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의 두 주연, 만나다 "징글징글한 나홍진 감독, 대단하긴 하더라"
입력 : 2016-05-12 19:08:11 수정 : 2016-05-15 15:08:00
'종구' 역 곽도원(왼쪽), '무명' 역 천우희 "솔직히 모르겠더라."(곽도원) "정말 대혼란이었어요."(천우희)
세계 최고 권위의 프랑스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 영화 속 주연을 맡은 둘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어 본 느낌을 이렇게 털어놨다. 작품이 전하려는 내용을 단번에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는 의미로 들렸다.
경찰 가장 '종구' 역 곽도원
느닷없이 닥치는 불행…
긴장감 놓치지 않게 연출해내
집요하지만 천재성만은 놀라워
정체 불명의 여인 '무명' 역 천우희
끊임없이 배우와 소통하는 연출…
집중력 떨어지면 바로 잡아내더라
그러니 촬영이 즐거울 수밖에
'곡성'은 외지인이 들어온 뒤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며 발칵 뒤집힌 시골 마을 이야기를 그린 작품. 완성본을 본 두 사람의 생각 역시 닮았다.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감독은 명확한 뭔가를 배우들 손에 쥐어주지 않았다. 누가 선이고 악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느닷없는 사건사고와 불행
곽도원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는 '누가 죽인 거야' '그래서 누가 귀신이라는 소리야',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며 "두 번 봐도 모르겠더라. 세 번 보니까 '아~ 이래서 이렇게 되는구나'라고 어렴풋이 알겠더라"고 말했다.
여러 힌트는 주어졌다. 쉽게 가자는 이야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게 나 감독만의 창의력이자 독창성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누가 범인인지 정확히 드러나면 좋겠지만, 그보다 느닷없이 닥치는 사건사고나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보여야 하지 않나 싶다"며 "이런 구도를 짜놓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 건 나홍진의 천재성"이라고 극찬했다.
천우희의 첫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독이 '어땠어요'라고 물었을 때 '멘붕' '대혼란'이라고 했죠. 처음 봤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멍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이게 작품으로 나오면 어떤 모습일지 정말 궁금했어요."
그러면서 '곡성'의 존재 이유에 대해 "대혼란을 주기 위해서"라며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신은 존재하는 걸까' 등의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감독의 이야기가 와 닿았다"며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걸 영화로 이야기한다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곽도원 "나 감독의 집요함 믿었죠"곽도원은 영화 '황해'를 통해 나 감독과 손발을 맞췄다.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찍을지 충분히 예상했다.
그는 "어려운 장면도 많았고, 감정이 점점 증폭돼야 하는 데 순서대로 찍지 않을 것도 알았다. 또 부성애도 걱정했던 부분"이라며 "집요하게 찍다 막히는 부분에서는 많이 도와줄 걸로 생각했다"고 든든한 신뢰를 보냈다.
그래도 그 집요함과 '타협 없음'은 이미 영화가 개봉된 지금도 한숨을 쉬게 할 만큼 힘들었다. 그는 극 중 딸(김환희)을 살리기 위해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절벽 끝까지 쫓아가는 장면을 꼽으면서 "거의 다 잡을 것 같던 외지인을 놓치고, 우는 것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그 순간의 감정을 찾아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며 허공에 긴 한숨을 내뱉었다.
'곡성'에서 곽도원은 평범한 경찰이자 어린 딸을 둔 아버지 종구를 연기했다. 이전 작품과 달리 힘을 뺀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웃음은 짐짓 나홍진 작품답지 않은 맛도 낸다. 바로 이 점이 곽도원에게 첫 주연을 맡긴 이유다.
곽도원은 "얼마 전에 나 감독이 술을 마시면서 '형이 코미디가 돼서 좋았다'고 말하더라"며 "사실 연극할 땐 코믹 연기를 많이 했는데 '황해' '범죄와의 전쟁' '변호인' 등을 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156분에 달하는 긴 항해를 주연으로 마친 상황. 여러 영화의 개봉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전보다 많다.
그는 "최근에 달수 형이 '대배우'를 했잖아요. 홍보 활동을 악착같이 한 이유를 알겠더라"며 "믿어준 데 대한 책임감인데 엄청 떨린다"고 큰 소리로 읍소했다.
■천우희 "역할보다 중요한 시나리오"천우희는 극 중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무명으로 분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강렬한 존재감만은 곽도원 못지않다. 더욱이 영화의 미스터리한 느낌을 한층 살려주는 소임을 다했다. 그녀는 "애초 많은 분량이 아니었다"며 "가장 중요한 시나리오가 정말 재밌었다. 역할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지난해 7월 개봉한 판타지 호러 '손님'에서도 미스터리한 여인으로 대중을 만났다. 주위에선 비슷한 이미지에 걱정했지만, 그녀는 자신했다.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이야기 속에 미스터리한 여인으로 보이니까 멀리서 보면 같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장르, 색깔, 주제 자체가 다르거든요. 연기도 달리 할 거라는 생각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죠."
천우희는 처음 작업해 본 나 감독을 "징글징글하다"고 표현했다. 타협 없는 집요한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기진맥진할 법도 하지만, 천우희 역시 곽도원과 마찬가지로 "그게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배우한테는 '왜'가 중요하다"며 "충분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는데 대화 없이 무조건 하라고 하면 힘들다. 그런 면에서 정말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극 중 무명의 존재는 흥미롭다. 선악과 영육의 구분이 모호하다. 적은 분량 속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야 했다.
천우희는 "캐릭터를 창조해내야 하는 부담도 있고, 겁도 났다. 그래서 촬영 때마다 약간 다르게 했다"며 "집중도가 떨어지거나 의심을 하면 감독이 정확하게 잡아내더라. 미세한 부분을 알아주니까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황성운 기자 bstoday@busan.com
사진=강민지 기자 ·폭스인터내셔널프로덕션 제공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