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민주주의의 맹아, 공화정의 역사

입력 : 2015-07-17 19:59:44 수정 : 2015-07-20 11: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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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자영농 킨키나투스(Cincinnatus)는 외침을 물리쳐 위기의 조국을 구한 다음 지휘권을 내려놓고 표표히 농장으로 돌아갔다. 사진은 그의 이름을 딴 미국 도시 신시내티(Cincinnati)에 세워진 그의 동상. 교유서가 제공

기원전 5세기 중반. 신생 로마 공화정은 외침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 원로원은 자영농 킨키나투스에 구원을 요청했다.

독재관(dictator) 직을 수락한 킨키나투스는 병역 의무 남성들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전장에 나아가 적을 물리쳤다. 전쟁이 끝나자 구국의 영웅은 독재관 지위를 내려놓고 표표히 농장으로 돌아갔다. 킨키나투스의 사례는 로마 공화정을 매력적으로 비치게 만드는 한 장면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펴낸 '로마 공화정'은 서양 문명사에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로마 공화정의 흥망성쇠를 드라마틱하게 소개한다.

폭압적인 1인 지배체제, 즉 왕정을 무너뜨린 로마인들은 엘리트(귀족)와 민중이 협력하면서 견제하는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고안했다.

로마 공화정 / 데이비드 M 귄
원로원의 집단지배체제는 사회를 안정시켰고, 민중은 민회에서 법률을 승인하고,1년 임기의 행정관을 선출했다. 로마인들은 전제 권력에 적개심을 품었으나 예외를 두었다. 국가비상사태 때 더 우월한 명령권을 지닌 독재관을 둔 것이다. 단, 임기를 6개월 미만으로 제한해 일탈을 막았다. 조국을 구한 킨키나투스가 독재관에 머문 건 불과 15일. 이 사례는 테레베 강변의 작은 도시에서 움튼 로마 공화정이 지중해의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게된 원동력을 설명해준다.

한데, 끝없이 팽창하던 로마 공화정은 내부에서 무너져 내렸다. 킨키나투스와 달리 권력을 독점하려는 장군들이 공화정의 근간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사병화되어 국가가 아닌 장군에 충성을 바쳤다. 원로원의 권위는 추락했다.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을 자처해 갈등을 초래했고, 내전으로 번졌다. 공화정은 해체되고 황제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로마 제정이 출현했다.

로마 공화정은 왕이 없는 통치를 위한 이상을 제시했다. 주권자인 민중과 그들이 선출한 행정관들 아래서 법의 지배를 통해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이다. 최근 이 말이 집권 여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왔다. 대통령이 여야 합의 법안을 거부하면서 여당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지목해 찍어냈다. 그 원내대표가 쫓겨나면서 "민주공화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항변했다. 제왕적 통치와 공화주의 이상은 양립될 수 없다. 제왕이 군림할 때 공화국은 무너진다. 데이비드 M 귄 지음/신미숙 옮김/교유서가/268쪽/1만 4천500원. 김승일 기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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