해서는 불필요하다는 논란이 퍼지면서 이미 유럽에서는 동물실험을 거쳐 만들어진 화장품 판매를 금지하고 있고, 이스라엘, 인도 등도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생명윤리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법 개정 움직임이 있다. 동물실험 대신에 인간의 세포와 조직을 배양하거나, 이미 도축된 동물의 신체부위를 이용하는 방법, 동물의 반응을 본뜬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의 대체 실험 방법을 권한다. 예를 들면 눈과 관련된 화장품을 개발할 때 살아 있는 토끼의 눈에 약물을 주입해 시험하는 대신 유정란을 이용하거나 사람의 눈 세포를 인공적으로 배양해서 실험을 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에서도 실험동물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동물실험의 원칙, 동물실험 금지, 윤리위원회 설치 등의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동물실험 윤리 기준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인간도 동물도 생명으로서의 소중함은 같다. 그런데 인간의 외모를 위해 소중한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어찌 옳은 일이겠는가. '동물보호법'에서 나아가 '동물복지법'으로의 변화 바람도 불고 있는 지금, 생명의 존엄성과 동물보호의 중요성을 교육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정서적 안정이 중요한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이은희 신정중학교 교사 leh2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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